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5일 월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5편) - 방언기도의 구체적 폐해를 지적하는 사도바울


지난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4편에 이어서 고린도 전서 14장 방언편 입니다...


So likewise ye, except ye utter by the tongue words easy to be understood, how shall it be known what is spoken? for ye shall speak into the air.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There are, it may be, so many kinds of voices in the world, and none of them is without signification.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Therefore if I know not the meaning of the voice, I shall be unto him that speaketh a barbarian, and he that speaketh shall be a barbarian unto me.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고린도 전서 14장 8,9,10


지난 4편에 이어서 사도바울은 본격적으로 이상한 기도를 하는 그 형태를 엄숙하게 비판하고 나옵니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은 했지만, 사도바울은 벌써 고린도 교회에 퍼지기 시작하여 교인들 사이에서 양분된 이 방언기도라 하는 부분을 매우 양쪽을 분별하여 권고와 가르침으로 하다보니, 자세히 앞뒤 전후를 보지 않고 읽으면 오판이나 오역하기가 너무쉽게 되어 있습니다. 즉 이 고린도 전서는 당시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지요.

아무튼, 8~10절을 보면 더 이상 이 이상한 기도가 얼마나 무식한것인지, 말도 안되는것인지 단번에 사도바울이 지적하는것을 볼수 있을겁니다. 그래도 해석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축약해서 해석하면

"방언기도라고 하는것은 거론할 가치고 없고 어느 아프리카 야만인이나 하는것이다"

이제 OECD 국가 선진 반열에 들고 스마트폰도 세계에 만들어내는 우수한 민족이 되어가는 이때에, 우리도 좀 생각이 있는 사람이 되는게 그렇게 어려운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나갔다가 말없이 떠나는 이유를 잘 모르는것 같습니다. 아니 교회 목사들은 마치 중독이나 세뇌시켜서 교회에 묶을려고 하는 느낌만 준다는걸 본인들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Wherefore let him that speaketh in an unknown tongue pray that he may interpret.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
(let 의 동사를 잘못해석해놓았지요. 즉 그 알수없는 언어로 기도를 하는 그를 통역을 시켜보라는겁니다. 즉 그 사람이 무슨말 하는 지 알아보라는 뜻입니다.)

For if I pray in an unknown tongue, my spirit prayeth, but my understanding is unfruitful.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당연히! 그렇지요. 내가 만약 if 그 정신나간 방언기도를 하면 나또한 영으로 기도를 하는거지만, 전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사도 바울의 설명체 문장이지요..)

I thank my God, I speak with tongues more than ye all: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사도 바울은 당시 로마 출신의 외국인이었습니다. 학식도 풍부했고 다양한 선교지역을 나갈수 있었기에 여기서도 여러 외국어를 남들보다 잘한다는것입니다.)

Yet in the church I had rather speak five words with my understanding, that by my voice I might teach others also, than ten thousand words in an unknown tongue.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an unknown tongue - 그 희한한 정체도 알수없는 방언소리를 지적하는것입니다. 지난편에 설명했지요)

Brethren, be not children in understanding: howbeit in malice be ye children, but in understanding be men.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사도 바울이 간절히 호소하는 부분입니다. 제발 똑똑해져라. 이성적으로 생각해라 아주 절절하게 부탁하는 부분입니다.


Wherefore tongues are for a sign, not to them that believe, but to them that believe not: but prophesying serveth not for them that believe not, but for them which believe.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If therefore the whole church be come together into one place, and all speak with tongues, and there come in those that are unlearned, or unbelievers, will they not say that ye are mad?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사도 바울은 방언(외국어를 말하는 능력 혹은 은사) 을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누군가 어떤 외국인이 나에게 다가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면 귀가 번뜩일겁니다. 또한 그 사람이 바로 옆에 일본 친구한테 일본어로 또 그러면, 저는 이제 눈이 휘둥그래 질겁니다.....

그런데, 그런 외국인들이 엄청 많은 교회에서 그런일들이 벌어지면, 이젠 기이함을 넘어서 공포와 전율 그리고 신기함등 단지 미친 상황이다라고 판단할수 밖에 없을겁니다... 라고 사도바울이 오리지널 방언에 대해서 설명하는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이미 오순절 성령 방언은사가 외국어를 말하는 은사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지금 각성시키고자 비교하는것이지요. 그 정신나간 방언기도와)

If any man speak in an unknown tongue, let it be by two, or at the most by three, and that by course; and let one interpret.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 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But if there be no interpreter, let him keep silence in the church; and let him speak to himself, and to God.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Let the prophets speak two or three, and let the other judge.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번역상 위 방언은 바로 문제를 일으킨 어떤 사람이 가지고 온 그 정신나간 방언인데 - 이 부분에서 좀 설명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교회다니는 어떤분이 아니 1970년대 미국 흑인들이 남부와 중부등에서 외국어 방언을 한다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어를 약간 짜집기해서 그럴싸하게 사람들앞에서 방언은사 터졌다고 사기치고 다녔지요. 다른 교인들은 그걸 신기하게 봤지만, 막상 중국인들은 전혀 알아들을수 없는 사기다라고 한것이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습니다.(다음편에 방언기도의 역사편에서 다루겠습니다)

If 만약 어떤 사람이  an unknown tongue 알수없는 말을 한다면, 두 사람이나  세 사람정도를 붙여서 당시 교회의 질서를 따라서 - 교회 연단 설교 원칙이나 룰이 있었겠지요- 통역이 잘 되는지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이유는? 아주 자명하지요. 지금 고린도 교회에서 유행처럼 퍼질것을 염려하는데, 무조건 하지 말라 그러면 그리스 민사 재판까지 간 상황이라 반발이 일어날게 분명하고, 하지만 분명히 말도 안되는 거짓인데 용납하기도 그렇고, 그러면 어떤방법이 최선일까요? 바로 기존의 방식대로 통역하는 사람을 옆에 붙혀서 검증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Let your women keep silence in the churches: for it is not permitted unto them to speak; but they are commanded to be under obedience, as also saith the law.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And if they will learn any thing, let them ask their husbands at home: for it is a shame for women to speak in the church.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갑자기 엉뚱하게 사도 바울은 강한 톤으로 교회 여자들을 공격하는 논조로 생뚱맞게 말을 던집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여자들은 교회에서 입다물고 신앙생활 하라는걸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고린도 전서는 우리를 바라보고 쓴 편지가 아니라 긴박하게 그리스 민사 재판까지 갈정도로 싸움이 벌어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급히 쓴 전갈입니다.

여기서 유추해볼수 있는건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도 벌어지는 방언기도의 형태는 대부분 아니 거의 90% 이상이 여자 신도들에게서 일어납니다. 왜 그러냐면 남자의 두뇌와 여자의 두뇌 구조가 감성과 이성의 차이에서 현격히 다른부분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신도들은 주절거리는 방언을 넘어서 넘어지고 갑자기 연단으로 뛰어오르거나 울부짖거나 하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동반하는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여성은 분위기나 감성에 남자에 몇배에 이르는 에스트로겐 작용으로 심취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즉, 자매님들 사이에서 이 문제가 아주 격화된것이고, 주 추종자들이 여성 신도라는걸 바로 알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적 판단이 강한 남편(남자)에게 반드시 물어보고 살피라는 약간 공격적인 내용이지요. 그만큼 그리스 재판까지 갈정도로 큰 싸움이 된것이라는걸 또한 유추 할수 있고, 급기야 이 방언 헛소리 기도를 끌고 들어온 이들이 결국엔 간통, 간음등 성 범죄까지 부부사이에 퍼뜨릴정도로 문제가 된경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것은 이 방언기도라는것이 사람의 전두엽 두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하여 환영을 보게하고 특히 성적인 도착증과 비슷한 내분비 호르몬 교란을 일으키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그 대표적인것이 인도의 주술종교인 성적으로 난잡한 종교가 있지요. 거기도 똑같이 한국교회처럼 합니다. 심미안(제3의 눈)을 열려는 행위를 잘못하다간 아주 정신병이 들수 있고, 아마도 일부 목사들이 그러한 방언기도에 심취하여 자기통제권을 상실하다보니, 자기앞에서 넘어지고 이성을 잃는 여신도들에 욕정이 생기는 문제가 바로....

고린도 교회에서도 벌어진것 같습니다.

Wherefore, brethren, covet to prophesy, and forbid not to speak with tongues.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Let all things be done decently and in order.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결론을 사도 바울은 정말 멋지게 내립니다. 교회내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앞날을 풍성하게 하는 예언(날짜 맞추기가 아닙니다. 이 부분도 오늘날 점쟁이하듯한 예언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중에 예언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과 당시 고린도 교회 특성상 외국인들을 위한 통역 방언 speaking 을 하도록 유도하고 마지막에선 좀 적당히 해라~ 는 부드러운 규율적인 말씀으로 적정한 믿음과 행동으로 차분히 질서대로 정리하라고 마감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이 구절마다 번호가 매겨있어서 그 부분만 취하듯하면, 정말 안된다는것을 이제 느끼시나요? 

그러면 정말 다행입니다.

방언기도을 하는 기독교가 점점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일등공신임을 우리모두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 사도행전 방언 부분도 연이서 계속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

2015년 5월 10일 일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4편) -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의 마음

지난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3편)에 이어서입니다.

Now, brethren, if I come unto you speaking with tongues, what shall I profit you, except I shall speak to you either by revelation, or by knowledge, or by prophesying, or by doctrine?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tongues 복수 - 타언어)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And even things without life giving sound, whether pipe or harp, except they give a distinction in the sounds, how shall it be known what is piped or harped?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고전14장 6절-7절


우리가 보는 개역성경및 많은 한글 성경들이 위처럼 정말 애매모호하게 번역이 이루어진데에는 초기 번역을 주도했던분들이 영어문장을 문장이해로 번역한것이 아니라, 단어 해석 위주로 진행한데 기초합니다.

거기에 후대 교역자들이 '성경은 신성한것이다' 라고 굳게 믿고, 일점일획도 가하지 않고 무려 60년 이상거의 그대로 이어져온게 오늘날 우리가 한글로 보는 성경입니다.

윗 첫 문장(고전 14:6절)을 다시 쉽게 풀어보면 이런 얘기입니다. 

" 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타언어들)으로 말하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것 없이 말하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되리요? "(물음표 영문에 있습니다) - 당시 정황상 앞에서 외국어로 여러 외국에서온 성도들에게 통역하고 말씀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이해가 바로 될것입니다. 즉 그냥 말 전하는게 아니라는것이지요. 정성과 생각을 다해서 말씀을 통역, 통변하여 전하여야 된다는것입니다.

그러니... 7절과 8절에 바로 이렇게 연이어서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 피리나 하프같이 생명 없는 것들이 소리를 낼 때에 음의 구분을 주지 아니하면 피리나 하프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찌 알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치 않은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For if the trumpet give an uncertain sound, who shall prepare himself to the battle? 고전14장:8절


즉, 방언을 하는것을 두 악기에 비유하여 언어의 정확한 소리와 구분을 주지 않으면 우리가 도대체 무슨말을 하는지 어떻게 알수 있느냐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8절에선 확실하게 못을 박듯이 얘기하시지요. 우리의 기도가 중언부언 횡설수설 하면 그 결과가 아주 자명하다는것입니다.

즉, 좀더 사도바울의 마음을 헤아려서 결론내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횡설수설 이상한 소리를 내는 일부 사람들이 끌고들어온 방언기도가 우리의 일상적인 예배에서 하는 정상적인 기도의 형태가 아니라는것입니다.'


성경을 다시쓰고 번역하자 하면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볼것같어서, 이렇게 얘기하겠습니다.

1. 제대로 편지(서신 내용)를 전체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다 내려다보듯이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2.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반드시 원문이나 최소한 영어 성경등을 봐야 합니다.

3. 인용말씀만 짤라서 사람들에게 전하면 대부분 아니 거의 오역으로 전하게됩니다.


저는 성경 어디에서도 방언이 오늘날 목사님들이 전하는 통성방언기도형태가 있다라는걸 단 한글자 단 한문장도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분명히 오늘날의 그 방언기도 형태가 존재한다는 성경 구절이나 단어 하나라도 발견되는게 있다면 저에게 개인적으로 메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lovejesusall@gmail.com


계속 이어서 글은 계속됩니다. 이처럼 명철을 주시고 지혜와 올바른 지식을 통해 좀더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2015년 5월 5일 화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3편) - 고린도전서 & 문맹에 가까운 교역자들

모든 성경의 중심엔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집중을 하고 그 주변을 바라봐야 참된 가르침으로 모든걸 해석할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모든 가르침이나 신약의 모든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위해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태6:5~7

요즘 거의 모든 한국 교회들이 경쟁적으로 하는 '방언 기도'의 모습들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기도의 방법인지 그냥 간단하게 살펴보면 바로 답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이상의 신비한 주술적 권능과 축복을 끌어들이는 다른 기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과도한 오해를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말씀처럼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상(병고침, 축복, 응답)을 받을려는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방언 기도를 배운분들이 성경에 다른 기도 즉 방언기도가 나와 있다고 합니다. 아니 목사님들이나 교역자들이 그렇게 교회당에서 가르치지요.

그래서 신도들은 별 생각없이 고린도 전서 구절만 보고 방언기도를 왼쪽 사진들처럼 신비 기도로 굳세게 믿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지난 50년간의 오역의 역사의 시작인 잘못된 한글 성경 번역을 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 전서 12장은 앞선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2편)' 에서 알려드린것처럼 본격적으로 사도바울이 '방언 기도'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설명과 개요 그리고 권고를 하기 시작하는장입니다. (바울은 이 전서를 쓸때 아직 가보지 못하고 보고를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조심하며 양쪽을 분별하는데 애를 쓰는면이 문장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이 기도 형태를 끌고 들어온 무리들이 크게 격론하여 교인내에 다툼과 , 고소, 파벌등이 생성된지라, 사도 바울은 양쪽다 권면하는 쪽으로 써야 되서 매우 조심스럽게 설명을 하면서 쓰게 됩니다.

To another the working of miracles; to another prophecy; to another discerning of spirits; to another divers kinds of tongues; to another 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을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12:10

사도 바울은 시작부터 자세히 은사가 무엇인지 1절부터 분명히 종류와 설명을 나열합니다. 그리고 방언이 무엇인지를 기초설명부터 자세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만한것은 그것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셨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위 구절의 후반부를 직역 풀이하면 이렇게 됩니다. '다른이에게는 각종 외국어를 잘 말하는 은사를 주시고 그 다른 어떤 이에게는 동시에 그것을 통역하여 그 자리에 있는 회중에게 번역을 잘 전하는것이니' 지난편에서 분명히 말씀드렸지만 고린도는 국제 무역항이라 한 예배에 거의 15나라의 상인들이 참석한 전례가 없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tongues 는 외국어라고 예)까지 들면서 지난 1편에서 설명을 드렸지요

그러면서 계속 권면하는 글을 쓰다가, 28절에 이르러 'And God hath set some in the church, first apostles, secondarily prophets, thirdly teachers, after that miracles, then gifts of healings, helps, governments, diversities of tongues.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이문장을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평범하게 알고있듯이 방언을 하는것은 받는것이 아니라 사도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당시 여러정황상 교회내에 필요로하여 세운 능력있는 사람들의 재능 혹은 은사를 말하는것임을 단독 직입적으로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29절에 ' Are all apostles? are all prophets? are all teachers? are all workers of miracles?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Have all the gifts of healing? do all speak with tongues? do all interpret?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라고 지난번 언급했던 반어법으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부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되묻는것입니다. 즉 각자의 재능과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교회에서 봉사하면 된다는것입니다. 여기서도 방언은 all speak with tongues 즉 당시 15종류의 외국어를 말하는 능력을 얘기합니다.

30절 'But covet earnestly the best gifts: and yet shew I unto you a more excellent way.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당연히 그런형식적인 은사보다 더 큰 은사인 사랑의 은사 봉사의 은사등을 사모하라고 권고하는것이지요. 

13장 부터는 이제 앞선 설명을 확실히 하는데에 사도바울은 목표를 맞춥니다.
그래서 1절에서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and have not charity, I am become as sounding brass, or a tinkling cymbal.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어떤 신비한 것에 촛점을 맞추지 말라는 권고로 여러 비유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And though I bestow all my goods to feed the poor, and though I give my body to be burned, and have not charity, it profiteth me nothing.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장3절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13장 13절

14장은 이제 분명히 고린도 교회들에서 벌어진 방언 기도에 대해 하지 말것을 신중히 얘기합니다.

'Follow after charity, and desire spiritual gifts, but rather that ye may prophesy.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1절

그런데,,,,,,,,,,,,,,,

For he that speaketh in an unknown tongue speaketh not unto men, but unto God: for no man understandeth him; howbeit in the spirit he speaketh mysteries.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바로 이 14장 2절부터 한국 1890년도 번역을 도왔던 이들이나 그것을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대형교회 목사들이 이상하게 번역과 설교를 하기 시작합니다.

위 구절은 대충보면 '방언을 하는자가 하나님한테 알아 들을수 없게 한다..' 라고 해석을 할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벌어진 그 이상한 an unknown tongue (단수) 알려지지 않은 말에 대해 전체적으로 설명을 가하기전에 자기가 보고받고 들은데로 그런 사람이 단순히 너희안에 있다는것으로 설명을 하는것입니다. 지난편 참조하세요 구약 신약에서 얘기하는 방언(외국어 통변은 모두 복수 입니다. tongues or languages) 그래서 he speaketh mysteries. 미스터리라고 한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절에 바로 'But he that prophesieth speaketh unto men to edification, and exhortation, and comfort.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 한글성경에서 끼워넣은 단어)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즉 읽는 고린도 성도들이 비교하라는 비교법을 사용하는 문장내용입니다. 그래서 지난편에서도 얘기했지만, 절대로 구절을 짤라서 해석하면 엄청난 오류와 반대해석으로 빠지게 되는것입니다.

다시 재 설명하듯 통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 너네 고린도교회에 요즘 알수없는 기도말을 하나님께 하는 이가 있는데, 알다시피 주위성도들도 못 알아듣고 신비한 주술적인 언사를 하는이가 있더라. 그러나 너네들도 알다시피 예언이라는것은 사람에게 알아듣게 말하며 권면을 전하고 편케 하는것이다" 이렇게 번역이 되는겁니다.. 

그래서 마침내 4절에서 분명히 둘을 비교하는 말을 하십니다.


He that speaketh in an unknown tongue edifieth himself; but he that prophesieth edifieth the church.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 한글성경에서 끼워넣은 단어)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즉, 신비스런 알수없는 말을 그는(문제를 일으켰던 사람) 자신을 내세운다는내용입니다. 영어성경조차 덕을 세운다는 말은 없습니다.

번역을 잘못 한거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이제 바로 보이십니까? 그동안 얼마나 교회에서 잘못말하고 이상한 기도를 권장했는지 보이십니까? 그리고 고전 14장에는 전혀 '덕' 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당시 번역을 이상하게 했던 분들이 '오이코도메오' 의 뜻을 이상하게 번역하여 앞에 덕이라는 단어를 넣는 바람에 마치 방언이 덕을 세우는듯한 뉘앙스로 비춰지게 되는것입니다. 단어의 원뜻은 자기를 내세운다 그런의미에서 세운다라는 뜻입니다. 

'I would that ye all spake with tongues, but rather that ye prophesied: for greater is he that prophesieth than he that speaketh with tongues, except he interpret, that the church may receive edifying.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 한글성경에서 끼워넣은 단어)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5절에선 번역도 이상하지만 그것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마음을 좀 살펴봐야 합니다. 그 이상한 기도를 끌고 들어온이가 당시 인기를 끌만큼 지난 오순절 성령 외국어 은사는 당시 성도들에게 흠모와 사모의 대상이었습니다. 즉, 당시 교인이라면 모두가 그런 기적과 같은 통역 방언 은사를 받고 싶어했었을겁니다.

그래서 '다 너희가 방언-외국어의 은사(tongues 복수) 을 말하기를 원하나, 하지만 좀더 하나님의 영과 교통하여 예언의 은사를 추구하는게 좋지 않겠냐'는 일종의 권고의 문장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면 6절부터 성경이 자세히 잘 보이실겁니다.

다음편에서 14장 중반부부터 더욱 그 이상한 기도를 끌고 들어온 오늘날 방언 기도의 폐해에 대해 계속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