어릴적 동네에 뛰놀면서, 파란 하늘에 나부끼던 이상한 깃발을 동네마다 심심찮게 볼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이면 둥~둥둥 북치는 소리와 꽹과리소리 징소리와 더불어 피비린내 나는 돼지피 냄새와 이상한 향 냄새가 동네마다 진동을 했습니다.
저는 동생들한테 " 저게 나찌 깃발인데, 독일에서온 귀신쫓아내는 부적이다 " 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 어릴적 세계관이 제가 배운 선에서 최대한 글로벌적으로 이해를 할려고 했던것이지요.
이상한 저 팔 시위와 껑충껑충 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게 사람인지 아니면 반인 반귀신인지 햇갈릴 정도고 그 앞에서 두손모아 기도하는 환자와 더불어 정신병 아들딸을 둔 동네 아줌마들의 울부짓음과 더불어 무서운 장면을 많이 보곤했습니다.
그런데 학창시절을 지나가면서 어느새 저 나찌들은 종적을 하나둘 감추기 시작하고 동네마다 저것을 대체하는 십자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교회당이라는것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처음 교회 모임을 가서 겪은 그 충격과 공포는 사실 무당집에서 본 칼춤추는 모습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의 손엔 칼대신 성경이요. 징소리 북치는소리 대신에 기타와 드럼 그리고 잡상인 마이크 찢어지는 소리였습니다.
더 충격적인것은 방언 기도를 하는 정신병 들린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울부짓고 미친듯이 팔다리를 휘젓고 쓰러지고 자빠지는 모습이 정신적 공황을 주기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당들이 교회로 침투하기 시작한때가 바로 그 산업사회시기인 70~80 년대입니다.
지금 보여지는 박근혜 최태민 최순실 막장 사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왔었던 잘못된 종교 신념이 어떻게 세상을 불지르고 나라를 절단내는지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친일파들처럼 196~70년대 저 무당들을 한국 교회가 흡수하여 돈벌이로 활용하고 신앙의식 접목한것이 이제 고름 터지듯 여기저기 뿜어져 나오는것입니다.
여러분들 한번 교회가서 목사들 울부짓고 손짓 발짓 동작 하나하나 살펴보세요.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말투와 표현들이 바로 그 옛날 무당들이 했던 모습들의 축소판입니다.
단지, 넥타이를 매어서 연단에 서니 조금 차분해졌을정도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어떻게 한국 교회라는 곳에 아무 생각없이 자녀들을 맡기고 훈육을 맡기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재미있고 오락적인건 어쩔수 없다치지만, 잘못하면 아이들 정신병 환자됩니다.
우리 대통처럼요.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2016년 10월 24일 월요일
성경은 삼위 삼체를 말한다. (1)
여러분들의 많은 검색과 성원으로 드디어 Google 순위에서 첫페이지, 관련 검색어로는 World 한글 검색 랭킹 8위안에드는 놀라운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글 딱 20여개 만으로 이 정도의 관심과 폭발적 검색 순위는 그만큼 얼마나 우리가 무지몽매했고, 그저 남들이 그러하닌깐 나도 따라서 허무하게 신앙생활해왔는지 또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탈과 방임 그리고 망가져왔는지 알수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수 있는 계기 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져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정확한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과연 다음 세상의 진실인지 여러분들은 보게 될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더욱 심층적인 내용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두분이 같은분이다 하면 왼쪽에 서시고 서로 다른 두분이다라고 생각되시는분은 오른쪽에 서십시요."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느쪽에 서시겠습니까?
vs
이 주제가 갖는 의미는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의 이성이 맹목적인 믿음을 따라가야만 구원을 얻는것인지, 아니면 아예 기독교 신학 자체가 엉터리 번역으로부터 출발한것인지 결정을 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 처음 입교하는 사람들이 가장 혼동하는 부분이 어떻게 하나님이 예수님이 되었다가 성령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님이 되었다가 예수님이 되었다가...
" 믿음은 이성으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자매님(형제님) "
이런 강요를 주입식으로 집어넣을려고 합니다. 이것이 안받아들여지면 말 그대로 수련회나 단체 기도 금식 대회등 아예 머릿속을 깨끗히 reset 할려고 교회는 나옵니다.
그러다 군중심리로 동화가 되어지면 "아~ 삼위일체가 이런거구나!"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하지만, 감정보다 이성이 강한 사람한테는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설사 교회를 다닌다 하여도 절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한분으로 믿지 않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정확히 성경 하나만 가지고 이 문제를 정확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제가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4부 참조, 많은 사람들이 사실 글이나 문장이 뜻하는 바를 잘 이해를 못하는 문맹인들이 많습니다. 특히 근대에 들어오면서 학문적 체계가 일반인까지 오게 되어 그나마 문맹율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아직도 글을 읽되 내용을 이해못하는 사람이 상당수입니다.
따라서 매우 기본적 수준으로 천천히 요한복음 1장을 재해석 해 드리겠습니다.
'세상 태초에 말씀이라 불리우는 자가 계시는데 그 말씀이라 불리우는 자가 지구도 만들고 동물도 만들고 온갖 것들을 다 만들었는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바로 그 일들을 그 말씀이라 불리우는 자와 같이 하나님께서 안한것이 하나도 없다!' 라는 내용 아닙니까?
즉, 요한이 강조법을 쓸려고 말씀 = 예수 그리스도 비유하여 얘기한 내용이 아니겠습니까?
14.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특히 14 절에서 요한은 독생자라는 단어를 분명히 씀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beget - begotten이라는 단어를 써서 동물, 혹은 인간이 새끼(자녀)를 낳는다)임을 분명히 선언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일 위 파란색의 "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는 문장은 왜 들어갔을까요? 요한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한분임을 알리기 위해? 아니면 또다른 비유가 있어서?
4복음서를 잘 보시면 각 서신을 쓴 작자들의 성격을 알수 있는데, 특히 저자 요한은 말이 짧지 않습니다. 어떤 단어 하나를 설명하더라도 위와같이 15 문장을 할애해서 매우 조밀조밀하게 글을 쓰는 성격이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 예수님이다라는 초이상학적 내용을 설명할려고 저 단어를 썻으면 아마도 한장을 할애해서 왜 하나님은 곧 예수와 한몸인지 자세히 설명을 하여 믿지 못하는자들을 설득했을것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칭호라는것, 랍비는 선생이라는것 등등으로 인물의 뒤에다가 직책(Position ) 의 단어를 붙여 거룩하게 성인을 표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즉,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판단 속성 생각 그리고 신성이 아주 일치해서 곧 하나님이시라
그렇게 표현을 한것입니다. 즉 세상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만들어내면서 위임의 원리에따라 요한이 느낀데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고자 그런 표현을 한것이지요....(교리를 얘기한것이 아니고 its not declaration the doctrine of God!!!)
그럼 왜 요한은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건 간단한것이지요. 창세기 1장 1절에 말씀이 가라사대~~~로 나오듯이 실제로 이 지구를 만들고 각 동물군 식물군을 만들어논 장본인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바로 구약부터 신약까지의 구원자가 바로 하나님의 지시(order) 를 받아 행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자 1장1절부터 장엄하게 표현을 한것이지요.
따라서 삼위일체라는 엉터리 이론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만들어낸 황제아부 집단들이 만들어낸 하나님= 예수 이론은 허무맹랑한 유체이탈 화법이며 황제를 하나님 다음으로 만들려는 종교적 대 사기극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지몽매한 당시 글을 잘 몰랐던 대중에게 그 이론이 퍼져 지금은 도대체 바꿀수도 없는 먼길을 가버린것이지요.
꼭 지금 정권 과 시대를 보는것 같지 않나요?
다음 시간에도 이 내용이 계속 이어집니다.
글 딱 20여개 만으로 이 정도의 관심과 폭발적 검색 순위는 그만큼 얼마나 우리가 무지몽매했고, 그저 남들이 그러하닌깐 나도 따라서 허무하게 신앙생활해왔는지 또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탈과 방임 그리고 망가져왔는지 알수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수 있는 계기 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져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정확한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과연 다음 세상의 진실인지 여러분들은 보게 될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더욱 심층적인 내용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두분이 같은분이다 하면 왼쪽에 서시고 서로 다른 두분이다라고 생각되시는분은 오른쪽에 서십시요."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느쪽에 서시겠습니까?
vs
이 주제가 갖는 의미는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의 이성이 맹목적인 믿음을 따라가야만 구원을 얻는것인지, 아니면 아예 기독교 신학 자체가 엉터리 번역으로부터 출발한것인지 결정을 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 처음 입교하는 사람들이 가장 혼동하는 부분이 어떻게 하나님이 예수님이 되었다가 성령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님이 되었다가 예수님이 되었다가...
" 믿음은 이성으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자매님(형제님) "
이런 강요를 주입식으로 집어넣을려고 합니다. 이것이 안받아들여지면 말 그대로 수련회나 단체 기도 금식 대회등 아예 머릿속을 깨끗히 reset 할려고 교회는 나옵니다.
그러다 군중심리로 동화가 되어지면 "아~ 삼위일체가 이런거구나!"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하지만, 감정보다 이성이 강한 사람한테는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설사 교회를 다닌다 하여도 절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한분으로 믿지 않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정확히 성경 하나만 가지고 이 문제를 정확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제가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4부 참조, 많은 사람들이 사실 글이나 문장이 뜻하는 바를 잘 이해를 못하는 문맹인들이 많습니다. 특히 근대에 들어오면서 학문적 체계가 일반인까지 오게 되어 그나마 문맹율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아직도 글을 읽되 내용을 이해못하는 사람이 상당수입니다.
따라서 매우 기본적 수준으로 천천히 요한복음 1장을 재해석 해 드리겠습니다.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세상 태초에 말씀이라 불리우는 자가 계시는데 그 말씀이라 불리우는 자가 지구도 만들고 동물도 만들고 온갖 것들을 다 만들었는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바로 그 일들을 그 말씀이라 불리우는 자와 같이 하나님께서 안한것이 하나도 없다!' 라는 내용 아닙니까?
즉, 요한이 강조법을 쓸려고 말씀 = 예수 그리스도 비유하여 얘기한 내용이 아니겠습니까?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4.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특히 14 절에서 요한은 독생자라는 단어를 분명히 씀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beget - begotten이라는 단어를 써서 동물, 혹은 인간이 새끼(자녀)를 낳는다)임을 분명히 선언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일 위 파란색의 "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는 문장은 왜 들어갔을까요? 요한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한분임을 알리기 위해? 아니면 또다른 비유가 있어서?
4복음서를 잘 보시면 각 서신을 쓴 작자들의 성격을 알수 있는데, 특히 저자 요한은 말이 짧지 않습니다. 어떤 단어 하나를 설명하더라도 위와같이 15 문장을 할애해서 매우 조밀조밀하게 글을 쓰는 성격이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 예수님이다라는 초이상학적 내용을 설명할려고 저 단어를 썻으면 아마도 한장을 할애해서 왜 하나님은 곧 예수와 한몸인지 자세히 설명을 하여 믿지 못하는자들을 설득했을것입니다.
-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칭호라는것, 랍비는 선생이라는것 등등으로 인물의 뒤에다가 직책(Position ) 의 단어를 붙여 거룩하게 성인을 표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즉,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판단 속성 생각 그리고 신성이 아주 일치해서 곧 하나님이시라
그렇게 표현을 한것입니다. 즉 세상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만들어내면서 위임의 원리에따라 요한이 느낀데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고자 그런 표현을 한것이지요....(교리를 얘기한것이 아니고 its not declaration the doctrine of God!!!)
그럼 왜 요한은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건 간단한것이지요. 창세기 1장 1절에 말씀이 가라사대~~~로 나오듯이 실제로 이 지구를 만들고 각 동물군 식물군을 만들어논 장본인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바로 구약부터 신약까지의 구원자가 바로 하나님의 지시(order) 를 받아 행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자 1장1절부터 장엄하게 표현을 한것이지요.
따라서 삼위일체라는 엉터리 이론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만들어낸 황제아부 집단들이 만들어낸 하나님= 예수 이론은 허무맹랑한 유체이탈 화법이며 황제를 하나님 다음으로 만들려는 종교적 대 사기극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지몽매한 당시 글을 잘 몰랐던 대중에게 그 이론이 퍼져 지금은 도대체 바꿀수도 없는 먼길을 가버린것이지요.
꼭 지금 정권 과 시대를 보는것 같지 않나요?
다음 시간에도 이 내용이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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