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5일 월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5편) - 방언기도의 구체적 폐해를 지적하는 사도바울


지난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4편에 이어서 고린도 전서 14장 방언편 입니다...


So likewise ye, except ye utter by the tongue words easy to be understood, how shall it be known what is spoken? for ye shall speak into the air.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There are, it may be, so many kinds of voices in the world, and none of them is without signification.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Therefore if I know not the meaning of the voice, I shall be unto him that speaketh a barbarian, and he that speaketh shall be a barbarian unto me.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고린도 전서 14장 8,9,10


지난 4편에 이어서 사도바울은 본격적으로 이상한 기도를 하는 그 형태를 엄숙하게 비판하고 나옵니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은 했지만, 사도바울은 벌써 고린도 교회에 퍼지기 시작하여 교인들 사이에서 양분된 이 방언기도라 하는 부분을 매우 양쪽을 분별하여 권고와 가르침으로 하다보니, 자세히 앞뒤 전후를 보지 않고 읽으면 오판이나 오역하기가 너무쉽게 되어 있습니다. 즉 이 고린도 전서는 당시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지요.

아무튼, 8~10절을 보면 더 이상 이 이상한 기도가 얼마나 무식한것인지, 말도 안되는것인지 단번에 사도바울이 지적하는것을 볼수 있을겁니다. 그래도 해석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축약해서 해석하면

"방언기도라고 하는것은 거론할 가치고 없고 어느 아프리카 야만인이나 하는것이다"

이제 OECD 국가 선진 반열에 들고 스마트폰도 세계에 만들어내는 우수한 민족이 되어가는 이때에, 우리도 좀 생각이 있는 사람이 되는게 그렇게 어려운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나갔다가 말없이 떠나는 이유를 잘 모르는것 같습니다. 아니 교회 목사들은 마치 중독이나 세뇌시켜서 교회에 묶을려고 하는 느낌만 준다는걸 본인들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Wherefore let him that speaketh in an unknown tongue pray that he may interpret.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
(let 의 동사를 잘못해석해놓았지요. 즉 그 알수없는 언어로 기도를 하는 그를 통역을 시켜보라는겁니다. 즉 그 사람이 무슨말 하는 지 알아보라는 뜻입니다.)

For if I pray in an unknown tongue, my spirit prayeth, but my understanding is unfruitful.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당연히! 그렇지요. 내가 만약 if 그 정신나간 방언기도를 하면 나또한 영으로 기도를 하는거지만, 전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사도 바울의 설명체 문장이지요..)

I thank my God, I speak with tongues more than ye all: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사도 바울은 당시 로마 출신의 외국인이었습니다. 학식도 풍부했고 다양한 선교지역을 나갈수 있었기에 여기서도 여러 외국어를 남들보다 잘한다는것입니다.)

Yet in the church I had rather speak five words with my understanding, that by my voice I might teach others also, than ten thousand words in an unknown tongue.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an unknown tongue - 그 희한한 정체도 알수없는 방언소리를 지적하는것입니다. 지난편에 설명했지요)

Brethren, be not children in understanding: howbeit in malice be ye children, but in understanding be men.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사도 바울이 간절히 호소하는 부분입니다. 제발 똑똑해져라. 이성적으로 생각해라 아주 절절하게 부탁하는 부분입니다.


Wherefore tongues are for a sign, not to them that believe, but to them that believe not: but prophesying serveth not for them that believe not, but for them which believe.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If therefore the whole church be come together into one place, and all speak with tongues, and there come in those that are unlearned, or unbelievers, will they not say that ye are mad?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사도 바울은 방언(외국어를 말하는 능력 혹은 은사) 을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누군가 어떤 외국인이 나에게 다가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면 귀가 번뜩일겁니다. 또한 그 사람이 바로 옆에 일본 친구한테 일본어로 또 그러면, 저는 이제 눈이 휘둥그래 질겁니다.....

그런데, 그런 외국인들이 엄청 많은 교회에서 그런일들이 벌어지면, 이젠 기이함을 넘어서 공포와 전율 그리고 신기함등 단지 미친 상황이다라고 판단할수 밖에 없을겁니다... 라고 사도바울이 오리지널 방언에 대해서 설명하는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이미 오순절 성령 방언은사가 외국어를 말하는 은사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지금 각성시키고자 비교하는것이지요. 그 정신나간 방언기도와)

If any man speak in an unknown tongue, let it be by two, or at the most by three, and that by course; and let one interpret.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 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But if there be no interpreter, let him keep silence in the church; and let him speak to himself, and to God.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Let the prophets speak two or three, and let the other judge.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번역상 위 방언은 바로 문제를 일으킨 어떤 사람이 가지고 온 그 정신나간 방언인데 - 이 부분에서 좀 설명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교회다니는 어떤분이 아니 1970년대 미국 흑인들이 남부와 중부등에서 외국어 방언을 한다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어를 약간 짜집기해서 그럴싸하게 사람들앞에서 방언은사 터졌다고 사기치고 다녔지요. 다른 교인들은 그걸 신기하게 봤지만, 막상 중국인들은 전혀 알아들을수 없는 사기다라고 한것이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습니다.(다음편에 방언기도의 역사편에서 다루겠습니다)

If 만약 어떤 사람이  an unknown tongue 알수없는 말을 한다면, 두 사람이나  세 사람정도를 붙여서 당시 교회의 질서를 따라서 - 교회 연단 설교 원칙이나 룰이 있었겠지요- 통역이 잘 되는지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이유는? 아주 자명하지요. 지금 고린도 교회에서 유행처럼 퍼질것을 염려하는데, 무조건 하지 말라 그러면 그리스 민사 재판까지 간 상황이라 반발이 일어날게 분명하고, 하지만 분명히 말도 안되는 거짓인데 용납하기도 그렇고, 그러면 어떤방법이 최선일까요? 바로 기존의 방식대로 통역하는 사람을 옆에 붙혀서 검증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Let your women keep silence in the churches: for it is not permitted unto them to speak; but they are commanded to be under obedience, as also saith the law.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And if they will learn any thing, let them ask their husbands at home: for it is a shame for women to speak in the church.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갑자기 엉뚱하게 사도 바울은 강한 톤으로 교회 여자들을 공격하는 논조로 생뚱맞게 말을 던집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여자들은 교회에서 입다물고 신앙생활 하라는걸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고린도 전서는 우리를 바라보고 쓴 편지가 아니라 긴박하게 그리스 민사 재판까지 갈정도로 싸움이 벌어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급히 쓴 전갈입니다.

여기서 유추해볼수 있는건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도 벌어지는 방언기도의 형태는 대부분 아니 거의 90% 이상이 여자 신도들에게서 일어납니다. 왜 그러냐면 남자의 두뇌와 여자의 두뇌 구조가 감성과 이성의 차이에서 현격히 다른부분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신도들은 주절거리는 방언을 넘어서 넘어지고 갑자기 연단으로 뛰어오르거나 울부짖거나 하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동반하는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여성은 분위기나 감성에 남자에 몇배에 이르는 에스트로겐 작용으로 심취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즉, 자매님들 사이에서 이 문제가 아주 격화된것이고, 주 추종자들이 여성 신도라는걸 바로 알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적 판단이 강한 남편(남자)에게 반드시 물어보고 살피라는 약간 공격적인 내용이지요. 그만큼 그리스 재판까지 갈정도로 큰 싸움이 된것이라는걸 또한 유추 할수 있고, 급기야 이 방언 헛소리 기도를 끌고 들어온 이들이 결국엔 간통, 간음등 성 범죄까지 부부사이에 퍼뜨릴정도로 문제가 된경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것은 이 방언기도라는것이 사람의 전두엽 두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하여 환영을 보게하고 특히 성적인 도착증과 비슷한 내분비 호르몬 교란을 일으키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그 대표적인것이 인도의 주술종교인 성적으로 난잡한 종교가 있지요. 거기도 똑같이 한국교회처럼 합니다. 심미안(제3의 눈)을 열려는 행위를 잘못하다간 아주 정신병이 들수 있고, 아마도 일부 목사들이 그러한 방언기도에 심취하여 자기통제권을 상실하다보니, 자기앞에서 넘어지고 이성을 잃는 여신도들에 욕정이 생기는 문제가 바로....

고린도 교회에서도 벌어진것 같습니다.

Wherefore, brethren, covet to prophesy, and forbid not to speak with tongues.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Let all things be done decently and in order.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결론을 사도 바울은 정말 멋지게 내립니다. 교회내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앞날을 풍성하게 하는 예언(날짜 맞추기가 아닙니다. 이 부분도 오늘날 점쟁이하듯한 예언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중에 예언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과 당시 고린도 교회 특성상 외국인들을 위한 통역 방언 speaking 을 하도록 유도하고 마지막에선 좀 적당히 해라~ 는 부드러운 규율적인 말씀으로 적정한 믿음과 행동으로 차분히 질서대로 정리하라고 마감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이 구절마다 번호가 매겨있어서 그 부분만 취하듯하면, 정말 안된다는것을 이제 느끼시나요? 

그러면 정말 다행입니다.

방언기도을 하는 기독교가 점점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일등공신임을 우리모두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 사도행전 방언 부분도 연이서 계속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