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8일 화요일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11편) - 무당목사들의 한국교회 그리고 새로운 초대 교회들 탄생.

 사도행전 21장 39절 But Paul said, I am a man which am a Jew of Tarsus, a city in Cilicia, a citizen of no mean city: and, I beseech thee, suffer me to speak unto the people.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And when he had given him licence, Paul stood on the stairs, and beckoned with the hand unto the people. And when there was made a great silence, he spake unto them in the Hebrew tongue, saying,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사도행전 22장 2절 (And when they heard that he spake in the Hebrew tongue to them, they kept the more silence: and he saith,)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26장 14절 And when we were all fallen to the earth, I heard a voice speaking unto me, and saying in the Hebrew tongue, Saul, Saul, why persecutest thou me? it is hard for thee to kick against the pricks.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자, 이제 거의 대단원의 막이 다다릅니다. 사실 신약 성경 전체적으로 '방언' 이 들어간 모든 문장을 여러분들은 저와 같이 다 보아왔습니다.

특히, 사도행전은 Medical Doctor 출신인 '누가' 가  단어 하나하나를 다른 신약 성경의 저자들과는 다르게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거의 곡해 없을일이 없을정도로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는것을 계속 저와 같이 볼수 있습니다.

성경의 방언 Tongue 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외국어 foreign language 를 말하며, 그 어떤 성경 구절에서도 오늘날 한국 아프리칸 목사들이 주장하는 '방언기도- 정신줄 놓는 신의 기도' 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저와같이 또한 계속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용한 위의 사도행전 26장 14절을 보시면 알겠지만, 하늘음성 조차 분명하게 모두가 알아들을수 있는 히브리언어로 사도 바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방언기도가 존재한다고 가르치는 보수 목사들이 주장하는 '신과 인간이 교감하는 알아 들을수없는 음성' 이라는것은 지난 편들에서도 계속 살펴보았지만 전부 잘못된 성경번역과 1960년대 이후 LA와 남부 미국 그리고 아프리카 선교지역등지에서 만들어낸 주술무당파적 사이비 내용들입니다.

그것의 폐해들이 계속 언급한것처럼 목사들의 성적일탈과 금권 탐욕의 불에 기름을 끼얹는 상황이 나왔고 각종 범죄 목사들의 모습이 흉측해지거나 매우 사람답지 않은 몰골로 변화되는것도 다 귀신들의 이 장난질에 동화되어 나온 일종의 표면적 징후입니다.(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입니다만, 정말 탈 많은 목사들 얼굴 보면 도저히 신앙인이라고 볼수 없는 인상들이 죄다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폐단이 목사제도라는것을 간파한 요즘 전 세계에서 초기 신약시대의 (초대 교회- 목사없는 일반 신도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Australia 호주와 유럽등지 에서는 비록 적은 숫자지만 일반 교인들이 모여서 자체적으로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신앙간증을 나누는 예배와 교회가 나타나고 있고, 미국에서도 Starfish manifesto 와 Starfish vision 과 같은 운동과 책 전하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가정교회, 순례하는 교회 -볼프강 사이먼 저자의 책들이 유명 서점에 나와 있을겁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이유중의 이유는

바로 목사제도하의 교회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구원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형 교회 포기하는 교회목사들이 왜 그런지 좀더 설명할 기회가 나중에 있을겁니다.

아무튼 시간내고 자신들의 열정과 정열을 바쳐가며 다니는 교회생활이 사실은 목사들의 종교확장과 교세에 도움은 될지언정, 진정한 자신의 구원(영생-Eternal life)이나 주님에 대한 이해나 봉사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는걸 본인들이 성경을 통해서 안다면 많이 놀라울겁니다.

그만큼, 일반 사람들의 성경 문장 이해 능력이 지난번에도 말씀드린것처럼 매우 낮기 때문이고, 거기에 잘못된 성경번역과 목사제도가 완전히 장님으로 신도를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2015년 7월 11일 토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10편) - 공통점 그리고 한국사회








이 사진은 우리가 자랑하는 S 기업이 기존 사원들을 강제로 카드섹션으로 집단 교육시키는 장면을 담은 자료입니다. 해당 동영상은 클릭--! 하시면됩니다.

자세히 보시면 얼마나 우리가 비 상식의 사회에 살고있는지 단번에 보고 느낄수 있습니다...

물론 집단체조 형식으로 자기들끼리 유쾌하고 즐거우면 된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얘기할수 있지만, 저런 군중동원이나 집단화는 개개인의 의사 자율권 침해라는 무서운 도덕적해이와 보이지 않는 집단 이지매가 동시에 작용할수 있어서 공산국가 이외엔 해낼수 없는 형식의 퍼포먼스입니다.

“선배들과 동기들은 또 가고 싶다고 난리들이다. 힘들었지만 사무실 출근하는 것보단 그 때가 좋았다고. 추억이라고. 그런데 난 절대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물론 일하는 것보다 재미가 있을 수는 있지만 또 경험하고 싶지 않아. 부서에 배치 받고 처음 사무실에 왔던 날의 충격은… 하얗게 쭈욱 늘어선 책상들. 쭈우우우우욱. 살짝 현기증이 일었다. 그게 첨엔 무언지 몰랐는데 수련대회를 지나고 나니까 알겠더라. 나는 그곳에서 대충 30×40 정도 되는 카드 섹션의 (10, 23) 인가 아무튼 그런 자리였다. 그렇게 커다랗게 움직이는 카드 섹션의 픽셀 하나. 그건 나를 무진장 초라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무언가 앞에 서있는 무력함이랄까.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

전직 직원이었던 한 블로거는 “노조가 없는 것은 노조의 싹이라도 보이면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잘라버리는 회사의 노무방식의 탓도 있지만, 기꺼이 굴욕을 감수하기로 다짐한 직원들 스스로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치열한 내부경쟁과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 회사의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 순응형 인간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교육들, 그리고 총수를 향한 충성심 강요”를 떠올리면 “그 회사를 그만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는 거죠.
....

자,, 이젠 한국 교회로 넘어와서 같은 얘기를 해보지요.

He said unto them, Have ye received the Holy Ghost since ye believed? And they said unto him, We have not so much as heard whether there be any Holy Ghost.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3And he said unto them, Unto what then were ye baptized? And they said, Unto John's baptism.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침례로라
4Then said Paul, John verily baptized with the baptism of repentance, saying unto the people, that they should believe on him which should come after him, that is, on Christ Jesus.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When they heard this, they were baptized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6And when Paul had laid his hands upon them, the Holy Ghost came on them; and they spake with tongues, and prophesied.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외국어를 말하는)도 하고 예언도 하니

지난 시간에 이어 사도행전 19장에서는 '누가' 가 순서대로 어떻게 우리가 거듭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지 관찰자적 입장에서 기록을 알리고 있습니다.

위 절들을 함축하면 순서대로 이런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대화(토론,문답,이해)--->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결심의 침례---> 안수 ---> 방언(외국어은사- 지난편에서도 설명했지요. 똑같이 계속 '말하다' 라는 표현으로 여러언어tongues 복수형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예언(가르치는 은사- 이부분은 나중에 다루어보지요)

제가 계속 강조하지만, 의사인 누가는 그 어떤 복음서 저자들보다 한 문장을 적더라도 명백하게 사물과 행위들을 아주 원리대로 자세히 적고 있어서 다른 견해가 필요없게끔 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 교회들이 행하는 기도실에 밤새내내 박혀서 "따라해봐, 우랄라 샤바샤~ " 목사들이 주문대로 훈련 혹은 교육하는 방식의 방언기도라고하는것은 성경적으로 볼때ㅡ 전혀 존재하지도 않고, 절대 있어서도 안되며 복음의 원칙과 원리에서도 위배되는 내용이라는것입니다.

지난 10여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1890년대 방언이라고 하는 글자 하나 번역 잘못한게 이런 지경까지 온것인데, 문제는 교회내에서 이 귀신들린 방언기도가 문제 있다고 주장하고 개혁을 외치는 사람을 오히려 거꾸로 사단이 들었다고 공격하거나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몰아치는게 한국 교회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을 대체하는 나라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면서에서 교회만으로 좁혀서 볼때, 고쳐져야할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위의 침례라는것도 영어 원문으로는 baptized 라는 동사형식을 쓰는데 물에 완전히 수장되듯이 잠겨야하는 원뜻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이치적으로 생각할때 세례식이나 물끼얹는식은 전혀 사도들이 전한 방식의 내용과 다른내용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자주 하는 얘기가 ' 그까짓거 대충하지 뭔 세세히 따지냐' 라고 반문할수 있는데, 그런 사고 방식으로 대충사니 인생 망가지고 나라망가지는거 한순간이라는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지 이해가 전 안갑니다.

위 사도행전 19장을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그만큼 의식과 형식도 중요하여 침례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받으라고 하여 새로운 제자들이 기존의 요한에게서 받은 침례를 다시 받는 모습을 또한 보실수 있고 그제서야 성령의 임재와 더불어 각종 능력의 은사가 나타난것입니다. 

제가 다시 누차 강조드리지만, 한국 왠만한 대형교회들은 그들이 말하는 구원을 받을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성경에서 사도들이 강조한 내용만으로 살펴볼땐 분명히 그렇습니다. 제가 억측을 부리는것이 아니라 지금 저와같이 신약성경을 그 시대로 돌아가 자세히보면 여러가지면에서 확연히 다름을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더구나, 

목사들이 행하는 방언기도라는데에는 우리의 전두엽을 파괴하는 아주 악랄한 중독 메카니즘이 숨어있습니다.

지속적 소리와 시각 자극은 사람의 측두엽전두엽 부분을 자극하는데, 일종의 마약 효과와 더불어 점차 서서히 환청이나 신경 마비등을 동반한 중독으로 사람을 바꾸는 현상을 동반합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behavioral addiction 행동 중독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쇼핑중독을 못견디고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가정주부얘기나 홈쇼핑에서 물건을 판단하지도 않고 말만 믿고 이것저것 사들이는 행위등등이 바로 이런 반복 시청이나 노출등에 의한 중독현상입니다.


현재 교회 목사들이 성적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여 벌어지는 천태만상이 교회내에 의외로 왕왕 존재하는게 사실입니다.

이 현상을 개개인의 일탈이라고 보면 큰일날 문제입니다. 바로 불을 끄고 어둠속에서 괴성과 신들린 모습들속에서 환청이 들리는 전두엽 파괴에의한 환청과 충동과잉으로 봐야 하는 귀신들린 행위입니다.


일전에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은 하였지만, 사람이 충동조절에서 실패하는데 가장먼저 특히 남자가 나타나는것이 바로 과민성 성적충동입니다.

이것은 연령과 학식 혹은 인격을 불문하고 나타나는데, 특히 도박중독자들과 마약 중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성적 중독자로 같이 빠지는 현상과 매우 똑같습니다.

감히 말씀드린다면 절대로 여러분들의 여인과 딸 자식 자녀들을 방언기도를 조장하고 행하는 교회나 기도집회에 보내면 안됩니다. 나중엔 그들의 두뇌에는 성경의 중요한 교리나 의미보다는 현란한 목사의 발짓 손짓과 콘서트음악같은 무대에 사로잡혀 사탄의 올가미에 단단히 묶여 구원의 확신도 없는 삶이나 망상에 빠져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여러분들은 무당을 다시 모시고 교회에 나가는것뿐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