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9일 토요일

상식밖의 성경 해석 그리고 상처주는 종교 결혼 상담

여러 종교 상담론을 가끔 살펴보면 상담을 요청한 사람의 주변관계나 환경을 살피지 않고 상처를 받을수 있는 답변을 보곤 합니다.

"봐라 성경에 글자 그대로 여기에 나와있으니, 그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다."

"수혈하지 마라", " 결혼을 약속하더라도 같이 사는건 죄다 " , " 십일조는 꼭 내야 한다" , " 예수 안믿으면 반드시 지옥간다"

각종 교파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건 교회를 나오라는건지 아니면 협박하는건지 저로써는 당췌 헷갈려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애의 정신이 흐려지는걸 많이 봅니다.

많은 내용중 오늘은 결혼 제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남녀간의 결혼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부분은 맞지만, 그것이 과연 법률과 연관되어서 절차를 따질때는 과연 100% 이치적으로 실행할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 나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처럼 결혼에 대하여 무서울만큼 형식적이고 관례적이며 힘이들게 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니 2030 세대가 오늘도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사는건만 해도 다행인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는 과연 결혼제도의 형식화에 목을 매어야 하는 시대인지 오히려 반문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확고 부동하게 결혼제도를 강조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또 어떨까요?

(살전 4: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살전 4: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살전 4: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1)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살전 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살전 4: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살전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살전 4: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살전 4: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바로 상당수 종교계에서 (기독교 상담, 워치타워 상담, 종교 상담, 천주교 상담 기타등등) 이 구절들을 (특히 파란색부분) 가지고 결혼전 혼전동거를 하는 커플들에게 죄의식과 더불어 낙담하게 만드는 내용들이 매우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다변화된 사회에서 획일적으로 잣대를 들이대는것이 얼마나 위험 천만한건지 오늘 또한 제가 보여드리도록 할것입니다.

우선 위 데살로니가전서의 번역이 문제가 있다는걸 생각해야 합니다.

영어 원문은 이렇습니다.

1 Finally then, brothers, we beg and exhort you in the Lord Jesus, that as you received from us how you ought to walk and to please God, that you abound more and more. 2 For you know what instructions we gave you through the Lord Jesus. 3 For this is the will of God: your sanctification, that you abstain from sexual immorality, 4 that each one of you know how to control his own body(Vessel)* in sanctification and honor, 5 not in the passion of lust, even as the Gentiles who don’t know God, 6 that no one should take advantage of and wrong a brother or sister in this matter; because the Lord is an avenger in all these things, as also we forewarned you and testified. 7 For God called us not for uncleanness, but in sanctification. 8 Therefore he who rejects this doesn’t reject man, but God, who has also given his Holy Spirit to you

아주 간단히 얘기하겠습니다.  위의 한글번역 파란색 단어와 영문 빨간색 단어들을 살펴보면 데살로니가 전서 저자가 과연 누구에게 말하고 있으며 그것의 주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다르게 번역되었는지 바로 알수가 있습니다.

1. 위 내용은 당시 교회형제들에게 말한 내용인데, 부부관계나 그에 준하는 결혼에 대한 내용이 전혀 아닙니다. (만약 저자가 부부사이의 결혼과 그 성약을 얘기한다면 자매 sister 들에게도 같이 모인자리에서 말씀을 전했을겁니다.)

2. 즉 이 편지가 쓰여진 아테네 배경은 당시 만연했던 성적 타락과 그것의 교회 침투를 막고자 하여 자신의 육체- his own body (Vessel)를 sexual immorality (오늘날로 얘기하면 음란물, 창녀와 자는것, 각종 성매매등등)로 부터 정결하게 하여야 한다는 포괄적인 형제들에게 말하는 순결의 내용을 얘기하고 있는것입니다.

3. 이 구절을 가지고 어쩔수없이 결혼전 같이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을 겁박하고 죄의식을 주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전혀 안됩니다. 즉 한글 성경의 와이프 부인이라는 단어는 후대에 이 내용을 번역하면서 억지로 끼워 놓은 내용입니다. (KJV 영문에는 wife 로 나오지만, 이 부분도 문제가 있는것이 다른 고린도 전서나 기타 성경에는 분명히 부부를 얘기할때는 husband & wife 라는 내용을 같이 넣어서 결혼을 얘기하고 있는것을 볼때, KJV 영문은 과도한 해석입니다.)

다행이도 하나님께서는 만인의 공평과 형평을 생각하시어 다양한 형태로 사실혼에 준하는 법률적 장치를 인간의 영감을 통해서 마련하셨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정식 혼례나 신고를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려깊게 세상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혼이라는것의 절차와 형식이 물론 매우 중요한건 사실이나, 모든 가정을 꾸리고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둘이 한몸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에게 멍에와 족쇄를 달고자 하는 장치가 아님을...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2015년 8월 15일 토요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본질은 무엇인가...과연 누구인가?

필자는 적지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떤 진실과 사실을 접근할때 객관적 시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감정의 절제를 통한 영원의 가치를 두는것이 정말 중요하다는것을 경험과 학문으로 배워왔습니다

한때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민중의 삶속에 깊이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아 사회와 정치적으로 아픈 시민들의 마음에 근원적 성찰을 가져다 주었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근본에 집중하여 일말의 깨달음을 얻었는지 한번 각자의 마음들을 들여다 보고 싶습니다.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 '

인생의 여러부분에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다가올 운명과 죽음너머의 그 어떤 본질에 대해서 가장가깝고 날카롭게 사람들에게 하나의 기준을 던졌습니다.

바로 구원과 영생이라는것입니다.

그 이전에 죽음 Death 를 극복하고 영적세계와 현세를 유일하게 하나의 매듭으로 분명히 기준을 만든 분은 바로 제가 알기론 이분 예수 그리스도외엔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 그리스도 만큼 동서양을 넘나들며 회자되고 매일 기도의 단상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영적 힘은 많은 이들에게 겸허한 마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과연 어떻게 구원을 받는다는것일까요? 영생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지난 처음 몇편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서두적인 기준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특히 교인분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거라 생각합니다. 결코 부정이 아닌 평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한번쯤은 넌지시 생각했던 부분들을 건드린거라 감히 판단합니다.

그런면에서 다시한번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종교 혹은 교회를 다닌다는것이 구원을 받는다는것인가요?
예수그리스도를 정말 믿으십니까...

그분으로 부터 어떤 개인적인 증거나 확신을 받으셨나요?

그럼 어떻게 따르고 있습니까?
죽음 너머 그 영생에 대한 기쁨과 안도가 있으십니까?


이 정도의 증거나 확신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저처럼 자연스럽게 개인의 신념을 주위에 전달할려고 나설겁니다.

이러한 일년의 과정이 개인에게는 고집이 아닌 변하지 않는 진실 혹은 정의가 되는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교회에 나가며 박수치고 떠들고 각종 사교와 모임속에서 이분을 외치지만, 정작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느끼는 분은 극히 소수라는것을 많이 봅니다.

친밀하다는것은 개인적으로 가깝게 서로를 안다는것입니다. 그럴때 지난 1,2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믿음' 이 생긴다는것입니다. 믿음의 깊은 면에는 신뢰라는것이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어야 따르려는 행동이 나오는것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


저와같이 계속 보시겠지만 성경의 저자들은 분명히 우리가 통상적으로 아는 단순한 '믿음'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한글의 원뜻을 제대로 안다면, 일반 구원론이라고 가르치는것이 얼마나 낮은단계의 이론인지 아실겁니다.

그런것은 우리를 확신과 믿음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깝게 아는데서부터 영생과 구원의 시작이 됩니다.

저는 뉴욕, LA, 워싱턴 국립 박물관을 많이 다니면서 특히 예술가들이 사물을 우리일반 사람들보다 좀더 세밀하게 묘사하는것에 많은 감탄을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화려한 요즘 댄스가수나 유행에 지친 눈과 마음을 미술관에서 감동으로 씻어내리곤 합니다.


위 모습들은 지난 수세기동안 예술가들이 시대를 이어오며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그림들입니다. 

저는 확신하지만, 때론 일반인들이 그냥 들이대면서 찍는 사진보다는 전문가들의 사진이 좀더 정확하고 섬세하며 그 보다 인물화로 표현하는 훌륭한 그림들은 감정까지 표현한다는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위 그림중 문을 두드리는 그림을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방문하여 두드리며 나아오라고 하시지만, 결코 밖에서 문을 열고 강제로 들어가시지는 않는 성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문고리가 없지요) 또한 예루 살렘을 내려다보면서 근심하며 슬픈 눈으로 그저 하루를 오늘도 보내는 사람들과 성읍을 바라보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모습속엔 평화로운 모습도 보이시지요.

자.....

이 그림들만 바라봐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분은 현대 많은 교회들이 주장하는 ' 믿으면 천국 안믿으면 지옥 ' 이라는 저질수준의 용어로 겁박하고 협박하는 분이 아니라는것쯤은 보여집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매우 차분한 분이셔서 지난편에서도 계속 얘기했지만, 울부짓으며 떼쓰는 방언기도라는것도 결코 받아들일 분은 아니라는것도 보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성임하고 안수하는 그분의 모습속에는 생각이 깊고 어떤 절차와 의미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단오함도 보입니다. 그러면에서도 사랑과 자애의 마음이 조화롭게 그림들 전체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본적 성품부터 파악하고 다음편 '구원救援-Salvation 이란' 에 대해서 같이 좀더 알아보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2015년 7월 28일 화요일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11편) - 무당목사들의 한국교회 그리고 새로운 초대 교회들 탄생.

 사도행전 21장 39절 But Paul said, I am a man which am a Jew of Tarsus, a city in Cilicia, a citizen of no mean city: and, I beseech thee, suffer me to speak unto the people.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And when he had given him licence, Paul stood on the stairs, and beckoned with the hand unto the people. And when there was made a great silence, he spake unto them in the Hebrew tongue, saying,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사도행전 22장 2절 (And when they heard that he spake in the Hebrew tongue to them, they kept the more silence: and he saith,)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26장 14절 And when we were all fallen to the earth, I heard a voice speaking unto me, and saying in the Hebrew tongue, Saul, Saul, why persecutest thou me? it is hard for thee to kick against the pricks.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자, 이제 거의 대단원의 막이 다다릅니다. 사실 신약 성경 전체적으로 '방언' 이 들어간 모든 문장을 여러분들은 저와 같이 다 보아왔습니다.

특히, 사도행전은 Medical Doctor 출신인 '누가' 가  단어 하나하나를 다른 신약 성경의 저자들과는 다르게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거의 곡해 없을일이 없을정도로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는것을 계속 저와 같이 볼수 있습니다.

성경의 방언 Tongue 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외국어 foreign language 를 말하며, 그 어떤 성경 구절에서도 오늘날 한국 아프리칸 목사들이 주장하는 '방언기도- 정신줄 놓는 신의 기도' 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저와같이 또한 계속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용한 위의 사도행전 26장 14절을 보시면 알겠지만, 하늘음성 조차 분명하게 모두가 알아들을수 있는 히브리언어로 사도 바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방언기도가 존재한다고 가르치는 보수 목사들이 주장하는 '신과 인간이 교감하는 알아 들을수없는 음성' 이라는것은 지난 편들에서도 계속 살펴보았지만 전부 잘못된 성경번역과 1960년대 이후 LA와 남부 미국 그리고 아프리카 선교지역등지에서 만들어낸 주술무당파적 사이비 내용들입니다.

그것의 폐해들이 계속 언급한것처럼 목사들의 성적일탈과 금권 탐욕의 불에 기름을 끼얹는 상황이 나왔고 각종 범죄 목사들의 모습이 흉측해지거나 매우 사람답지 않은 몰골로 변화되는것도 다 귀신들의 이 장난질에 동화되어 나온 일종의 표면적 징후입니다.(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입니다만, 정말 탈 많은 목사들 얼굴 보면 도저히 신앙인이라고 볼수 없는 인상들이 죄다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폐단이 목사제도라는것을 간파한 요즘 전 세계에서 초기 신약시대의 (초대 교회- 목사없는 일반 신도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Australia 호주와 유럽등지 에서는 비록 적은 숫자지만 일반 교인들이 모여서 자체적으로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신앙간증을 나누는 예배와 교회가 나타나고 있고, 미국에서도 Starfish manifesto 와 Starfish vision 과 같은 운동과 책 전하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가정교회, 순례하는 교회 -볼프강 사이먼 저자의 책들이 유명 서점에 나와 있을겁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이유중의 이유는

바로 목사제도하의 교회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구원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형 교회 포기하는 교회목사들이 왜 그런지 좀더 설명할 기회가 나중에 있을겁니다.

아무튼 시간내고 자신들의 열정과 정열을 바쳐가며 다니는 교회생활이 사실은 목사들의 종교확장과 교세에 도움은 될지언정, 진정한 자신의 구원(영생-Eternal life)이나 주님에 대한 이해나 봉사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는걸 본인들이 성경을 통해서 안다면 많이 놀라울겁니다.

그만큼, 일반 사람들의 성경 문장 이해 능력이 지난번에도 말씀드린것처럼 매우 낮기 때문이고, 거기에 잘못된 성경번역과 목사제도가 완전히 장님으로 신도를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2015년 7월 11일 토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10편) - 공통점 그리고 한국사회








이 사진은 우리가 자랑하는 S 기업이 기존 사원들을 강제로 카드섹션으로 집단 교육시키는 장면을 담은 자료입니다. 해당 동영상은 클릭--! 하시면됩니다.

자세히 보시면 얼마나 우리가 비 상식의 사회에 살고있는지 단번에 보고 느낄수 있습니다...

물론 집단체조 형식으로 자기들끼리 유쾌하고 즐거우면 된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얘기할수 있지만, 저런 군중동원이나 집단화는 개개인의 의사 자율권 침해라는 무서운 도덕적해이와 보이지 않는 집단 이지매가 동시에 작용할수 있어서 공산국가 이외엔 해낼수 없는 형식의 퍼포먼스입니다.

“선배들과 동기들은 또 가고 싶다고 난리들이다. 힘들었지만 사무실 출근하는 것보단 그 때가 좋았다고. 추억이라고. 그런데 난 절대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물론 일하는 것보다 재미가 있을 수는 있지만 또 경험하고 싶지 않아. 부서에 배치 받고 처음 사무실에 왔던 날의 충격은… 하얗게 쭈욱 늘어선 책상들. 쭈우우우우욱. 살짝 현기증이 일었다. 그게 첨엔 무언지 몰랐는데 수련대회를 지나고 나니까 알겠더라. 나는 그곳에서 대충 30×40 정도 되는 카드 섹션의 (10, 23) 인가 아무튼 그런 자리였다. 그렇게 커다랗게 움직이는 카드 섹션의 픽셀 하나. 그건 나를 무진장 초라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무언가 앞에 서있는 무력함이랄까.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

전직 직원이었던 한 블로거는 “노조가 없는 것은 노조의 싹이라도 보이면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잘라버리는 회사의 노무방식의 탓도 있지만, 기꺼이 굴욕을 감수하기로 다짐한 직원들 스스로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치열한 내부경쟁과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 회사의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 순응형 인간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교육들, 그리고 총수를 향한 충성심 강요”를 떠올리면 “그 회사를 그만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는 거죠.
....

자,, 이젠 한국 교회로 넘어와서 같은 얘기를 해보지요.

He said unto them, Have ye received the Holy Ghost since ye believed? And they said unto him, We have not so much as heard whether there be any Holy Ghost.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3And he said unto them, Unto what then were ye baptized? And they said, Unto John's baptism.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침례로라
4Then said Paul, John verily baptized with the baptism of repentance, saying unto the people, that they should believe on him which should come after him, that is, on Christ Jesus.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When they heard this, they were baptized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6And when Paul had laid his hands upon them, the Holy Ghost came on them; and they spake with tongues, and prophesied.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외국어를 말하는)도 하고 예언도 하니

지난 시간에 이어 사도행전 19장에서는 '누가' 가 순서대로 어떻게 우리가 거듭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지 관찰자적 입장에서 기록을 알리고 있습니다.

위 절들을 함축하면 순서대로 이런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대화(토론,문답,이해)--->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결심의 침례---> 안수 ---> 방언(외국어은사- 지난편에서도 설명했지요. 똑같이 계속 '말하다' 라는 표현으로 여러언어tongues 복수형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예언(가르치는 은사- 이부분은 나중에 다루어보지요)

제가 계속 강조하지만, 의사인 누가는 그 어떤 복음서 저자들보다 한 문장을 적더라도 명백하게 사물과 행위들을 아주 원리대로 자세히 적고 있어서 다른 견해가 필요없게끔 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 교회들이 행하는 기도실에 밤새내내 박혀서 "따라해봐, 우랄라 샤바샤~ " 목사들이 주문대로 훈련 혹은 교육하는 방식의 방언기도라고하는것은 성경적으로 볼때ㅡ 전혀 존재하지도 않고, 절대 있어서도 안되며 복음의 원칙과 원리에서도 위배되는 내용이라는것입니다.

지난 10여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1890년대 방언이라고 하는 글자 하나 번역 잘못한게 이런 지경까지 온것인데, 문제는 교회내에서 이 귀신들린 방언기도가 문제 있다고 주장하고 개혁을 외치는 사람을 오히려 거꾸로 사단이 들었다고 공격하거나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몰아치는게 한국 교회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을 대체하는 나라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면서에서 교회만으로 좁혀서 볼때, 고쳐져야할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위의 침례라는것도 영어 원문으로는 baptized 라는 동사형식을 쓰는데 물에 완전히 수장되듯이 잠겨야하는 원뜻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이치적으로 생각할때 세례식이나 물끼얹는식은 전혀 사도들이 전한 방식의 내용과 다른내용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자주 하는 얘기가 ' 그까짓거 대충하지 뭔 세세히 따지냐' 라고 반문할수 있는데, 그런 사고 방식으로 대충사니 인생 망가지고 나라망가지는거 한순간이라는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지 이해가 전 안갑니다.

위 사도행전 19장을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그만큼 의식과 형식도 중요하여 침례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받으라고 하여 새로운 제자들이 기존의 요한에게서 받은 침례를 다시 받는 모습을 또한 보실수 있고 그제서야 성령의 임재와 더불어 각종 능력의 은사가 나타난것입니다. 

제가 다시 누차 강조드리지만, 한국 왠만한 대형교회들은 그들이 말하는 구원을 받을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성경에서 사도들이 강조한 내용만으로 살펴볼땐 분명히 그렇습니다. 제가 억측을 부리는것이 아니라 지금 저와같이 신약성경을 그 시대로 돌아가 자세히보면 여러가지면에서 확연히 다름을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더구나, 

목사들이 행하는 방언기도라는데에는 우리의 전두엽을 파괴하는 아주 악랄한 중독 메카니즘이 숨어있습니다.

지속적 소리와 시각 자극은 사람의 측두엽전두엽 부분을 자극하는데, 일종의 마약 효과와 더불어 점차 서서히 환청이나 신경 마비등을 동반한 중독으로 사람을 바꾸는 현상을 동반합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behavioral addiction 행동 중독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쇼핑중독을 못견디고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가정주부얘기나 홈쇼핑에서 물건을 판단하지도 않고 말만 믿고 이것저것 사들이는 행위등등이 바로 이런 반복 시청이나 노출등에 의한 중독현상입니다.


현재 교회 목사들이 성적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여 벌어지는 천태만상이 교회내에 의외로 왕왕 존재하는게 사실입니다.

이 현상을 개개인의 일탈이라고 보면 큰일날 문제입니다. 바로 불을 끄고 어둠속에서 괴성과 신들린 모습들속에서 환청이 들리는 전두엽 파괴에의한 환청과 충동과잉으로 봐야 하는 귀신들린 행위입니다.


일전에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은 하였지만, 사람이 충동조절에서 실패하는데 가장먼저 특히 남자가 나타나는것이 바로 과민성 성적충동입니다.

이것은 연령과 학식 혹은 인격을 불문하고 나타나는데, 특히 도박중독자들과 마약 중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성적 중독자로 같이 빠지는 현상과 매우 똑같습니다.

감히 말씀드린다면 절대로 여러분들의 여인과 딸 자식 자녀들을 방언기도를 조장하고 행하는 교회나 기도집회에 보내면 안됩니다. 나중엔 그들의 두뇌에는 성경의 중요한 교리나 의미보다는 현란한 목사의 발짓 손짓과 콘서트음악같은 무대에 사로잡혀 사탄의 올가미에 단단히 묶여 구원의 확신도 없는 삶이나 망상에 빠져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여러분들은 무당을 다시 모시고 교회에 나가는것뿐이 안됩니다.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9편) - 목사제도를 없애야 나라가 산다.

미국에서 University 과정을 마치면서 개인적으로 내렸던 결론은 우리 동양 아니 한국인들이 나아가야할 과정중에서 필히 원칙과 규범,원리 A true, principle and rule 등에 대한 양보없는 정신을 좀 서구로부터 배워야한다는 결론에 다달았습니다.

우리 한국 문화는 세계속에 한류라 하여 감성적으로 많은 동감과 발전을 가져오고 있지만, 아직도 모방경제나 카피상품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중국 인도로부터 추월을 당하고 여러가지 우려섞인 모습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급기야 많은 젊은이들이 살기힘든 대한민국을 떠나 이민을 고려해야 하는 경제사회 약소국으로 요즘 전락하고 있는다는것에 개인적으로 심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러한 국가적인 환난은 결국 우리의 정신과 사상에서 오는 문제일수 있다는것에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저와같이 계속 이 방언기도 부분만 살펴봐도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목사들이 와전시키고 뒤틀고 오역하여 가르치는지 아실수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이 대충 대충 , 그리고 원칙보다는 실리와 효율에만 매달려 눈에 실질적인 보상이나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조급증적인 즉 병적인 트라우마에서 나온 일련의 문제라는것을 또한 직시해볼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원칙과 정확성에 벗어난 과정을 걷다보면, 반드시 탈이나고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왜 ? 서구인들이 발전은 더딜지언정 원칙을 강조하고 가깝게는 건널목 신호를 반드시 지키며 학문적으로는 절대로 인간관계나 동정으로 점수를 주지 않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 무려 10여편에 이르는 이때즘...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무엇을 느끼십니까?


  제가 한국 서울, 미국 LA NY  좀 제대로 된 가르침을 하는곳이 없는가 한국 대형교회들을 가봤지만, 마음속 깊이 절망하고 실망만 하는것은 그곳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백수 무당들과 온갖 아름다운 세상 가르침으로 포장된 귀신의 투전판뿐이 없다라는것을 발견했습니다. (실망스러워 격하게 좀 표현했고 물론 신실함을 찾는 몇몇분들도 좀 봤습니다.) 조금만 목사들이 얘기하는거 집에와서 신약성경과 대조해보면 거의 아니 90% 사실과 다른것을 가르치는것을 발견했을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본 예배에서는 마음은 들뜨고 좋은데 집에와서는 뭔가가 꺼름찍한 알수없는 기분이 드는건 개인적으로 성경을 제대로 알기원하는데에서 온 비교분석때문에 그런걸까요?

저만 이러면 저는 가히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폐단을 느끼는 성도들이 한두명이 아니고 급기야 미국의 어느 대형 교회 목사는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교단을 이끌었다고 대형교회 포기 선언까지 하고 있는게 요즘 기독교계의 현실입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미국 시카고 Willow creek church 를 이끄는 담임목사Bill Hybels가 공식적으로 officially "우리는 교인 숫자 늘리는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데에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라고 지난 30년간 자신들의 자체 연구 결과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바로 이 교회가 한국 교회들의 우상이된 표준 대형교회입니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신약 성경 그대로 가르치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데, 교회에 금력과 권력이 결합이 되니 도저히 성경대로 가르쳤다간 자신들의 경제효율에 안맞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도 모집에 세상적으로 말씀을 예쁘게 하는 스타 목사들이 필요하고 종교연예인등이 양성되니 일반 성도들은 교회에 와서 재미있는 사교활동에 촛점을 맞추게 되고 말 그대로 예배에 앉아 말씀듣는 로보트가 되어버리니 no brain 화 되어가는 결과가 결국 지난 32년간 교회사역 결과로 도출된것이지요.

돈이 그렇게 무서운겁니다. 원칙을 벗어나는것이 그렇게 무서운겁니다.

직업으로 갖는 보수받는 목사제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평신도가 서로 가르치고 말씀하며 훈련하고 운영하는 초기 신약성경 교회로 돌아가야 기독교도 살고 나라도 삽니다.

그 정신을 한국 교회에서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일단 한국 교회는 성경번역부터 다시 하고 방언기도 부터 없애면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6월 24일 수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8편) - 백수 무당과 샤머니즘 그리고 없어져야할 목사 제도

 무엇이 세상을 가슴 뛰게 할수 있을까요? 이 운동은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다양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교회재부흥을 위해 많은 여러가지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밝히 진실을 얘기하자면..

'모든 신앙과 영성 그리고 세상으로의 외침의 실효성은 개개인의 영적수준과 자립 그리고 발전에서 나온다' 는 참신앙인의 모습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평신도 교회 중심의 중요성과 결속 그리고 신앙이 주요한 세상사람들이 바라보는 기준이라는것이지요.

그런데, 정상적으로 교회교육과정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좋은게 많은데, 왜 한국 교회 아니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은 기독교 교회를 떠나가고 있을까요?

바로 목사 시스템이 갖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존재 하지 않았던 직업적 성직자 제도가 세상과 결탁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바람에 오늘날 기독교가 쇠퇴하는 일등 공신이 되어버린 세상의 돌뿌리게 된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
And when the people saw what Paul had done, they lifted up their voices, saying in the speech of Lycaonia, The gods are come down to us in the likeness of men.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그럼 지난편에 계속 이어서 사도행전14편은 지난번 7편에서도 말씀드린것처럼 직업의사 출신인 '누가' 가 아주 상세하게 방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루가오니아 의 방언'  이라고 분명히 외국어 스피취능력을 얘기하고 있고 추후에는 방언 앞에다가 각 지역명을 넣는 세심함을 보입니다. ( 직업인 의사 답게 정확하고 세심하게 부분별로 표현하는 누가의 개인적인 기록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어디를 살펴봐도 오늘날 한국 - 흑인 목사들이 인도하는 광란의 방언기도라는것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사도바울부터 심히 금하는 경고의 내용만 볼수 있다는것을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럼, 조금만 신약성경을 시간내서 대형교회 목사들이 잘 살펴보면, 이러한 방언 기도의 폐해와 문제를 잘 알수 있는데, 왜 모두들 침묵하거나 아니면 굳세게 방언기도를 종용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적 은사'다 라고 설교하며 가르치고 있을까요?  

바로 목사직의 특수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인들과 아프리칸 흑인들은 인종문화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탄압과 민중의 슬픔이 매우 복합적으로 자리잡은 부분이 많다라는것입니다. 굳이 여러 예를 안들어도 흑인 노예문제와 우리의 일제치하에서 짐승많도 못한 학대와 각종 침략전쟁을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샤머니즘-기복신앙 (즉각적인 복내림과 정신줄 놓게 만드는 효험)이 종교적 기초가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부분은 비판의 대상이기보다는 불쌍한 우리네 전통과 아픔을 다독여야하는 포용의 시각으로 봐야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돈과 결탁이 되면 무서운 폐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냉정하게 메스를 (사도 바울처럼) 가해야 하기 때문에 슬픔이 느껴집니다. 즉 목사는 직업이기 때문에 경쟁과 성장이 주요한 사명이될수밖에 없는 경제적 흐름때문에 폐해가 나타난다는것입니다.

아무튼, 1940~1960 년도의 극도의 세계적 공황과 전쟁을 통해서 정상적인 종교성 보다는 당장 해결이 필요한 무당파적 주술형태가 기독교와 맞아떨어지면서 국가적인 교회부흥이 미국남부와 한국에서 벌어졌고, 그래서 지난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전혀 엉뚱한 형태의 정신줄 놓는 방언기도라는것이 교회에 들어와서 오늘날 목사들의 권위와 영적파워의 도구로 성도들을 다스리는 권한과 인도가 된것입니다. (백인들 기독교 문화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기회되면 다루겠습니다.)

또한 추후 살펴보겠지만, 목사직은 초기 그리스도교회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공식적인 보수를 받는걸 상상도 못한 시대였기 때문에 목회직은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원칙에서도 벗어난 교회 명칭이며 존재하지도 않았던 별정직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가 다시 일어설려면 목사직을 가감히 없애야 합니다.

그것은 또한 각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발전에도 악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다음편에서는 목사들의 방언이 어떻게 성적도착증과 각종 금권비리로 연결되는지 바로 얘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2015년 6월 10일 수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7편) - 베드로의 왕국열쇠와 목사직분의 문제


While Peter yet spake these words, the Holy Ghost fell on all them which heard the word.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And they of the circumcision which believed were astonished, as many as came with Peter, because that on the Gentiles also was poured out the gift of the Holy Ghost.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For they heard them speak with tongues, and magnify God. Then answered Peter,
이는 방언(-외국어들)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Can any man forbid water, that these should not be baptized, which have received the Holy Ghost as well as we?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And he commanded them to be baptized in the name of the Lord. Then prayed they him to tarry certain days.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지난 사도행전 초기 부분에서의 방언 문제와 더불어 이제 사도행전10장에서는 저자인 '누가-Doctor'가 방언기도에 대해 좀더 정확히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의사인 누가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답게 표현을 정확히 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있고 듣는사람이 있다"라는 행동적이고 행위적인 표현으로 정확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은 당시 15개 언어국중 외국인을 얘기하는것이지요? 즉, 한국 목사들이 얘기하는 기도의 형태가 전혀 아니라는것입니다!

(의사들은 수술이나 치료도중 말한마디 잘못하면 엉뚱한데 집도가 되니 정확한 단어선택이 중요한 직업이지요.)

즉, 요즘 목사들이 얘기하는 알아듣지 못하는 주술적인 신비언어가 아니라는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수석 사도의 제일 사도로써 하늘왕국(많은 엉터리 목사들이 천국 열쇠라고 해석하는데 전혀 아닙니다.-나중에 하늘의 구조와 왕국의 형태에 대해 언급을 해보겠습니다)의 열쇠를 부여받고 사역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늘과 동시에 땅에서도 사람의 구원을 거둬들일수도 뗄수도 있는 그 열쇠는 오직 구약-신약 통틀어서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영광스런 직분의 열쇠입니다. 그 어느누구도 이것을 대신할수 없는 신성한 권능이지요.

성전직분의 권능이나 그 어떤 대제사장 교사 집사 권사도 행해서도 혹은 행할수도 없는 고유의 재판관과 같은 거룩한 권능입니다.

그러한 것을 오늘날 목사들이 어떻게 유린하고 찬탈하며 흉내내는지 성경만 보고 비교하면 바로 분별이됩니다.

당신들 목사라는 사람들 분명히 질문하나 던지겠습니다.

" 방언 기도 주술 치료 혹은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라는 권능을 어디서 받았습니까? 누가 직접 줬습니까? "

기도 했다가 받았다. 기도 가운데 성령이 주었다고 헛소리 하시면 안됩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장 21-24)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니 이제 부터 강조하지만

방언기도를 권유하거나 주술치료등을 권장하는 목사들로 부터 떠나는게 답입니다. 

교회가 혹시 떠나기 어려울정도로 인간관계가 많다면,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시고 인간적인 마음이나 신앙을 주지 마십시요.

여러분의 영혼과 몸은 값지고 소중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성경이 저와같이 이렇게 보시면 알겠지만 절대로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방언부분만 살펴도 불과 한 경전에 5분도 안걸리며 금방보고 해석이 되는데.....(물론 조금 영어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조금만 사리분별 가지고 차분히 보면 대개의 진실이 다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 목사들이 이렇게 방언기도 주술치료등에 매달리는걸까요?

...

바로 신약시대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목사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편에서 좀더 지난편에서 언급한 목사들의 비행과 비리 성적이탈등과 더불어 자세히 함께 다뤄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