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University 과정을 마치면서 개인적으로 내렸던 결론은 우리 동양 아니 한국인들이 나아가야할 과정중에서 필히 원칙과 규범,원리 A true, principle and rule 등에 대한 양보없는 정신을 좀 서구로부터 배워야한다는 결론에 다달았습니다.
우리 한국 문화는 세계속에 한류라 하여 감성적으로 많은 동감과 발전을 가져오고 있지만, 아직도 모방경제나 카피상품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중국 인도로부터 추월을 당하고 여러가지 우려섞인 모습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급기야 많은 젊은이들이 살기힘든 대한민국을 떠나 이민을 고려해야 하는 경제사회 약소국으로 요즘 전락하고 있는다는것에 개인적으로 심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러한 국가적인 환난은 결국 우리의 정신과 사상에서 오는 문제일수 있다는것에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저와같이 계속 이 방언기도 부분만 살펴봐도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목사들이 와전시키고 뒤틀고 오역하여 가르치는지 아실수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이 대충 대충 , 그리고 원칙보다는 실리와 효율에만 매달려 눈에 실질적인 보상이나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조급증적인 즉 병적인 트라우마에서 나온 일련의 문제라는것을 또한 직시해볼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원칙과 정확성에 벗어난 과정을 걷다보면, 반드시 탈이나고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왜 ? 서구인들이 발전은 더딜지언정 원칙을 강조하고 가깝게는 건널목 신호를 반드시 지키며 학문적으로는 절대로 인간관계나 동정으로 점수를 주지 않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 무려 10여편에 이르는 이때즘...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무엇을 느끼십니까?
제가 한국 서울, 미국 LA NY 좀 제대로 된 가르침을 하는곳이 없는가 한국 대형교회들을 가봤지만, 마음속 깊이 절망하고 실망만 하는것은 그곳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백수 무당들과 온갖 아름다운 세상 가르침으로 포장된 귀신의 투전판뿐이 없다라는것을 발견했습니다. (실망스러워 격하게 좀 표현했고 물론 신실함을 찾는 몇몇분들도 좀 봤습니다.) 조금만 목사들이 얘기하는거 집에와서 신약성경과 대조해보면 거의 아니 90% 사실과 다른것을 가르치는것을 발견했을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본 예배에서는 마음은 들뜨고 좋은데 집에와서는 뭔가가 꺼름찍한 알수없는 기분이 드는건 개인적으로 성경을 제대로 알기원하는데에서 온 비교분석때문에 그런걸까요?
저만 이러면 저는 가히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폐단을 느끼는 성도들이 한두명이 아니고 급기야 미국의 어느 대형 교회 목사는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교단을 이끌었다고 대형교회 포기 선언까지 하고 있는게 요즘 기독교계의 현실입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미국 시카고 Willow creek church 를 이끄는 담임목사Bill Hybels가 공식적으로 officially "우리는 교인 숫자 늘리는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데에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라고 지난 30년간 자신들의 자체 연구 결과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바로 이 교회가 한국 교회들의 우상이된 표준 대형교회입니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신약 성경 그대로 가르치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데, 교회에 금력과 권력이 결합이 되니 도저히 성경대로 가르쳤다간 자신들의 경제효율에 안맞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도 모집에 세상적으로 말씀을 예쁘게 하는 스타 목사들이 필요하고 종교연예인등이 양성되니 일반 성도들은 교회에 와서 재미있는 사교활동에 촛점을 맞추게 되고 말 그대로 예배에 앉아 말씀듣는 로보트가 되어버리니 no brain 화 되어가는 결과가 결국 지난 32년간 교회사역 결과로 도출된것이지요.
돈이 그렇게 무서운겁니다. 원칙을 벗어나는것이 그렇게 무서운겁니다.
직업으로 갖는 보수받는 목사제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평신도가 서로 가르치고 말씀하며 훈련하고 운영하는 초기 신약성경 교회로 돌아가야 기독교도 살고 나라도 삽니다.
그 정신을 한국 교회에서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일단 한국 교회는 성경번역부터 다시 하고 방언기도 부터 없애면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2015년 6월 24일 수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8편) - 백수 무당과 샤머니즘 그리고 없어져야할 목사 제도
무엇이 세상을 가슴 뛰게 할수 있을까요? 이 운동은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다양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교회재부흥을 위해 많은 여러가지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밝히 진실을 얘기하자면..
'모든 신앙과 영성 그리고 세상으로의 외침의 실효성은 개개인의 영적수준과 자립 그리고 발전에서 나온다' 는 참신앙인의 모습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평신도 교회 중심의 중요성과 결속 그리고 신앙이 주요한 세상사람들이 바라보는 기준이라는것이지요.
그런데, 정상적으로 교회교육과정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좋은게 많은데, 왜 한국 교회 아니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은 기독교 교회를 떠나가고 있을까요?
바로 목사 시스템이 갖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존재 하지 않았던 직업적 성직자 제도가 세상과 결탁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바람에 오늘날 기독교가 쇠퇴하는 일등 공신이 되어버린 세상의 돌뿌리게 된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
And when the people saw what Paul had done, they lifted up their voices, saying in the speech of Lycaonia, The gods are come down to us in the likeness of men.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그럼 지난편에 계속 이어서 사도행전14편은 지난번 7편에서도 말씀드린것처럼 직업의사 출신인 '누가' 가 아주 상세하게 방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루가오니아 의 방언' 이라고 분명히 외국어 스피취능력을 얘기하고 있고 추후에는 방언 앞에다가 각 지역명을 넣는 세심함을 보입니다. ( 직업인 의사 답게 정확하고 세심하게 부분별로 표현하는 누가의 개인적인 기록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어디를 살펴봐도 오늘날 한국 - 흑인 목사들이 인도하는 광란의 방언기도라는것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사도바울부터 심히 금하는 경고의 내용만 볼수 있다는것을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럼, 조금만 신약성경을 시간내서 대형교회 목사들이 잘 살펴보면, 이러한 방언 기도의 폐해와 문제를 잘 알수 있는데, 왜 모두들 침묵하거나 아니면 굳세게 방언기도를 종용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적 은사'다 라고 설교하며 가르치고 있을까요?
바로 목사직의 특수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인들과 아프리칸 흑인들은 인종문화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탄압과 민중의 슬픔이 매우 복합적으로 자리잡은 부분이 많다라는것입니다. 굳이 여러 예를 안들어도 흑인 노예문제와 우리의 일제치하에서 짐승많도 못한 학대와 각종 침략전쟁을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샤머니즘-기복신앙 (즉각적인 복내림과 정신줄 놓게 만드는 효험)이 종교적 기초가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부분은 비판의 대상이기보다는 불쌍한 우리네 전통과 아픔을 다독여야하는 포용의 시각으로 봐야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돈과 결탁이 되면 무서운 폐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냉정하게 메스를 (사도 바울처럼) 가해야 하기 때문에 슬픔이 느껴집니다. 즉 목사는 직업이기 때문에 경쟁과 성장이 주요한 사명이될수밖에 없는 경제적 흐름때문에 폐해가 나타난다는것입니다.
아무튼, 1940~1960 년도의 극도의 세계적 공황과 전쟁을 통해서 정상적인 종교성 보다는 당장 해결이 필요한 무당파적 주술형태가 기독교와 맞아떨어지면서 국가적인 교회부흥이 미국남부와 한국에서 벌어졌고, 그래서 지난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전혀 엉뚱한 형태의 정신줄 놓는 방언기도라는것이 교회에 들어와서 오늘날 목사들의 권위와 영적파워의 도구로 성도들을 다스리는 권한과 인도가 된것입니다. (백인들 기독교 문화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기회되면 다루겠습니다.)
또한 추후 살펴보겠지만, 목사직은 초기 그리스도교회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공식적인 보수를 받는걸 상상도 못한 시대였기 때문에 목회직은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원칙에서도 벗어난 교회 명칭이며 존재하지도 않았던 별정직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가 다시 일어설려면 목사직을 가감히 없애야 합니다.
그것은 또한 각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발전에도 악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다음편에서는 목사들의 방언이 어떻게 성적도착증과 각종 금권비리로 연결되는지 바로 얘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모든 신앙과 영성 그리고 세상으로의 외침의 실효성은 개개인의 영적수준과 자립 그리고 발전에서 나온다' 는 참신앙인의 모습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평신도 교회 중심의 중요성과 결속 그리고 신앙이 주요한 세상사람들이 바라보는 기준이라는것이지요.
그런데, 정상적으로 교회교육과정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좋은게 많은데, 왜 한국 교회 아니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은 기독교 교회를 떠나가고 있을까요?
바로 목사 시스템이 갖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존재 하지 않았던 직업적 성직자 제도가 세상과 결탁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바람에 오늘날 기독교가 쇠퇴하는 일등 공신이 되어버린 세상의 돌뿌리게 된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
And when the people saw what Paul had done, they lifted up their voices, saying in the speech of Lycaonia, The gods are come down to us in the likeness of men.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그럼 지난편에 계속 이어서 사도행전14편은 지난번 7편에서도 말씀드린것처럼 직업의사 출신인 '누가' 가 아주 상세하게 방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루가오니아 의 방언' 이라고 분명히 외국어 스피취능력을 얘기하고 있고 추후에는 방언 앞에다가 각 지역명을 넣는 세심함을 보입니다. ( 직업인 의사 답게 정확하고 세심하게 부분별로 표현하는 누가의 개인적인 기록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어디를 살펴봐도 오늘날 한국 - 흑인 목사들이 인도하는 광란의 방언기도라는것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사도바울부터 심히 금하는 경고의 내용만 볼수 있다는것을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럼, 조금만 신약성경을 시간내서 대형교회 목사들이 잘 살펴보면, 이러한 방언 기도의 폐해와 문제를 잘 알수 있는데, 왜 모두들 침묵하거나 아니면 굳세게 방언기도를 종용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적 은사'다 라고 설교하며 가르치고 있을까요?
바로 목사직의 특수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인들과 아프리칸 흑인들은 인종문화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탄압과 민중의 슬픔이 매우 복합적으로 자리잡은 부분이 많다라는것입니다. 굳이 여러 예를 안들어도 흑인 노예문제와 우리의 일제치하에서 짐승많도 못한 학대와 각종 침략전쟁을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샤머니즘-기복신앙 (즉각적인 복내림과 정신줄 놓게 만드는 효험)이 종교적 기초가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부분은 비판의 대상이기보다는 불쌍한 우리네 전통과 아픔을 다독여야하는 포용의 시각으로 봐야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돈과 결탁이 되면 무서운 폐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냉정하게 메스를 (사도 바울처럼) 가해야 하기 때문에 슬픔이 느껴집니다. 즉 목사는 직업이기 때문에 경쟁과 성장이 주요한 사명이될수밖에 없는 경제적 흐름때문에 폐해가 나타난다는것입니다.
아무튼, 1940~1960 년도의 극도의 세계적 공황과 전쟁을 통해서 정상적인 종교성 보다는 당장 해결이 필요한 무당파적 주술형태가 기독교와 맞아떨어지면서 국가적인 교회부흥이 미국남부와 한국에서 벌어졌고, 그래서 지난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전혀 엉뚱한 형태의 정신줄 놓는 방언기도라는것이 교회에 들어와서 오늘날 목사들의 권위와 영적파워의 도구로 성도들을 다스리는 권한과 인도가 된것입니다. (백인들 기독교 문화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기회되면 다루겠습니다.)
또한 추후 살펴보겠지만, 목사직은 초기 그리스도교회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공식적인 보수를 받는걸 상상도 못한 시대였기 때문에 목회직은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원칙에서도 벗어난 교회 명칭이며 존재하지도 않았던 별정직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가 다시 일어설려면 목사직을 가감히 없애야 합니다.
그것은 또한 각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발전에도 악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다음편에서는 목사들의 방언이 어떻게 성적도착증과 각종 금권비리로 연결되는지 바로 얘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2015년 6월 10일 수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7편) - 베드로의 왕국열쇠와 목사직분의 문제
While Peter yet spake these words, the Holy Ghost fell on all them which heard the word.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And they of the circumcision which believed were astonished, as many as came with Peter, because that on the Gentiles also was poured out the gift of the Holy Ghost.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For they heard them speak with tongues, and magnify God. Then answered Peter,
이는 방언(-외국어들)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Can any man forbid water, that these should not be baptized, which have received the Holy Ghost as well as we?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And he commanded them to be baptized in the name of the Lord. Then prayed they him to tarry certain days.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지난 사도행전 초기 부분에서의 방언 문제와 더불어 이제 사도행전10장에서는 저자인 '누가-Doctor'가 방언기도에 대해 좀더 정확히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의사인 누가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답게 표현을 정확히 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있고 듣는사람이 있다"라는 행동적이고 행위적인 표현으로 정확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은 당시 15개 언어국중 외국인을 얘기하는것이지요? 즉, 한국 목사들이 얘기하는 기도의 형태가 전혀 아니라는것입니다!
(의사들은 수술이나 치료도중 말한마디 잘못하면 엉뚱한데 집도가 되니 정확한 단어선택이 중요한 직업이지요.)
즉, 요즘 목사들이 얘기하는 알아듣지 못하는 주술적인 신비언어가 아니라는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수석 사도의 제일 사도로써 하늘왕국(많은 엉터리 목사들이 천국 열쇠라고 해석하는데 전혀 아닙니다.-나중에 하늘의 구조와 왕국의 형태에 대해 언급을 해보겠습니다)의 열쇠를 부여받고 사역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늘과 동시에 땅에서도 사람의 구원을 거둬들일수도 뗄수도 있는 그 열쇠는 오직 구약-신약 통틀어서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영광스런 직분의 열쇠입니다. 그 어느누구도 이것을 대신할수 없는 신성한 권능이지요.
성전직분의 권능이나 그 어떤 대제사장 교사 집사 권사도 행해서도 혹은 행할수도 없는 고유의 재판관과 같은 거룩한 권능입니다.
그러한 것을 오늘날 목사들이 어떻게 유린하고 찬탈하며 흉내내는지 성경만 보고 비교하면 바로 분별이됩니다.
당신들 목사라는 사람들 분명히 질문하나 던지겠습니다.
" 방언 기도 주술 치료 혹은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라는 권능을 어디서 받았습니까? 누가 직접 줬습니까? "
기도 했다가 받았다. 기도 가운데 성령이 주었다고 헛소리 하시면 안됩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장 21-24)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니 이제 부터 강조하지만
방언기도를 권유하거나 주술치료등을 권장하는 목사들로 부터 떠나는게 답입니다.
교회가 혹시 떠나기 어려울정도로 인간관계가 많다면,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시고 인간적인 마음이나 신앙을 주지 마십시요.
여러분의 영혼과 몸은 값지고 소중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성경이 저와같이 이렇게 보시면 알겠지만 절대로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방언부분만 살펴도 불과 한 경전에 5분도 안걸리며 금방보고 해석이 되는데.....(물론 조금 영어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조금만 사리분별 가지고 차분히 보면 대개의 진실이 다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 목사들이 이렇게 방언기도 주술치료등에 매달리는걸까요?
...
바로 신약시대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목사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편에서 좀더 지난편에서 언급한 목사들의 비행과 비리 성적이탈등과 더불어 자세히 함께 다뤄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2015년 6월 1일 월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6편) - 사도행전의 방언 그리고 사기의 미국 LA
'다시 말씀드리지만, 단 하나의 단어나 문장이라도 한국 목사들이 얘기하는 '주술 방언기도'가 있다는것이 성경에 있다면 알려주십시요. lovejesusall@gmail.com
이제 고린도여행을 마치고 사도행전으로 넘어왔습니다.
사도행전은 말 그대로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경전이고, 그 저자인 누가(직업: 의사) 가 기록한 것인데, 방언 부분 만큼은 정말 정확히 공부많이한 사람처럼 확실하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사도행전 2장 내용입니다만 전부다 한글자도 빠지지 않고 외국어를 말하는 능력-방언方言으로 누가는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형태도 전혀 아니지요)
And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Holy Ghost, and began to speak with other tongues, as the Spirit gave them utterance.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제 고린도여행을 마치고 사도행전으로 넘어왔습니다.
사도행전은 말 그대로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경전이고, 그 저자인 누가(직업: 의사) 가 기록한 것인데, 방언 부분 만큼은 정말 정확히 공부많이한 사람처럼 확실하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사도행전 2장 내용입니다만 전부다 한글자도 빠지지 않고 외국어를 말하는 능력-방언方言으로 누가는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형태도 전혀 아니지요)
And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Holy Ghost, and began to speak with other tongues, as the Spirit gave them utterance.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Now when this was noised abroad, the multitude came together, and were confounded, because that every man heard them speak in his own language.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And they were all amazed and marvelled, saying one to another, Behold, are not all these which speak Galilaeans?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And how hear we every man in our own tongue, wherein we were born?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Parthians, and Medes, and Elamites, and the dwellers in Mesopotamia, and in Judaea, and Cappadocia, in Pontus, and Asia,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And they were all amazed, and were in doubt, saying one to another, What meaneth this?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Others mocking said, These men are full of new wine.
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저는 이 방언기도를 살펴보면서, 굳이 "번역이 잘못되었다느니 오해가 있다느니" 그런말 할 필요없이 조금만 성경을 차분히 읽어보면 금새 여러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과 그 의미를 정확히 잘 살펴볼수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한인-흑인스타일의 정신나간 방언기도라는게 나온것인지 의아스러울 뿐입니다.
우리는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가난과 삶의 고통에서 처절하게 벗어나야만 하는 1960~80년대를 거쳐왔습니다. 그 시절엔 세집건너 점집이나 무당이 활개를 치고 다녔고, 특히 병원에 갈 돈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한 어르신들은 아니어서 말 그대로 마구잡이식 희망을 잡아야만 하는 절박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그 희망의 끈을 교회라는 곳이 대변하기 시작하였고, 우리 친지들뿐만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은 "그 교회에 가면 병도 고치고 하는일도 잘된다" 는 소문과 풍문으로 나가게되어 부흥이 이루어진게 한국 교회들입니다. 즉,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 교회의 부흥은 주술적 무당과 점집을 대체한 다른 형태의 종교로 우리 서민속에 들어왔던곳입니다. 종교의 본질은 병을 났고 복을 바라는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혁명가 예수그리스도를 바랬던 그 모습과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때 당시를 회고하면, 성경은 오직 목사들로 부터 나오는 그 입이 정의가 되었고, 세로줄로 읽기 힘든 성경은 고대 중국 사서삼경처럼 신성하고 매우 어려워 보였습니다. 읽기 조차 힘들어서 누군가 대신 뜻을 통역을 해줘야 할 정도였지요
그래서인지, 당시 성경배껴서 쓰기 운동(어떤어르신들은 서예로 다 써서 무슨 표창인지 상인지 받으셨던것도 기억납니다), 통독 운동(과일나무 스티커 상품운동)등 읽는거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교회 사역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어느날 미국 캔사스의 한 교회에서 ( 캔사스는 가보시면 알겠지만, 농촌 주이고 몇시간을 차로 달려야 사람들 좀 사는곳이 보일려나 하는 동네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즉 후진정도가 심한 주라는겁니다.) 어떤 정신병이 든 한 18세 소녀인가가 교회모임중 단상으로 뛰어나와서
"울라라 어버버, 샤바딧 샤바아" 라면서 마치 유대어을 흉내내는 소리를 지르면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추후 이 상황을 전해들은 남부 흑인들 가운데 중국어를 흉내내면서 기적을 보일려는 무리들도 나타났으나 당시 몇몇 안되는 중국인들이 공교롭게도 알아채서 잠잠해진 사건도 있지요 ^^)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봤던 동네 농부들이나 목사들 사이에서 와전과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힘들게 인종차별을 겪으며 살던 남부 흑인들교회에 퍼졌고, 그리고 사기의 달인들이 모여사는 LA속에 건전했던 한국교회와 흑인교회에 퍼지기 시작한게 바로 한국-아프리카형 방언기도의 시작입니다.
바로 그 시점에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유행가며
한국에서 LA 갈비며 주미 문화가 신비루처럼 한국 사회에 전파되면서 공교롭게도 이 미친 방언기도가 당시 LA에서 퍼진유행을 한국으로 역수입하게 되는 계기가 된것입니다. 아마 ㅈxx목사가 대표적으로 한국으로 끌고 들어온걸로 기억합니다. 처음엔 한기총에서 엄청 이단이라고 그러더니 요즘은 잠잠하네요.
즉, 오늘날 흑인들과 한인들이 하고 있는 방언기도는 단 하나의 성경학적 근거나 예시가 전혀 없다라는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어떤 영을 쫓아가고 있는지 심각히 묻고 싶을따름입니다.
그리고 또한 제가 매번 부탁을 하지만, 단 하나의 성경구절이나 방언기도의 형태 단어를 찾는다면 메일을 보내달라고 하는것입니다.
(마침 부산 신학대 박사 과정을 마치고 경남에서 나름대로 권위있으신 노우호 목사님이 이 방언기도의 폐해를 아주 적나라하게 파헤친 -방언을 검증하자- 라는 책이 있으니 검색하셔서 보시는것도 도움될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만약 방언기도라는것이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이고 성경의 가르침이며 혹은 사도들의 가르침이라면, 왜 갑자기 1970년대 산업시기에 너도나도 바쁜 시기에 슬며시 수입하듯 나타났으며, 무려 2000년동안 전혀 없었는지... 설명을 해줄분이 과연 있을까요?
계속 사도행전을 다음편에서도 살펴보겠습니다...
다음편부터는 유독 전세계 기독교 국가중에 한국 목사들이 성범죄나 성희롱발언 그리고 금권문제등에 비리를 많이 저질르게 되었는지, 방언기도와 연계해서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2015년 5월 25일 월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5편) - 방언기도의 구체적 폐해를 지적하는 사도바울
지난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4편에 이어서 고린도 전서 14장 방언편 입니다...
So likewise ye, except ye utter by the tongue words easy to be understood, how shall it be known what is spoken? for ye shall speak into the air.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There are, it may be, so many kinds of voices in the world, and none of them is without signification.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Therefore if I know not the meaning of the voice, I shall be unto him that speaketh a barbarian, and he that speaketh shall be a barbarian unto me.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고린도 전서 14장 8,9,10
지난 4편에 이어서 사도바울은 본격적으로 이상한 기도를 하는 그 형태를 엄숙하게 비판하고 나옵니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은 했지만, 사도바울은 벌써 고린도 교회에 퍼지기 시작하여 교인들 사이에서 양분된 이 방언기도라 하는 부분을 매우 양쪽을 분별하여 권고와 가르침으로 하다보니, 자세히 앞뒤 전후를 보지 않고 읽으면 오판이나 오역하기가 너무쉽게 되어 있습니다. 즉 이 고린도 전서는 당시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지요.
아무튼, 8~10절을 보면 더 이상 이 이상한 기도가 얼마나 무식한것인지, 말도 안되는것인지 단번에 사도바울이 지적하는것을 볼수 있을겁니다. 그래도 해석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축약해서 해석하면
"방언기도라고 하는것은 거론할 가치고 없고 어느 아프리카 야만인이나 하는것이다"
이제 OECD 국가 선진 반열에 들고 스마트폰도 세계에 만들어내는 우수한 민족이 되어가는 이때에, 우리도 좀 생각이 있는 사람이 되는게 그렇게 어려운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나갔다가 말없이 떠나는 이유를 잘 모르는것 같습니다. 아니 교회 목사들은 마치 중독이나 세뇌시켜서 교회에 묶을려고 하는 느낌만 준다는걸 본인들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Wherefore let him that speaketh in an unknown tongue pray that he may interpret.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
(let 의 동사를 잘못해석해놓았지요. 즉 그 알수없는 언어로 기도를 하는 그를 통역을 시켜보라는겁니다. 즉 그 사람이 무슨말 하는 지 알아보라는 뜻입니다.)
For if I pray in an unknown tongue, my spirit prayeth, but my understanding is unfruitful.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당연히! 그렇지요. 내가 만약 if 그 정신나간 방언기도를 하면 나또한 영으로 기도를 하는거지만, 전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사도 바울의 설명체 문장이지요..)
I thank my God, I speak with tongues more than ye all: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사도 바울은 당시 로마 출신의 외국인이었습니다. 학식도 풍부했고 다양한 선교지역을 나갈수 있었기에 여기서도 여러 외국어를 남들보다 잘한다는것입니다.)
Yet in the church I had rather speak five words with my understanding, that by my voice I might teach others also, than ten thousand words in an unknown tongue.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an unknown tongue - 그 희한한 정체도 알수없는 방언소리를 지적하는것입니다. 지난편에 설명했지요)
Brethren, be not children in understanding: howbeit in malice be ye children, but in understanding be men.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사도 바울이 간절히 호소하는 부분입니다. 제발 똑똑해져라. 이성적으로 생각해라 아주 절절하게 부탁하는 부분입니다.
Wherefore tongues are for a sign, not to them that believe, but to them that believe not: but prophesying serveth not for them that believe not, but for them which believe.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If therefore the whole church be come together into one place, and all speak with tongues, and there come in those that are unlearned, or unbelievers, will they not say that ye are mad?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사도 바울은 방언(외국어를 말하는 능력 혹은 은사) 을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누군가 어떤 외국인이 나에게 다가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면 귀가 번뜩일겁니다. 또한 그 사람이 바로 옆에 일본 친구한테 일본어로 또 그러면, 저는 이제 눈이 휘둥그래 질겁니다.....
그런데, 그런 외국인들이 엄청 많은 교회에서 그런일들이 벌어지면, 이젠 기이함을 넘어서 공포와 전율 그리고 신기함등 단지 미친 상황이다라고 판단할수 밖에 없을겁니다... 라고 사도바울이 오리지널 방언에 대해서 설명하는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이미 오순절 성령 방언은사가 외국어를 말하는 은사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지금 각성시키고자 비교하는것이지요. 그 정신나간 방언기도와)
If any man speak in an unknown tongue, let it be by two, or at the most by three, and that by course; and let one interpret.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 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But if there be no interpreter, let him keep silence in the church; and let him speak to himself, and to God.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Let the prophets speak two or three, and let the other judge.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번역상 위 방언은 바로 문제를 일으킨 어떤 사람이 가지고 온 그 정신나간 방언인데 - 이 부분에서 좀 설명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교회다니는 어떤분이 아니 1970년대 미국 흑인들이 남부와 중부등에서 외국어 방언을 한다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어를 약간 짜집기해서 그럴싸하게 사람들앞에서 방언은사 터졌다고 사기치고 다녔지요. 다른 교인들은 그걸 신기하게 봤지만, 막상 중국인들은 전혀 알아들을수 없는 사기다라고 한것이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습니다.(다음편에 방언기도의 역사편에서 다루겠습니다)
If 만약 어떤 사람이 an unknown tongue 알수없는 말을 한다면, 두 사람이나 세 사람정도를 붙여서 당시 교회의 질서를 따라서 - 교회 연단 설교 원칙이나 룰이 있었겠지요- 통역이 잘 되는지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이유는? 아주 자명하지요. 지금 고린도 교회에서 유행처럼 퍼질것을 염려하는데, 무조건 하지 말라 그러면 그리스 민사 재판까지 간 상황이라 반발이 일어날게 분명하고, 하지만 분명히 말도 안되는 거짓인데 용납하기도 그렇고, 그러면 어떤방법이 최선일까요? 바로 기존의 방식대로 통역하는 사람을 옆에 붙혀서 검증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Let your women keep silence in the churches: for it is not permitted unto them to speak; but they are commanded to be under obedience, as also saith the law.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And if they will learn any thing, let them ask their husbands at home: for it is a shame for women to speak in the church.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갑자기 엉뚱하게 사도 바울은 강한 톤으로 교회 여자들을 공격하는 논조로 생뚱맞게 말을 던집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여자들은 교회에서 입다물고 신앙생활 하라는걸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고린도 전서는 우리를 바라보고 쓴 편지가 아니라 긴박하게 그리스 민사 재판까지 갈정도로 싸움이 벌어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급히 쓴 전갈입니다.
여기서 유추해볼수 있는건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도 벌어지는 방언기도의 형태는 대부분 아니 거의 90% 이상이 여자 신도들에게서 일어납니다. 왜 그러냐면 남자의 두뇌와 여자의 두뇌 구조가 감성과 이성의 차이에서 현격히 다른부분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신도들은 주절거리는 방언을 넘어서 넘어지고 갑자기 연단으로 뛰어오르거나 울부짖거나 하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동반하는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여성은 분위기나 감성에 남자에 몇배에 이르는 에스트로겐 작용으로 심취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즉, 자매님들 사이에서 이 문제가 아주 격화된것이고, 주 추종자들이 여성 신도라는걸 바로 알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적 판단이 강한 남편(남자)에게 반드시 물어보고 살피라는 약간 공격적인 내용이지요. 그만큼 그리스 재판까지 갈정도로 큰 싸움이 된것이라는걸 또한 유추 할수 있고, 급기야 이 방언 헛소리 기도를 끌고 들어온 이들이 결국엔 간통, 간음등 성 범죄까지 부부사이에 퍼뜨릴정도로 문제가 된경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것은 이 방언기도라는것이 사람의 전두엽 두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하여 환영을 보게하고 특히 성적인 도착증과 비슷한 내분비 호르몬 교란을 일으키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그 대표적인것이 인도의 주술종교인 성적으로 난잡한 종교가 있지요. 거기도 똑같이 한국교회처럼 합니다. 심미안(제3의 눈)을 열려는 행위를 잘못하다간 아주 정신병이 들수 있고, 아마도 일부 목사들이 그러한 방언기도에 심취하여 자기통제권을 상실하다보니, 자기앞에서 넘어지고 이성을 잃는 여신도들에 욕정이 생기는 문제가 바로....
고린도 교회에서도 벌어진것 같습니다.
Wherefore, brethren, covet to prophesy, and forbid not to speak with tongues.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Let all things be done decently and in order.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결론을 사도 바울은 정말 멋지게 내립니다. 교회내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앞날을 풍성하게 하는 예언(날짜 맞추기가 아닙니다. 이 부분도 오늘날 점쟁이하듯한 예언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중에 예언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과 당시 고린도 교회 특성상 외국인들을 위한 통역 방언 speaking 을 하도록 유도하고 마지막에선 좀 적당히 해라~ 는 부드러운 규율적인 말씀으로 적정한 믿음과 행동으로 차분히 질서대로 정리하라고 마감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이 구절마다 번호가 매겨있어서 그 부분만 취하듯하면, 정말 안된다는것을 이제 느끼시나요?
그러면 정말 다행입니다.
방언기도을 하는 기독교가 점점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일등공신임을 우리모두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 사도행전 방언 부분도 연이서 계속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
2015년 5월 10일 일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4편) -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의 마음
지난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3편)에 이어서입니다.
Now, brethren, if I come unto you speaking with tongues, what shall I profit you, except I shall speak to you either by revelation, or by knowledge, or by prophesying, or by doctrine?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tongues 복수 - 타언어)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And even things without life giving sound, whether pipe or harp, except they give a distinction in the sounds, how shall it be known what is piped or harped?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고전14장 6절-7절
우리가 보는 개역성경및 많은 한글 성경들이 위처럼 정말 애매모호하게 번역이 이루어진데에는 초기 번역을 주도했던분들이 영어문장을 문장이해로 번역한것이 아니라, 단어 해석 위주로 진행한데 기초합니다.
거기에 후대 교역자들이 '성경은 신성한것이다' 라고 굳게 믿고, 일점일획도 가하지 않고 무려 60년 이상거의 그대로 이어져온게 오늘날 우리가 한글로 보는 성경입니다.
윗 첫 문장(고전 14:6절)을 다시 쉽게 풀어보면 이런 얘기입니다.
" 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타언어들)으로 말하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것 없이 말하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되리요? "(물음표 영문에 있습니다) - 당시 정황상 앞에서 외국어로 여러 외국에서온 성도들에게 통역하고 말씀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이해가 바로 될것입니다. 즉 그냥 말 전하는게 아니라는것이지요. 정성과 생각을 다해서 말씀을 통역, 통변하여 전하여야 된다는것입니다.
그러니... 7절과 8절에 바로 이렇게 연이어서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 피리나 하프같이 생명 없는 것들이 소리를 낼 때에 음의 구분을 주지 아니하면 피리나 하프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찌 알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치 않은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For if the trumpet give an uncertain sound, who shall prepare himself to the battle? 고전14장:8절
즉, 방언을 하는것을 두 악기에 비유하여 언어의 정확한 소리와 구분을 주지 않으면 우리가 도대체 무슨말을 하는지 어떻게 알수 있느냐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8절에선 확실하게 못을 박듯이 얘기하시지요. 우리의 기도가 중언부언 횡설수설 하면 그 결과가 아주 자명하다는것입니다.
즉, 좀더 사도바울의 마음을 헤아려서 결론내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횡설수설 이상한 소리를 내는 일부 사람들이 끌고들어온 방언기도가 우리의 일상적인 예배에서 하는 정상적인 기도의 형태가 아니라는것입니다.'
성경을 다시쓰고 번역하자 하면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볼것같어서, 이렇게 얘기하겠습니다.
1. 제대로 편지(서신 내용)를 전체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다 내려다보듯이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2.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반드시 원문이나 최소한 영어 성경등을 봐야 합니다.
3. 인용말씀만 짤라서 사람들에게 전하면 대부분 아니 거의 오역으로 전하게됩니다.
저는 성경 어디에서도 방언이 오늘날 목사님들이 전하는 통성방언기도형태가 있다라는걸 단 한글자 단 한문장도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분명히 오늘날의 그 방언기도 형태가 존재한다는 성경 구절이나 단어 하나라도 발견되는게 있다면 저에게 개인적으로 메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lovejesusall@gmail.com
계속 이어서 글은 계속됩니다. 이처럼 명철을 주시고 지혜와 올바른 지식을 통해 좀더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Now, brethren, if I come unto you speaking with tongues, what shall I profit you, except I shall speak to you either by revelation, or by knowledge, or by prophesying, or by doctrine?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tongues 복수 - 타언어)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And even things without life giving sound, whether pipe or harp, except they give a distinction in the sounds, how shall it be known what is piped or harped?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고전14장 6절-7절
우리가 보는 개역성경및 많은 한글 성경들이 위처럼 정말 애매모호하게 번역이 이루어진데에는 초기 번역을 주도했던분들이 영어문장을 문장이해로 번역한것이 아니라, 단어 해석 위주로 진행한데 기초합니다.
거기에 후대 교역자들이 '성경은 신성한것이다' 라고 굳게 믿고, 일점일획도 가하지 않고 무려 60년 이상거의 그대로 이어져온게 오늘날 우리가 한글로 보는 성경입니다.
윗 첫 문장(고전 14:6절)을 다시 쉽게 풀어보면 이런 얘기입니다.
" 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타언어들)으로 말하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것 없이 말하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되리요? "(물음표 영문에 있습니다) - 당시 정황상 앞에서 외국어로 여러 외국에서온 성도들에게 통역하고 말씀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이해가 바로 될것입니다. 즉 그냥 말 전하는게 아니라는것이지요. 정성과 생각을 다해서 말씀을 통역, 통변하여 전하여야 된다는것입니다.
그러니... 7절과 8절에 바로 이렇게 연이어서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 피리나 하프같이 생명 없는 것들이 소리를 낼 때에 음의 구분을 주지 아니하면 피리나 하프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찌 알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치 않은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For if the trumpet give an uncertain sound, who shall prepare himself to the battle? 고전14장:8절
즉, 방언을 하는것을 두 악기에 비유하여 언어의 정확한 소리와 구분을 주지 않으면 우리가 도대체 무슨말을 하는지 어떻게 알수 있느냐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8절에선 확실하게 못을 박듯이 얘기하시지요. 우리의 기도가 중언부언 횡설수설 하면 그 결과가 아주 자명하다는것입니다.
즉, 좀더 사도바울의 마음을 헤아려서 결론내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횡설수설 이상한 소리를 내는 일부 사람들이 끌고들어온 방언기도가 우리의 일상적인 예배에서 하는 정상적인 기도의 형태가 아니라는것입니다.'
성경을 다시쓰고 번역하자 하면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볼것같어서, 이렇게 얘기하겠습니다.
1. 제대로 편지(서신 내용)를 전체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다 내려다보듯이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2.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반드시 원문이나 최소한 영어 성경등을 봐야 합니다.
3. 인용말씀만 짤라서 사람들에게 전하면 대부분 아니 거의 오역으로 전하게됩니다.
저는 성경 어디에서도 방언이 오늘날 목사님들이 전하는 통성방언기도형태가 있다라는걸 단 한글자 단 한문장도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분명히 오늘날의 그 방언기도 형태가 존재한다는 성경 구절이나 단어 하나라도 발견되는게 있다면 저에게 개인적으로 메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lovejesusall@gmail.com
계속 이어서 글은 계속됩니다. 이처럼 명철을 주시고 지혜와 올바른 지식을 통해 좀더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2015년 5월 5일 화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3편) - 고린도전서 & 문맹에 가까운 교역자들
모든 성경의 중심엔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집중을 하고 그 주변을 바라봐야 참된 가르침으로 모든걸 해석할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모든 가르침이나 신약의 모든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위해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모든 가르침이나 신약의 모든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위해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태6:5~7
요즘 거의 모든 한국 교회들이 경쟁적으로 하는 '방언 기도'의 모습들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기도의 방법인지 그냥 간단하게 살펴보면 바로 답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이상의 신비한 주술적 권능과 축복을 끌어들이는 다른 기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과도한 오해를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말씀처럼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상(병고침, 축복, 응답)을 받을려는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말씀처럼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상(병고침, 축복, 응답)을 받을려는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방언 기도를 배운분들이 성경에 다른 기도 즉 방언기도가 나와 있다고 합니다. 아니 목사님들이나 교역자들이 그렇게 교회당에서 가르치지요.
그래서 신도들은 별 생각없이 고린도 전서 구절만 보고 방언기도를 왼쪽 사진들처럼 신비 기도로 굳세게 믿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지난 50년간의 오역의 역사의 시작인 잘못된 한글 성경 번역을 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 전서 12장은 앞선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2편)' 에서 알려드린것처럼 본격적으로 사도바울이 '방언 기도'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설명과 개요 그리고 권고를 하기 시작하는장입니다. (바울은 이 전서를 쓸때 아직 가보지 못하고 보고를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조심하며 양쪽을 분별하는데 애를 쓰는면이 문장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이 기도 형태를 끌고 들어온 무리들이 크게 격론하여 교인내에 다툼과 , 고소, 파벌등이 생성된지라, 사도 바울은 양쪽다 권면하는 쪽으로 써야 되서 매우 조심스럽게 설명을 하면서 쓰게 됩니다.
' To another the working of miracles; to another prophecy; to another discerning of spirits; to another divers kinds of tongues; to another 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을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12:10
그래서 신도들은 별 생각없이 고린도 전서 구절만 보고 방언기도를 왼쪽 사진들처럼 신비 기도로 굳세게 믿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지난 50년간의 오역의 역사의 시작인 잘못된 한글 성경 번역을 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 전서 12장은 앞선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2편)' 에서 알려드린것처럼 본격적으로 사도바울이 '방언 기도'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설명과 개요 그리고 권고를 하기 시작하는장입니다. (바울은 이 전서를 쓸때 아직 가보지 못하고 보고를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조심하며 양쪽을 분별하는데 애를 쓰는면이 문장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이 기도 형태를 끌고 들어온 무리들이 크게 격론하여 교인내에 다툼과 , 고소, 파벌등이 생성된지라, 사도 바울은 양쪽다 권면하는 쪽으로 써야 되서 매우 조심스럽게 설명을 하면서 쓰게 됩니다.
' To another the working of miracles; to another prophecy; to another discerning of spirits; to another divers kinds of tongues; to another 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을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12:10
사도 바울은 시작부터 자세히 은사가 무엇인지 1절부터 분명히 종류와 설명을 나열합니다. 그리고 방언이 무엇인지를 기초설명부터 자세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만한것은 그것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셨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위 구절의 후반부를 직역 풀이하면 이렇게 됩니다. '다른이에게는 각종 외국어를 잘 말하는 은사를 주시고 그 다른 어떤 이에게는 동시에 그것을 통역하여 그 자리에 있는 회중에게 번역을 잘 전하는것이니' 지난편에서 분명히 말씀드렸지만 고린도는 국제 무역항이라 한 예배에 거의 15나라의 상인들이 참석한 전례가 없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tongues 는 외국어라고 예)까지 들면서 지난 1편에서 설명을 드렸지요
그러면서 계속 권면하는 글을 쓰다가, 28절에 이르러 'And God hath set some in the church, first apostles, secondarily prophets, thirdly teachers, after that miracles, then gifts of healings, helps, governments, diversities of tongues.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이문장을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평범하게 알고있듯이 방언을 하는것은 받는것이 아니라 사도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당시 여러정황상 교회내에 필요로하여 세운 능력있는 사람들의 재능 혹은 은사를 말하는것임을 단독 직입적으로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29절에 ' Are all apostles? are all prophets? are all teachers? are all workers of miracles?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Have all the gifts of healing? do all speak with tongues? do all interpret?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라고 지난번 언급했던 반어법으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부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되묻는것입니다. 즉 각자의 재능과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교회에서 봉사하면 된다는것입니다. 여기서도 방언은 all speak with tongues 즉 당시 15종류의 외국어를 말하는 능력을 얘기합니다.
30절 'But covet earnestly the best gifts: and yet shew I unto you a more excellent way.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당연히 그런형식적인 은사보다 더 큰 은사인 사랑의 은사 봉사의 은사등을 사모하라고 권고하는것이지요.
13장 부터는 이제 앞선 설명을 확실히 하는데에 사도바울은 목표를 맞춥니다.
그래서 1절에서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and have not charity, I am become as sounding brass, or a tinkling cymbal.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어떤 신비한 것에 촛점을 맞추지 말라는 권고로 여러 비유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And though I bestow all my goods to feed the poor, and though I give my body to be burned, and have not charity, it profiteth me nothing.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장3절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13장 13절
14장은 이제 분명히 고린도 교회들에서 벌어진 방언 기도에 대해 하지 말것을 신중히 얘기합니다.
'Follow after charity, and desire spiritual gifts, but rather that ye may prophesy.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1절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1절
그런데,,,,,,,,,,,,,,,
For he that speaketh in an unknown tongue speaketh not unto men, but unto God: for no man understandeth him; howbeit in the spirit he speaketh mysteries.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위 구절은 대충보면 '방언을 하는자가 하나님한테 알아 들을수 없게 한다..' 라고 해석을 할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벌어진 그 이상한 an unknown tongue (단수) 알려지지 않은 말에 대해 전체적으로 설명을 가하기전에 자기가 보고받고 들은데로 그런 사람이 단순히 너희안에 있다는것으로 설명을 하는것입니다. 지난편 참조하세요 구약 신약에서 얘기하는 방언(외국어 통변은 모두 복수 입니다. tongues or languages) 그래서 he speaketh mysteries. 미스터리라고 한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절에 바로 'But he that prophesieth speaketh unto men to edification, and exhortation, and comfort.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 한글성경에서 끼워넣은 단어)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즉 읽는 고린도 성도들이 비교하라는 비교법을 사용하는 문장내용입니다. 그래서 지난편에서도 얘기했지만, 절대로 구절을 짤라서 해석하면 엄청난 오류와 반대해석으로 빠지게 되는것입니다.
다시 재 설명하듯 통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 너네 고린도교회에 요즘 알수없는 기도말을 하나님께 하는 이가 있는데, 알다시피 주위성도들도 못 알아듣고 신비한 주술적인 언사를 하는이가 있더라. 그러나 너네들도 알다시피 예언이라는것은 사람에게 알아듣게 말하며 권면을 전하고 편케 하는것이다" 이렇게 번역이 되는겁니다..
그래서 마침내 4절에서 분명히 둘을 비교하는 말을 하십니다.
He that speaketh in an unknown tongue edifieth himself; but he that prophesieth edifieth the church.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 한글성경에서 끼워넣은 단어)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즉, 신비스런 알수없는 말을 그는(문제를 일으켰던 사람) 자신을 내세운다는내용입니다. 영어성경조차 덕을 세운다는 말은 없습니다.
번역을 잘못 한거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이제 바로 보이십니까? 그동안 얼마나 교회에서 잘못말하고 이상한 기도를 권장했는지 보이십니까? 그리고 고전 14장에는 전혀 '덕' 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당시 번역을 이상하게 했던 분들이 '오이코도메오' 의 뜻을 이상하게 번역하여 앞에 덕이라는 단어를 넣는 바람에 마치 방언이 덕을 세우는듯한 뉘앙스로 비춰지게 되는것입니다. 단어의 원뜻은 자기를 내세운다 그런의미에서 세운다라는 뜻입니다.
'I would that ye all spake with tongues, but rather that ye prophesied: for greater is he that prophesieth than he that speaketh with tongues, except he interpret, that the church may receive edifying.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 한글성경에서 끼워넣은 단어)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5절에선 번역도 이상하지만 그것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마음을 좀 살펴봐야 합니다. 그 이상한 기도를 끌고 들어온이가 당시 인기를 끌만큼 지난 오순절 성령 외국어 은사는 당시 성도들에게 흠모와 사모의 대상이었습니다. 즉, 당시 교인이라면 모두가 그런 기적과 같은 통역 방언 은사를 받고 싶어했었을겁니다.
그래서 '다 너희가 방언-외국어의 은사(tongues 복수) 을 말하기를 원하나, 하지만 좀더 하나님의 영과 교통하여 예언의 은사를 추구하는게 좋지 않겠냐'는 일종의 권고의 문장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면 6절부터 성경이 자세히 잘 보이실겁니다.
다음편에서 14장 중반부부터 더욱 그 이상한 기도를 끌고 들어온 오늘날 방언 기도의 폐해에 대해 계속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다시 재 설명하듯 통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 너네 고린도교회에 요즘 알수없는 기도말을 하나님께 하는 이가 있는데, 알다시피 주위성도들도 못 알아듣고 신비한 주술적인 언사를 하는이가 있더라. 그러나 너네들도 알다시피 예언이라는것은 사람에게 알아듣게 말하며 권면을 전하고 편케 하는것이다" 이렇게 번역이 되는겁니다..
그래서 마침내 4절에서 분명히 둘을 비교하는 말을 하십니다.
He that speaketh in an unknown tongue edifieth himself; but he that prophesieth edifieth the church.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 한글성경에서 끼워넣은 단어)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즉, 신비스런 알수없는 말을 그는(문제를 일으켰던 사람) 자신을 내세운다는내용입니다. 영어성경조차 덕을 세운다는 말은 없습니다.
번역을 잘못 한거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이제 바로 보이십니까? 그동안 얼마나 교회에서 잘못말하고 이상한 기도를 권장했는지 보이십니까? 그리고 고전 14장에는 전혀 '덕' 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당시 번역을 이상하게 했던 분들이 '오이코도메오' 의 뜻을 이상하게 번역하여 앞에 덕이라는 단어를 넣는 바람에 마치 방언이 덕을 세우는듯한 뉘앙스로 비춰지게 되는것입니다. 단어의 원뜻은 자기를 내세운다 그런의미에서 세운다라는 뜻입니다.
'I would that ye all spake with tongues, but rather that ye prophesied: for greater is he that prophesieth than he that speaketh with tongues, except he interpret, that the church may receive edifying.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 한글성경에서 끼워넣은 단어)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5절에선 번역도 이상하지만 그것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마음을 좀 살펴봐야 합니다. 그 이상한 기도를 끌고 들어온이가 당시 인기를 끌만큼 지난 오순절 성령 외국어 은사는 당시 성도들에게 흠모와 사모의 대상이었습니다. 즉, 당시 교인이라면 모두가 그런 기적과 같은 통역 방언 은사를 받고 싶어했었을겁니다.
그래서 '다 너희가 방언-외국어의 은사(tongues 복수) 을 말하기를 원하나, 하지만 좀더 하나님의 영과 교통하여 예언의 은사를 추구하는게 좋지 않겠냐'는 일종의 권고의 문장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면 6절부터 성경이 자세히 잘 보이실겁니다.
다음편에서 14장 중반부부터 더욱 그 이상한 기도를 끌고 들어온 오늘날 방언 기도의 폐해에 대해 계속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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