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3일 수요일

성경은 삼위 삼체를 말한다. (2)



지난편에 이어 ) 성경 곳곳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 서로 다른분이라는것을 말하는곳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일단 지난 요한복음 1장에 이어  3장에서도 요한은 분명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서로 다른분임을 엄숙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
(요 3:31)○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요 3:32)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요 3:33)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요 3:34)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요 3:35)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요 3:36)아들 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 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 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John 3:31-36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31 The one who comes from above is above all; the one who is from the earth belongs to the earth, and speaks as one from the earth. The one who comes from heaven is above all. 32 He testifies to what he has seen and heard, but no one accepts his testimony. 33 Whoever has accepted it has certified that God is truthful. 34 For the one whom God has sent speaks the words of God, for God[a] gives the Spirit without limit. 35 The Father loves the Son and has placed everything in his hands. 36 Whoever believes in the Son has eternal life, but whoever rejects the Son will not see life, for God’s wrath remains on them.

요한복음 3장은 분명히 그 아들 the son 이라는 표현으로 확실히 못박으며 하나님께서 보내신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고, 또한 그의 전권( all of power & authority)을 양도(위임) 받아 세상사람들에게 영생을 주려한다는것을 분명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들 머리에 그림이 그려지나요?



그래도 혹시나 성경의 어려운문체(고어체)를 보면 이해가 안되는분을 위해서 아주 간단히 한줄로 설명하겠습니다.


 ' 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을 위임했다는내용입니다. '
군대를 다녀오신분은 이렇게 이해하시면 간단합니다. 사단장이 부사단장이나 참모장에게 현장에서의 전권을 위임하고 작전 하달 명령을 내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바로 그 구절이...
(요 4: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 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하나님 = 나를 보내신 이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부친께서 계획하신 일련의 목적(영생을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는 영광)을 위해 이 세상에 내려왔다는 내용입니다.

아들의 권한
(요 5:19)○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20)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요 5:21)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요 5: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 5: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요 5: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2)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 5: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 5:27)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19 Then answered Jesus and said unto them,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The Son can do nothing of himself, but what he seeth the Father do: for what things soever he doeth, these also doeth the Son likewise.
20 For the Father loveth the Son, and sheweth him all things that himself doeth: and he will shew him greater works than these, that ye may marvel.
21 For as the Father raiseth up the dead, and quickeneth them; even so the Son quickeneth whom he will.
22 For the Father judgeth no man, but hath committed all judgment unto the Son:
23 That all men should honour the Son, even as they honour the Father. He that honoureth not the Son honoureth not the Father which hath sent him.
24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He that heareth my word, and believeth on him that sent me, hath everlasting life, and shall not come into condemnation; but is passed from death unto life.
25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The hour is coming, and now is, when the dead sha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ey that hear shall live.
26 For as the Father hath life in himself; so hath he given to the Son to have life in himself;
27 And hath given him authority to execute judgment also, because he is the Son of man.

영어 어렵고 복잡하면 안보셔도 됩니다. 저자 요한은 제가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문체를 길게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사물과 목적 묘사를 좀더 자신이 아는한 정확하고 명확하게 할려는 태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경제학 박사나 교수님들은 일반이 10초에 쉽게 말할걸 어려운 용어로 1시간에 걸쳐서 얘기합니다. 이유는 정확성을 기하고자 그런것입니다.

즉, 위의 빨간색만 보시면 확연히 드러나는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전권을 위임했다는 내용입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들까지도 살릴수 있는 권능을 주셨는데, 그 표면적이유는 마지막 절에 나와 있듯, 신의 장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인간의 고통과 육신의 일을 하기 위해 내려왔다는 (인자 - the son of man:사람의 아들) 근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빨간색 문장을 보면 또한 알수 있는것은 하나님께서 지구 창조와 각종 생명(동물, 식물 &자연계등)을 만드는것을 미리 하나님께서 시연해주고 가르쳐주었다는것을 엿볼수 있습니다. (즉 권한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것이지요)

결론적으로 저자 요한은 1장부터 5장에 걸쳐서 길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성과 개체성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 다음 편에는 삼위일체를 만든 니케아 종교회의에서의 교활한 이들과 요한복음 성경왜곡 번역을 요한복음 6장부터 인용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 참고로 저는 성경에서 필요한 부분만 떼어다가 말하지 않고 처음부터 천천히 주제별로 순서데로 말씀드린다는것을 알수 있을것입니다. 이유는 성경은 서신(편지)의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이 고어체라 헷갈린것 뿐이지 번역만 정확하면 정말 이해하기 쉬운 책입니다.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쉬어가기> 무당으로 시작해서 무당으로 끝나는 대한민국 그리고 한국 교회

어릴적 동네에 뛰놀면서, 파란 하늘에 나부끼던 이상한 깃발을 동네마다 심심찮게 볼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이면 둥~둥둥 북치는 소리와 꽹과리소리 징소리와 더불어 피비린내 나는 돼지피 냄새와 이상한 향 냄새가 동네마다 진동을 했습니다.


저는 동생들한테 " 저게 나찌 깃발인데, 독일에서온 귀신쫓아내는 부적이다 " 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 어릴적 세계관이 제가 배운 선에서 최대한 글로벌적으로 이해를 할려고 했던것이지요.


이상한 저 팔 시위와 껑충껑충 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게 사람인지 아니면 반인 반귀신인지 햇갈릴 정도고 그 앞에서 두손모아 기도하는 환자와 더불어 정신병 아들딸을 둔 동네 아줌마들의 울부짓음과 더불어 무서운 장면을 많이 보곤했습니다.

그런데 학창시절을 지나가면서 어느새 저 나찌들은 종적을 하나둘 감추기 시작하고 동네마다 저것을 대체하는 십자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교회당이라는것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처음 교회 모임을 가서 겪은 그 충격과 공포는 사실 무당집에서 본 칼춤추는 모습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의 손엔 칼대신 성경이요. 징소리 북치는소리 대신에 기타와 드럼 그리고 잡상인 마이크 찢어지는 소리였습니다.

더 충격적인것은 방언 기도를 하는 정신병 들린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울부짓고 미친듯이 팔다리를 휘젓고 쓰러지고 자빠지는 모습이 정신적 공황을 주기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당들이 교회로 침투하기 시작한때가 바로 그 산업사회시기인 70~80 년대입니다.

지금 보여지는 박근혜 최태민 최순실 막장 사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왔었던 잘못된 종교 신념이 어떻게 세상을 불지르고 나라를 절단내는지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친일파들처럼 196~70년대 저 무당들을 한국 교회가 흡수하여 돈벌이로 활용하고 신앙의식 접목한것이 이제 고름 터지듯 여기저기 뿜어져 나오는것입니다.

여러분들 한번 교회가서 목사들 울부짓고 손짓 발짓 동작 하나하나 살펴보세요.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말투와 표현들이 바로 그 옛날 무당들이 했던 모습들의 축소판입니다.

단지, 넥타이를 매어서 연단에 서니 조금 차분해졌을정도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어떻게 한국 교회라는 곳에 아무 생각없이 자녀들을 맡기고 훈육을 맡기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재미있고 오락적인건 어쩔수 없다치지만, 잘못하면 아이들 정신병 환자됩니다.

우리 대통처럼요.


2016년 10월 24일 월요일

성경은 삼위 삼체를 말한다. (1)

여러분들의 많은 검색과 성원으로 드디어 Google 순위에서 첫페이지, 관련 검색어로는 World 한글 검색 랭킹 8위안에드는 놀라운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글 딱 20여개 만으로 이 정도의 관심과 폭발적 검색 순위는 그만큼 얼마나 우리가 무지몽매했고, 그저 남들이 그러하닌깐 나도 따라서 허무하게 신앙생활해왔는지 또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탈과 방임 그리고 망가져왔는지 알수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수 있는 계기 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져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정확한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과연 다음 세상의 진실인지 여러분들은 보게 될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더욱  심층적인 내용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두분이 같은분이다 하면 왼쪽에 서시고 서로 다른 두분이다라고 생각되시는분은 오른쪽에 서십시요."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느쪽에 서시겠습니까?

   vs

이 주제가 갖는 의미는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의 이성이 맹목적인 믿음을 따라가야만 구원을 얻는것인지, 아니면 아예 기독교 신학 자체가 엉터리 번역으로부터 출발한것인지 결정을 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 처음 입교하는 사람들이 가장 혼동하는 부분이 어떻게 하나님이 예수님이 되었다가 성령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님이 되었다가 예수님이 되었다가...

믿음은 이성으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자매님(형제님) "

이런 강요를 주입식으로 집어넣을려고 합니다. 이것이 안받아들여지면 말 그대로 수련회나 단체 기도 금식 대회등 아예 머릿속을 깨끗히 reset 할려고 교회는 나옵니다.

그러다 군중심리로 동화가 되어지면 "아~ 삼위일체가 이런거구나!"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하지만, 감정보다 이성이 강한 사람한테는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설사 교회를 다닌다 하여도 절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한분으로 믿지 않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정확히 성경 하나만 가지고 이 문제를 정확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이라
  5. 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제가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4부 참조, 많은 사람들이 사실 글이나 문장이 뜻하는 바를 잘 이해를 못하는 문맹인들이 많습니다.  특히 근대에 들어오면서 학문적 체계가 일반인까지 오게 되어 그나마 문맹율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아직도 글을 읽되 내용을 이해못하는 사람이 상당수입니다.












따라서 매우 기본적 수준으로 천천히 요한복음 1장을 재해석 해 드리겠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이라
  5. 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일단 빨간색만 보시라, 무엇이 연상되고 떠오르나요 .... 정말 쉽게 얘기하자면

'세상 태초에 말씀이라 불리우는 자가 계시는데 그 말씀이라 불리우는 자가  지구도 만들고 동물도 만들고 온갖 것들을 다 만들었는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바로 그 일들을 그 말씀이라 불리우는 자와 같이 하나님께서 안한것이 하나도 없다!' 라는 내용 아닙니까?

즉, 요한이 강조법을 쓸려고 말씀 = 예수 그리스도 비유하여 얘기한 내용이 아니겠습니까?

  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그래서 14절에 완전히 완벽히 철저하게 해석을 내려서 분명히 말씀= 예수 그리스도 라고 얘기를 하는것입니다.

14.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특히 14 절에서 요한은 독생자라는 단어를 분명히 씀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beget - begotten이라는 단어를 써서 동물, 혹은 인간이 새끼(자녀)를 낳는다)임을 분명히 선언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일 위 파란색의 "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는 문장은 왜 들어갔을까요? 요한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한분임을 알리기 위해? 아니면 또다른 비유가 있어서?

4복음서를 잘 보시면 각 서신을 쓴 작자들의 성격을 알수 있는데, 특히 저자 요한은 말이 짧지 않습니다. 어떤 단어 하나를 설명하더라도 위와같이 15 문장을 할애해서 매우 조밀조밀하게 글을 쓰는 성격이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 예수님이다라는 초이상학적 내용을 설명할려고 저 단어를 썻으면 아마도 한장을 할애해서 왜 하나님은 곧 예수와 한몸인지 자세히 설명을 하여 믿지 못하는자들을 설득했을것입니다.

  1.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요한은 다른 저자와 다르게 어떤 단어를 인물에 추가할때 칭호를 확대하여 적는습관이 있는데,

  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칭호라는것, 랍비는 선생이라는것 등등으로 인물의 뒤에다가 직책(Position ) 의 단어를 붙여 거룩하게 성인을 표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즉,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판단 속성 생각 그리고 신성이 아주 일치해서 곧 하나님이시라
그렇게 표현을 한것입니다. 즉 세상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만들어내면서 위임의 원리에따라 요한이 느낀데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고자 그런 표현을 한것이지요....(교리를 얘기한것이 아니고 its not declaration the doctrine of God!!!)

그럼 왜 요한은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건 간단한것이지요. 창세기 1장 1절에 말씀이 가라사대~~~로 나오듯이 실제로 이 지구를 만들고 각 동물군 식물군을 만들어논 장본인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바로 구약부터 신약까지의 구원자가 바로 하나님의 지시(order) 를 받아 행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자 1장1절부터 장엄하게 표현을 한것이지요.



따라서 삼위일체라는 엉터리 이론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만들어낸 황제아부 집단들이 만들어낸 하나님= 예수 이론은 허무맹랑한 유체이탈 화법이며 황제를 하나님 다음으로 만들려는 종교적 대 사기극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지몽매한 당시 글을 잘 몰랐던 대중에게 그 이론이 퍼져 지금은 도대체 바꿀수도 없는 먼길을 가버린것이지요.

꼭 지금 정권 과 시대를 보는것 같지 않나요?



다음 시간에도 이 내용이 계속 이어집니다.





2015년 12월 18일 금요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조 & 누가 과연 들어가는가? ( 2 번째 )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분이실까......

이런 기본적인 그분들의 인격과 성품 그리고 성격을 모르고서 어떻게 그분들이 주관하는 거룩한 곳을 들어가겠다고 오늘도 울부짓는지 과연 가슴에 손을 얹고 차분히 생각해 보시기들 바랍니다.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감성의 우격다짐이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종교이고 교회일까요?
세계가 온통 벌집 쑤시듯이 골모리를 썩는 IS 도 결국 맹목적인 종교추구와 신에 대한 제대로된 고찰없는 맹신에서 나오는 과격함 아니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오늘날 한국 교회도 지역과 위치만 틀렸지 그들과 별반 다름없는 믿음으로 무장하여 나가는건 아닌지 생각해 볼일입니다.


제가 알기론 예수 그리스도는 단호한 분이십니다. 성경에 사랑의 문구가 많다하여 그분이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미소로 넘기는 분은 절대 아니십니다. 이 그림은 성전을 금전과 상인들로 넘치는것을 분개하여 직접 채찍을 들고 내리치고 쫓아내는 장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이 간음한 여인을 깨끗이 용서 하셨을까요? 정말 목사들 말처럼 이여인을 용서하셨을까요? 그러면 왜 바닥에 고민하듯이 무언가를 적으면서 한참 생각에 잠기며 바리새인과 제사장의 힐난을 맞받아 치셨을까요? "왜 용서하노라" 는 말대신 " 더 이상 그와 같은 죄를 짓지 말라" 고 얘기 하셨을까요.....

앞뒤 말의 현격히 다른 의미를 여러분들은 느낄수 있으신가요?

정말 .....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걸 다 용서하는 분이실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모든 그림을 잘 살펴보면 인자함의 미소도 보이지만 한편으론 악에 대하여 절대 양보없는 단오함도 분명히 내포된 인상도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언가 좀 보이십니까? 저는 분명히 보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간다는건 어떤 두려움으로 가는것이 아닌 나와 내가 속한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려는 일련의 거룩한 소명의식입니다.

그것이 어떤이에게는 가정이 될수 있고 국가가 될수 있으며 어떤이에게는 교회와 사회 혹은 내 이웃이 될수 있는것입니다.

거룩한 소명의식이 없이 오늘도 하루종일 교회당에 모여 복 바라고 어떤 영험한 영적을 기대하는게 과연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걸까요?

계속 저와 같이 고민해보시지요.....











2015년 11월 14일 토요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조 & 누가 과연 들어가는가?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주님앞에 서게될것이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고해야 할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0~12 : '우리가 다 하나님앞에 설것이며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할것이며'

고린도후서 5:10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마치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속에 우리가 그 속에 있어서 지나온 시간들을 그려보면 과연 얼마나 가슴뿌듯하며 자신과 주변을 고양시키고 행복하게 만들어 왔는지 하나하나 셀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 마음깊이 자랑할것이 없고 부끄러움이 가득하다면 더 늦어 죽음의 장막너머로 가기전에 이생에서 최선을 다하여 가족과 친구, 주변에 친절하고 선행을 베푸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짧지않은 인생을 뒤로 하고 가게될 하늘의 장소는 사실 여러군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만약 하늘이 단순하게 천국/지옥으로만 나뉘어져 있다면 각자 성도들이 신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에대한 보상이나 혹은 같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 혹은 그렇지 않고 싶은 사람들과의 적절한 장소와 공간 분할에 대한 이론적 성립이 안되는 불평등이 신학에 모순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린도 전서에서는 분명하게 밝히되...

(고린도전서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There are also heavenly bodies and there are earthly bodies; but the splendor of the heavenly bodies is one kind, and the splendor of the earthly bodies is another.
(고리도전서 15:41)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The sun has one kind of splendor, the moon another and the stars another; and star differs from star in splendor.


저자는 하늘의 장소가 여러곳이 있고 그속에 속하는 각 지체들의 영적 수준이나 보상에 따라 모여사는 형태가 다름을 빛의 밝기(Splendor )비유로써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보상적의미가 있기 때문에 번역에 잘 안어울리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딱히 다른단어가 없어서 이 단어를 차용하여 번역을 넣은것으로 사려됩니다.)

즉, 각 수준에 맞는 영들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심판대에서 판별 분리하여 그 어울리만한 사람들을 각 장소에 맞게 보낸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일전에도 얘기했듯이 그래서 구원이라는것은 자기자신만의 천국 상속이 아니라 사랑하는 주변과 가족들과 함께하는 구원이라고 그래서 설명한것입니다.

정말 간단히 생각해볼때 나 혼자만 믿어 나 혼자 천국에 가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구원이겠습니까? 구원의 진정한 정의가 무엇입니까? 가족은 전부 지옥에 떨어지는데 자기만 천국에 있으면 그래도 그것이 진정한 구원이라고 볼수 있는것입니까?

그리하여, 좀더 놀라운 해석을 고린도 전서 15장에서는 제시합니다. 즉 현대 한국교회에서 주구장창 주장하는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라는것이 허무맹랑한 얘기라는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바울의 가르침이 나타납니다.


(고전 15: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2)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2)침례를 받느냐
(고전 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이 구절은 심오한 부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교인들 사이에서 논쟁이 될법한 복음을 모르고 죽은 자들에대한 구원의 문제 (특히 친인척중 먼저 돌아가신 가족분들)를 정확하게 예법과 의식을 동반하여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즉,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돌아가신분들중 침례를 받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대리의식을 했던 부분이 있다는것을 바로 알수가 있는것입니다.

여하간....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것을 기본적으로 알고 믿고 그에 따른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이웃사랑에 대한 인격 고양과 성숙이 이루어질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쌓아온 공덕과 신실함에 따라 적절한 곳에 보내져 살게 되는것이

초기 기독교의 기본적 교리이며 가르침임을 우리는 알수 있는것입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앙의 정수이며, 우리를 안락과 영생으로 이끄는 곧고 좁은 길이기에 찾는자가 적고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는이가 적다라고 성경에 나와 있는것입니다.

제가 일전에도 얘기를 하였지만, 그래서 한국 교회에선 실질적인 구원이 없다라고 단오하게 말씀을 드린것입니다.

므나의 비유를 괜히 예수께서 얘기한것이 아닙니다.
헛수고라는 단어의 무서움을 기억하십시요.
그래서 진실안에 사는것이 중요합니다.


참고) 이러한 내용을 가르쳤던 근대교회가 있었는데 스웨덴에 있었고 1800년대 초에 Newyork 에서 있어으며, 현재는 LA 롱비치 근처에 관광지로 유명한 아름다운 교회에서 교리로 가지고도 있습니다. 즉,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목사들의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 구원은 가족단위로 이루어짐 (3편)

하늘의 구조와 여러 거할곳을 지금부터 얘기하겠지만, 정말 열린 마음으로 성경과 이 세상을 바라보면 지금 여러분들이 바라보는것보다 좀더 많은 좋은것들이 보일겁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로 시작하는 주기도문의 기본 구조를 보면 명확하게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기본적인 가족 단위의 틀안에 자리잡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기본적인 가족관계가 이 지상생활을 통해 계속되고 우리가 성인으로써 가족안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수있도록 노력해야 하는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하나님의 자녀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 믿음을 가진 자녀와 그렇지 않은 부모 혹은 시어머님 며느리간의 종교적인 갈등으로 빚어지는 항간의 요즘 모습들은 과연 그 바탕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마음다툼인지 아니면 진실을 함께 하고자 하는 좋은 뜻에서의 요구인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교회을 다니는분들이 믿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적인 부분을 매우 벽을 쌓아두고 특히 가족과 친지간에도 많은 다툼을 일으키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것을 오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수십만년 혹은 수만년에 걸쳐서 인류를 바라보시면서 그동안 많은 시간에 걸쳐서 살아온 이 지상의 우리의 선조와 가깝게는 돌아가신 친지 어르신들을 보살피고 계시다는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벧전 3: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벧전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베드로 전서 3장은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로 시작하는 장입니다.

즉, 당시 교회형제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로를 알았다고 교만하지 말고 주위에 강압하지 말며 너희가 하나가 되고 오히려 겸손하여 사랑이 가득하라고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극적인 하나의 사실을 보여주고자 바로 3장:18절에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있던 3일 동안 영옥(지옥이 아닌 일정시간 심판때까지 기다리는 어두운 고통의 장소)을 방문한 내용을 간략히 소개를 합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지금만큼 참 악한 사람들이었지요.. 그 사람들조차 방문하여 무언가를 가르치고 선포하신것입니다.

아마도 당시 회중교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사도들이 더욱 자세히 설교를 했을겁니다. 그러나 성경 저자는 간략하게 이 극적인 사실을 단 2문장으로 적었고 후에 로마 성경 편찬위원들이 상당히 삭제와 더불어 자신들이 이해못하는것을 제하여 버려서 오늘날 중요한 부분이 성경에서 해석이 애매하게 되어 덮어 넘어가버리는 문제가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것을 지금부터 이 구절과 다른 성경 구절을 통해서 이제 유추와 증거로 확실히 밝혀낼수 있습니다.

1. 천국을 가는것은 기독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2. 예수 믿으면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고 얘기하는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3. 내 가족중에 믿지 않는 자는 지옥을 간다고 말하는것은 매우 악한 교리이며 사랑의 하나님을 잔인한 분으로 매도하는 처사입니다.

4. 지옥에 관한 강한 강조와 강압적인 교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제가 깨달은건 믿을건 가족뿐이 없다라는것이고 그 깊은 사랑의 관계를 대신할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관계를 등한시하여 다른 사람이나 목사 혹은 주변 교인들을 더 의지하여 상처받고 사기당하고 혹은 그보다 더 위험한 지경에 이르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앞으로 저와같이 살펴보겠지만, 우리는 가족단위로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기본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