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4일 월요일

성경은 삼위 삼체를 말한다. (1)

여러분들의 많은 검색과 성원으로 드디어 Google 순위에서 첫페이지, 관련 검색어로는 World 한글 검색 랭킹 8위안에드는 놀라운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글 딱 20여개 만으로 이 정도의 관심과 폭발적 검색 순위는 그만큼 얼마나 우리가 무지몽매했고, 그저 남들이 그러하닌깐 나도 따라서 허무하게 신앙생활해왔는지 또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탈과 방임 그리고 망가져왔는지 알수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수 있는 계기 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져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정확한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과연 다음 세상의 진실인지 여러분들은 보게 될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더욱  심층적인 내용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두분이 같은분이다 하면 왼쪽에 서시고 서로 다른 두분이다라고 생각되시는분은 오른쪽에 서십시요."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느쪽에 서시겠습니까?

   vs

이 주제가 갖는 의미는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의 이성이 맹목적인 믿음을 따라가야만 구원을 얻는것인지, 아니면 아예 기독교 신학 자체가 엉터리 번역으로부터 출발한것인지 결정을 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 처음 입교하는 사람들이 가장 혼동하는 부분이 어떻게 하나님이 예수님이 되었다가 성령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님이 되었다가 예수님이 되었다가...

믿음은 이성으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자매님(형제님) "

이런 강요를 주입식으로 집어넣을려고 합니다. 이것이 안받아들여지면 말 그대로 수련회나 단체 기도 금식 대회등 아예 머릿속을 깨끗히 reset 할려고 교회는 나옵니다.

그러다 군중심리로 동화가 되어지면 "아~ 삼위일체가 이런거구나!"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하지만, 감정보다 이성이 강한 사람한테는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설사 교회를 다닌다 하여도 절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한분으로 믿지 않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정확히 성경 하나만 가지고 이 문제를 정확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이라
  5. 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제가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4부 참조, 많은 사람들이 사실 글이나 문장이 뜻하는 바를 잘 이해를 못하는 문맹인들이 많습니다.  특히 근대에 들어오면서 학문적 체계가 일반인까지 오게 되어 그나마 문맹율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아직도 글을 읽되 내용을 이해못하는 사람이 상당수입니다.












따라서 매우 기본적 수준으로 천천히 요한복음 1장을 재해석 해 드리겠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이라
  5. 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일단 빨간색만 보시라, 무엇이 연상되고 떠오르나요 .... 정말 쉽게 얘기하자면

'세상 태초에 말씀이라 불리우는 자가 계시는데 그 말씀이라 불리우는 자가  지구도 만들고 동물도 만들고 온갖 것들을 다 만들었는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바로 그 일들을 그 말씀이라 불리우는 자와 같이 하나님께서 안한것이 하나도 없다!' 라는 내용 아닙니까?

즉, 요한이 강조법을 쓸려고 말씀 = 예수 그리스도 비유하여 얘기한 내용이 아니겠습니까?

  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그래서 14절에 완전히 완벽히 철저하게 해석을 내려서 분명히 말씀= 예수 그리스도 라고 얘기를 하는것입니다.

14.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특히 14 절에서 요한은 독생자라는 단어를 분명히 씀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beget - begotten이라는 단어를 써서 동물, 혹은 인간이 새끼(자녀)를 낳는다)임을 분명히 선언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일 위 파란색의 "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는 문장은 왜 들어갔을까요? 요한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한분임을 알리기 위해? 아니면 또다른 비유가 있어서?

4복음서를 잘 보시면 각 서신을 쓴 작자들의 성격을 알수 있는데, 특히 저자 요한은 말이 짧지 않습니다. 어떤 단어 하나를 설명하더라도 위와같이 15 문장을 할애해서 매우 조밀조밀하게 글을 쓰는 성격이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 예수님이다라는 초이상학적 내용을 설명할려고 저 단어를 썻으면 아마도 한장을 할애해서 왜 하나님은 곧 예수와 한몸인지 자세히 설명을 하여 믿지 못하는자들을 설득했을것입니다.

  1.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요한은 다른 저자와 다르게 어떤 단어를 인물에 추가할때 칭호를 확대하여 적는습관이 있는데,

  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칭호라는것, 랍비는 선생이라는것 등등으로 인물의 뒤에다가 직책(Position ) 의 단어를 붙여 거룩하게 성인을 표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즉,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판단 속성 생각 그리고 신성이 아주 일치해서 곧 하나님이시라
그렇게 표현을 한것입니다. 즉 세상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만들어내면서 위임의 원리에따라 요한이 느낀데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고자 그런 표현을 한것이지요....(교리를 얘기한것이 아니고 its not declaration the doctrine of God!!!)

그럼 왜 요한은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건 간단한것이지요. 창세기 1장 1절에 말씀이 가라사대~~~로 나오듯이 실제로 이 지구를 만들고 각 동물군 식물군을 만들어논 장본인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바로 구약부터 신약까지의 구원자가 바로 하나님의 지시(order) 를 받아 행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자 1장1절부터 장엄하게 표현을 한것이지요.



따라서 삼위일체라는 엉터리 이론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만들어낸 황제아부 집단들이 만들어낸 하나님= 예수 이론은 허무맹랑한 유체이탈 화법이며 황제를 하나님 다음으로 만들려는 종교적 대 사기극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지몽매한 당시 글을 잘 몰랐던 대중에게 그 이론이 퍼져 지금은 도대체 바꿀수도 없는 먼길을 가버린것이지요.

꼭 지금 정권 과 시대를 보는것 같지 않나요?



다음 시간에도 이 내용이 계속 이어집니다.





2015년 12월 18일 금요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조 & 누가 과연 들어가는가? ( 2 번째 )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분이실까......

이런 기본적인 그분들의 인격과 성품 그리고 성격을 모르고서 어떻게 그분들이 주관하는 거룩한 곳을 들어가겠다고 오늘도 울부짓는지 과연 가슴에 손을 얹고 차분히 생각해 보시기들 바랍니다.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감성의 우격다짐이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종교이고 교회일까요?
세계가 온통 벌집 쑤시듯이 골모리를 썩는 IS 도 결국 맹목적인 종교추구와 신에 대한 제대로된 고찰없는 맹신에서 나오는 과격함 아니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오늘날 한국 교회도 지역과 위치만 틀렸지 그들과 별반 다름없는 믿음으로 무장하여 나가는건 아닌지 생각해 볼일입니다.


제가 알기론 예수 그리스도는 단호한 분이십니다. 성경에 사랑의 문구가 많다하여 그분이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미소로 넘기는 분은 절대 아니십니다. 이 그림은 성전을 금전과 상인들로 넘치는것을 분개하여 직접 채찍을 들고 내리치고 쫓아내는 장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이 간음한 여인을 깨끗이 용서 하셨을까요? 정말 목사들 말처럼 이여인을 용서하셨을까요? 그러면 왜 바닥에 고민하듯이 무언가를 적으면서 한참 생각에 잠기며 바리새인과 제사장의 힐난을 맞받아 치셨을까요? "왜 용서하노라" 는 말대신 " 더 이상 그와 같은 죄를 짓지 말라" 고 얘기 하셨을까요.....

앞뒤 말의 현격히 다른 의미를 여러분들은 느낄수 있으신가요?

정말 .....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걸 다 용서하는 분이실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모든 그림을 잘 살펴보면 인자함의 미소도 보이지만 한편으론 악에 대하여 절대 양보없는 단오함도 분명히 내포된 인상도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언가 좀 보이십니까? 저는 분명히 보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간다는건 어떤 두려움으로 가는것이 아닌 나와 내가 속한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려는 일련의 거룩한 소명의식입니다.

그것이 어떤이에게는 가정이 될수 있고 국가가 될수 있으며 어떤이에게는 교회와 사회 혹은 내 이웃이 될수 있는것입니다.

거룩한 소명의식이 없이 오늘도 하루종일 교회당에 모여 복 바라고 어떤 영험한 영적을 기대하는게 과연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걸까요?

계속 저와 같이 고민해보시지요.....











2015년 11월 14일 토요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조 & 누가 과연 들어가는가?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주님앞에 서게될것이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고해야 할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0~12 : '우리가 다 하나님앞에 설것이며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할것이며'

고린도후서 5:10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마치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속에 우리가 그 속에 있어서 지나온 시간들을 그려보면 과연 얼마나 가슴뿌듯하며 자신과 주변을 고양시키고 행복하게 만들어 왔는지 하나하나 셀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 마음깊이 자랑할것이 없고 부끄러움이 가득하다면 더 늦어 죽음의 장막너머로 가기전에 이생에서 최선을 다하여 가족과 친구, 주변에 친절하고 선행을 베푸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짧지않은 인생을 뒤로 하고 가게될 하늘의 장소는 사실 여러군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만약 하늘이 단순하게 천국/지옥으로만 나뉘어져 있다면 각자 성도들이 신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에대한 보상이나 혹은 같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 혹은 그렇지 않고 싶은 사람들과의 적절한 장소와 공간 분할에 대한 이론적 성립이 안되는 불평등이 신학에 모순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린도 전서에서는 분명하게 밝히되...

(고린도전서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There are also heavenly bodies and there are earthly bodies; but the splendor of the heavenly bodies is one kind, and the splendor of the earthly bodies is another.
(고리도전서 15:41)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The sun has one kind of splendor, the moon another and the stars another; and star differs from star in splendor.


저자는 하늘의 장소가 여러곳이 있고 그속에 속하는 각 지체들의 영적 수준이나 보상에 따라 모여사는 형태가 다름을 빛의 밝기(Splendor )비유로써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보상적의미가 있기 때문에 번역에 잘 안어울리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딱히 다른단어가 없어서 이 단어를 차용하여 번역을 넣은것으로 사려됩니다.)

즉, 각 수준에 맞는 영들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심판대에서 판별 분리하여 그 어울리만한 사람들을 각 장소에 맞게 보낸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일전에도 얘기했듯이 그래서 구원이라는것은 자기자신만의 천국 상속이 아니라 사랑하는 주변과 가족들과 함께하는 구원이라고 그래서 설명한것입니다.

정말 간단히 생각해볼때 나 혼자만 믿어 나 혼자 천국에 가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구원이겠습니까? 구원의 진정한 정의가 무엇입니까? 가족은 전부 지옥에 떨어지는데 자기만 천국에 있으면 그래도 그것이 진정한 구원이라고 볼수 있는것입니까?

그리하여, 좀더 놀라운 해석을 고린도 전서 15장에서는 제시합니다. 즉 현대 한국교회에서 주구장창 주장하는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라는것이 허무맹랑한 얘기라는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바울의 가르침이 나타납니다.


(고전 15: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2)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2)침례를 받느냐
(고전 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이 구절은 심오한 부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교인들 사이에서 논쟁이 될법한 복음을 모르고 죽은 자들에대한 구원의 문제 (특히 친인척중 먼저 돌아가신 가족분들)를 정확하게 예법과 의식을 동반하여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즉,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돌아가신분들중 침례를 받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대리의식을 했던 부분이 있다는것을 바로 알수가 있는것입니다.

여하간....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것을 기본적으로 알고 믿고 그에 따른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이웃사랑에 대한 인격 고양과 성숙이 이루어질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쌓아온 공덕과 신실함에 따라 적절한 곳에 보내져 살게 되는것이

초기 기독교의 기본적 교리이며 가르침임을 우리는 알수 있는것입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앙의 정수이며, 우리를 안락과 영생으로 이끄는 곧고 좁은 길이기에 찾는자가 적고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는이가 적다라고 성경에 나와 있는것입니다.

제가 일전에도 얘기를 하였지만, 그래서 한국 교회에선 실질적인 구원이 없다라고 단오하게 말씀을 드린것입니다.

므나의 비유를 괜히 예수께서 얘기한것이 아닙니다.
헛수고라는 단어의 무서움을 기억하십시요.
그래서 진실안에 사는것이 중요합니다.


참고) 이러한 내용을 가르쳤던 근대교회가 있었는데 스웨덴에 있었고 1800년대 초에 Newyork 에서 있어으며, 현재는 LA 롱비치 근처에 관광지로 유명한 아름다운 교회에서 교리로 가지고도 있습니다. 즉,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목사들의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 구원은 가족단위로 이루어짐 (3편)

하늘의 구조와 여러 거할곳을 지금부터 얘기하겠지만, 정말 열린 마음으로 성경과 이 세상을 바라보면 지금 여러분들이 바라보는것보다 좀더 많은 좋은것들이 보일겁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로 시작하는 주기도문의 기본 구조를 보면 명확하게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기본적인 가족 단위의 틀안에 자리잡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기본적인 가족관계가 이 지상생활을 통해 계속되고 우리가 성인으로써 가족안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수있도록 노력해야 하는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하나님의 자녀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 믿음을 가진 자녀와 그렇지 않은 부모 혹은 시어머님 며느리간의 종교적인 갈등으로 빚어지는 항간의 요즘 모습들은 과연 그 바탕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마음다툼인지 아니면 진실을 함께 하고자 하는 좋은 뜻에서의 요구인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교회을 다니는분들이 믿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적인 부분을 매우 벽을 쌓아두고 특히 가족과 친지간에도 많은 다툼을 일으키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것을 오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수십만년 혹은 수만년에 걸쳐서 인류를 바라보시면서 그동안 많은 시간에 걸쳐서 살아온 이 지상의 우리의 선조와 가깝게는 돌아가신 친지 어르신들을 보살피고 계시다는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벧전 3: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벧전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베드로 전서 3장은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로 시작하는 장입니다.

즉, 당시 교회형제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로를 알았다고 교만하지 말고 주위에 강압하지 말며 너희가 하나가 되고 오히려 겸손하여 사랑이 가득하라고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극적인 하나의 사실을 보여주고자 바로 3장:18절에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있던 3일 동안 영옥(지옥이 아닌 일정시간 심판때까지 기다리는 어두운 고통의 장소)을 방문한 내용을 간략히 소개를 합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지금만큼 참 악한 사람들이었지요.. 그 사람들조차 방문하여 무언가를 가르치고 선포하신것입니다.

아마도 당시 회중교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사도들이 더욱 자세히 설교를 했을겁니다. 그러나 성경 저자는 간략하게 이 극적인 사실을 단 2문장으로 적었고 후에 로마 성경 편찬위원들이 상당히 삭제와 더불어 자신들이 이해못하는것을 제하여 버려서 오늘날 중요한 부분이 성경에서 해석이 애매하게 되어 덮어 넘어가버리는 문제가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것을 지금부터 이 구절과 다른 성경 구절을 통해서 이제 유추와 증거로 확실히 밝혀낼수 있습니다.

1. 천국을 가는것은 기독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2. 예수 믿으면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고 얘기하는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3. 내 가족중에 믿지 않는 자는 지옥을 간다고 말하는것은 매우 악한 교리이며 사랑의 하나님을 잔인한 분으로 매도하는 처사입니다.

4. 지옥에 관한 강한 강조와 강압적인 교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제가 깨달은건 믿을건 가족뿐이 없다라는것이고 그 깊은 사랑의 관계를 대신할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관계를 등한시하여 다른 사람이나 목사 혹은 주변 교인들을 더 의지하여 상처받고 사기당하고 혹은 그보다 더 위험한 지경에 이르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앞으로 저와같이 살펴보겠지만, 우리는 가족단위로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기본원리입니다....

2015년 9월 12일 토요일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 교회를 보내기전에 심리학을 공부시켜라 (2편)

우리는 내가 아는 범위 즉 만지고 먹고 보는것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 속거나 실수 하지 않을거라는 착각을 하고 삽니다.

예를 들어 마트에 가면 자신은 필요한것이 있고 그것만 사러 간다는 착각 마케팅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의 어머님들은 온갖 산전수전 다 겪어서 절대로 십원 한장 손해 안볼것이다 생각하지만, 이미 대형 마트들은 이러한 손님들의 마음속까지 변화시켜 지갑을 반드시 열게하는 상술을 정확히 부립니다.

즉, 구매 과소비(상품 과대 판매 사기)를 안당할려면 사람은 눈을 감고 쇼핑을 하던가, 돈을 살만큼만 정확히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옆 친구나 이웃 아주머니에게 돈을 꾸어서라도 사겠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속지 않을려면 아예 그 대형 마트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동네 슈퍼나 시장에서 조금 사고 돈을 아낄것인지 아니면 대형마트의 기록적인 성장에 돈을 기부하고 싶다면 아무 생각없이 오늘도 집근처 대형 마트를 가면 됩니다.


EBS 다큐 프라임에는 이런 인간의 이중적인 상황 대처 능력에 대한 재미있고 예능처럼 쉽게 심리학을 말해주는 프로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 " 방언 그 오역의 역사" 시리즈를 통해 절대로 방언기도하는 교회에 딸자식이나 부인등을 보내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한것을 기억하실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심리학에서 정확히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을 A4 종이로 적어서 고민 상담받으러 오는 여학생들에게 무작위로 전부 똑같이 나눠줍니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손바닥 모양을 보고 각자의 성격을 알수있고 그 결과를 분석해서 준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학생들은 모두 손 바닥 진단만으로 자기 고민이나 성격등을 정확히 아니 거의 완벽하게 맞혔다고 매우 놀라워 합니다. 그 모습이 하도 진지해서 다들 이제야 그 박사님(?)을 통해 무언가 자기 인생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을 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실 처음 나눠준 인생 상담내용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나눠준 내용에 불과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대형교회에서 복음 마케팅으로 사용하는 집단 최면 기법입니다. 사실 한국 교회가 의도적으로 그런수법을 썻다고 저는 생각치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2천년동안 악도 더욱 진화하여 교회라는곳에 악이 세상적인 방법 즉 금권과 함께 들어온것입니다.

찬양 집회, 판매티켓, 음료수 판매, 식사 대금, 각종 수련회, 부흥회, 치유집회 - 여러상품등이당신이 아주 작은돈이라 생각할만한곳에 여러형태로 경제학이 숨어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목사님을 사실 예수님과 버금가는 맹목적인 추종을 보이는 이유도 무언가 그들이 자신들의 속을 정확히 알고 설교 혹은 상담한다고 믿기 때문인 부분도 있습니다.



위 실험은 자신의 건강 상담과 진단을 위해 온 환자를 완전히 속이는 내용입니다. 환자는 자기 문제에 너무 몰두해서 의사가 상담을 하는동안 3번이상 바뀌는지 전혀 모릅니다. 대화를 하는 가운데에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모두는 어떤 유사성에 놓이면 무서울만큼 바보가 됩니다. 배운 사람 혹은 모자란 사람 그런건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바로 상황이나 어떤조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수도 있는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여러 부분중에 우리가 교회라는곳으로 좁혀서 보면 어떤 마인드로 자신과 가족을 지켜나가야 할까요?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과 아내 남편을 훈련시켜야 할까요?

<디모데 후서 3장>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 후서 4장>
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배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않아요....

진리란것은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우리의 이성과 판단력을 위해 많은 분야와 학문에 존재합니다. 그것이 이치적으로 부합되고 진리의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에 맞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실질적인 구원과 인생의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알게됩니다.

오늘도 자신이 은혜 충만하여 어떤 장소 혹은 성령집회를 통해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모임 중독자 ' 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구원이 무엇인지 조차 모릅니다.






참고문헌) 인간의 두 얼굴 EBS 다큐프라임, 범상균 칼럼니스트


2015년 9월 3일 목요일

쉬어가기 - 태권도 와 한국교회 그 은밀한 관계 결국엔 돈...

본격적인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라는곳을 한번 둘러보고 시작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지난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장장 10여편에 걸쳐서 여러분들은 신약성경상의 모든 부분을 저와 같이 낱낱이 살펴보면서 이제는 확고하게 교회에서 가르치는 방언기도라는것이 100% 거짓과 사기라는것을 알게되었을겁니다.

이제... 지금부터 다루게 될 한국 교회에서 가르치는 "믿으면 구원! 천국 복음 ! 상급! 예수믿고 천국 불신지옥! "

이런것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저열한 수준의 목사들 가르침인지 이제 저와같이 하나하나 뜯어가면서 같이 보실것입니다.

또한 이 부분에 있어서 요즘 한국 몇몇목사들이 문제가 있다고 양심적으로 고백하며 들고 일어나는것도 다룰것입니다.

저는 무도를 하는 하는 사람으로써 각종 무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녁엔 항상 도장에 나가서 무예를 닦습니다. 매일 타박상은 기본이며 주말이면 꼭 작다고 볼수 없는 부상을 달고 삽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만큼 숫자가 많은게 동네 태권도장입니다. 저는 무도인으로써 한국 무도 특히 태권도가 세계속에 우뚝 자리매김을 원하는 사람입니다만...


실제로, 처음부터 승단심사 때까지 몇군데를 옮겼다녔는지 모릅니다. 이유는 띠 돈 장난질 혹은 관장들의 과도한 성 집착내지 음주 및 성격변태적인 부분이 많아서입니다. 아니 무슨 도장마다 돈을 그렇게 요구하고 기간을 늘려서 승단을 천천히 늘리려고 하는지..... 뭐쫌 특별한 기술이다 싶으면 이 노망난 노인네 관장들이 요구하는건 왜 그렇게 많은지....

 


그래서인지 변태목사들만큼 추태 태권도 사범 소식도 늘 미국 신문기사를 장식하곤 합니다.

저는 그래서 자녀를 둔 특히 딸을 둔 부모님들은 정말 조심해야 할곳이 방언기도하는 교회와 태권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꿋꿋이 참으면서 그 관장의 특별한 기술정도만 연마하고 많이 옮겨다니고 마침내 조용한 곳에서 승단을 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내가 무도를 배울려고 온거지 아니면 무슨 도장비리를 몸소 느낄려고 온건지 심리적 박탈감도 컷습니다.



무언가 제대로 할려면 꼭 돈 문제를 걸고 넘어오고, 그러다보면 시간가지고 장난치고.....

급기야, 이런 저질 행태들이 미국 사회에 알려져서, 성인들이 하는 태권도는 이제 자취를 점점 감춰지고 아이들이 재롱잔치정도로 부모가 보내는 유치원이 되가고 있는게 한국 무도의 현실입니다.

미국 Texas 와 몇군데에서만 양심적인 관장들에 의해 잘 운영되는 도장도 있습니다. 빌클린턴 대통령도 그곳에서 유단자이기도 했지요.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건,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과 무엇이 만나면 너무 잔인할정도로 변태적이고 짐승처럼 돌변합니다.

오죽이나 하면 미국 친구들이 지금도 가라데 어떠냐? 라고 은근히 일본 무도를 더 치켜세우는 분위기가 많을까요?

한마디로 정말 창피합니다. 정말 이렇게 훌륭한 발기술과 공중날라차기의 정석인 태권도가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었을까요?

  

저는 단언하지만, 한국교회엔 예수 그리스도는 안계십니다. 주의 천사가 그래도 순수하고 영적으로 허기진 몇몇 분들을 위해 성령으로 애쓰고 인도하는건 알지만, 단언컨데 한국 대형교회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안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그럼 누가 계시고 그들이 느끼는건 무엇일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영은 결단코 아닙니다.

바로....

문제는 거기에도 돈이 핵심이고 그에 연관된 복음 마케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돈으로 사고 거래하는 일종의 행위는 주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모든형태의 악입니다. 봉사와 각종 수련회을 핑계로 교회수입이 이루어지고 커피판매 무슨 판매 각종 판매를 통한 이익금 회수또한 악입니다.

자고로 돈 앞에 장사없고 돈이 있는곳에 그 마음이 있는법입니다.

사탄이 사람을 파괴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가 바로 돈과 빚입니다. 

저는 선의의 목적으로 돈 거래가 이루어지는것을 단언컨데 단 한번도 못봤습니다. 그럴수있다면 회계 장부를 오픈 할수 있겠지요. 세금도 납부 할수 있고 투명한 재정지출 수입 규모도 밝히 공개할수 있습니다.

절대로 못합니다. 이유는 교회도 사업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돈받는 목사제도와 함께 말입니다.

왜 말씀을 전하는데 돈을 받어... 그런 직업을 왜 택해.. 성경을 안다는 사람들이...

적어도 한국 대형교회는 깨끗이 사라져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 우리는 어디에 속하여야 하는가 (1편)

구원(救援) Salvation 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를 놓고 과연 저 단어의 종교적 의미와 단어의 뜻부터 생각을 해보는것이 중요할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얘기하는것이 아래의 세가지입니다.

1. 하늘나라 천국에 들어가는것

2.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것

3.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 거듭나는것


이 세가지를 기존 기독교 칼뱅,어거스틴 신학을 기본으로 두는  "예정설- 구원받을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와 로마서의 사도바울의 "이신칭의론以信稱義 - 오직 믿음으로인해서 구원받는다" 에 입각하여 해석을 지난 1225년 이후 기독교교단의 일방적 해석과 성경밖의 과도하고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현대 한국교회의 모티브가 된 '구원-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구원이라는 단어와 그 해석은 13세기 이후의 중세(종교적 암흑시기 13~18세기- 인간을 자신과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하고 불태우고 갖은 고문을 하던 시기) 교회에서 나온 강압적인 이론들입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하늘의 뜻도 성경의 원뜻도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아닌 복음의 가르침으로부터 한참 빗나간...

구교와 신교사이에서의 대립에서 나온 일종의 어두운 인간의 신학개념입니다.

단언 하자면, 오늘날 일반 교회(장로,감리, 성결) 교파등에서 얘기하는 구원론은 - 천국간다 지옥간다.구원받았다. 구원받는다. 상급받는다 - 는 표현들은 상당히 성경적으로 질이 낮고 가르침의 자체가 수준이하의 내용들입니다.

사실, 이 단어보다 우리는 eternal life (영생) 에 촛점을 맞추어서 성경을 바라보면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신앙의 정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보입니다.



또한 앞서 말한 .........

하늘나라의 구체적인 구조와 하나님은 누구시며 우리는 왜 이지상에 왔으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지 그 방법과 절차를 성경을 통해서 보게됩니다.

성경은 거룩한 경전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눈(the eyes of faith) 으로 바라봐야만 하늘의 비밀과 진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면에서 일반 학문적 접근에의한 시대적인 해석은 잘못되고 편협적인 내용만 보일뿐입니다. 바로 13세기 신학이 그렇게 탄생하였고 오늘날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된것이지요.

저는 확신하지만 여러분들이 eternal life 에 대한 내용을 알고 소망이 생긴다면 기존 한국 교단을  과감히 떠날것임을 압니다.

이유는 그곳엔 그들이 말하는 구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기존 한국 교단에서 믿음으로 인한 일반 구원론에 반기를 두는 목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존 기독교 구원론이 문제가 있다는것이지요. )


이 내용을 지금부터 지난 방언기도의 부조리를 다룬 편처럼 하나하나 저와같이 성경을 통해서 사도바울과 야고보가 말한것을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