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University 과정을 마치면서 개인적으로 내렸던 결론은 우리 동양 아니 한국인들이 나아가야할 과정중에서 필히 원칙과 규범,원리 A true, principle and rule 등에 대한 양보없는 정신을 좀 서구로부터 배워야한다는 결론에 다달았습니다.
우리 한국 문화는 세계속에 한류라 하여 감성적으로 많은 동감과 발전을 가져오고 있지만, 아직도 모방경제나 카피상품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중국 인도로부터 추월을 당하고 여러가지 우려섞인 모습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급기야 많은 젊은이들이 살기힘든 대한민국을 떠나 이민을 고려해야 하는 경제사회 약소국으로 요즘 전락하고 있는다는것에 개인적으로 심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러한 국가적인 환난은 결국 우리의 정신과 사상에서 오는 문제일수 있다는것에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저와같이 계속 이 방언기도 부분만 살펴봐도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목사들이 와전시키고 뒤틀고 오역하여 가르치는지 아실수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이 대충 대충 , 그리고 원칙보다는 실리와 효율에만 매달려 눈에 실질적인 보상이나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조급증적인 즉 병적인 트라우마에서 나온 일련의 문제라는것을 또한 직시해볼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원칙과 정확성에 벗어난 과정을 걷다보면, 반드시 탈이나고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왜 ? 서구인들이 발전은 더딜지언정 원칙을 강조하고 가깝게는 건널목 신호를 반드시 지키며 학문적으로는 절대로 인간관계나 동정으로 점수를 주지 않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 무려 10여편에 이르는 이때즘...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무엇을 느끼십니까?
제가 한국 서울, 미국 LA NY 좀 제대로 된 가르침을 하는곳이 없는가 한국 대형교회들을 가봤지만, 마음속 깊이 절망하고 실망만 하는것은 그곳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백수 무당들과 온갖 아름다운 세상 가르침으로 포장된 귀신의 투전판뿐이 없다라는것을 발견했습니다. (실망스러워 격하게 좀 표현했고 물론 신실함을 찾는 몇몇분들도 좀 봤습니다.) 조금만 목사들이 얘기하는거 집에와서 신약성경과 대조해보면 거의 아니 90% 사실과 다른것을 가르치는것을 발견했을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본 예배에서는 마음은 들뜨고 좋은데 집에와서는 뭔가가 꺼름찍한 알수없는 기분이 드는건 개인적으로 성경을 제대로 알기원하는데에서 온 비교분석때문에 그런걸까요?
저만 이러면 저는 가히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폐단을 느끼는 성도들이 한두명이 아니고 급기야 미국의 어느 대형 교회 목사는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교단을 이끌었다고 대형교회 포기 선언까지 하고 있는게 요즘 기독교계의 현실입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미국 시카고 Willow creek church 를 이끄는 담임목사Bill Hybels가 공식적으로 officially "우리는 교인 숫자 늘리는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데에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라고 지난 30년간 자신들의 자체 연구 결과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바로 이 교회가 한국 교회들의 우상이된 표준 대형교회입니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신약 성경 그대로 가르치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데, 교회에 금력과 권력이 결합이 되니 도저히 성경대로 가르쳤다간 자신들의 경제효율에 안맞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도 모집에 세상적으로 말씀을 예쁘게 하는 스타 목사들이 필요하고 종교연예인등이 양성되니 일반 성도들은 교회에 와서 재미있는 사교활동에 촛점을 맞추게 되고 말 그대로 예배에 앉아 말씀듣는 로보트가 되어버리니 no brain 화 되어가는 결과가 결국 지난 32년간 교회사역 결과로 도출된것이지요.
돈이 그렇게 무서운겁니다. 원칙을 벗어나는것이 그렇게 무서운겁니다.
직업으로 갖는 보수받는 목사제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평신도가 서로 가르치고 말씀하며 훈련하고 운영하는 초기 신약성경 교회로 돌아가야 기독교도 살고 나라도 삽니다.
그 정신을 한국 교회에서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일단 한국 교회는 성경번역부터 다시 하고 방언기도 부터 없애면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2015년 6월 24일 수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8편) - 백수 무당과 샤머니즘 그리고 없어져야할 목사 제도
무엇이 세상을 가슴 뛰게 할수 있을까요? 이 운동은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다양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교회재부흥을 위해 많은 여러가지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밝히 진실을 얘기하자면..
'모든 신앙과 영성 그리고 세상으로의 외침의 실효성은 개개인의 영적수준과 자립 그리고 발전에서 나온다' 는 참신앙인의 모습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평신도 교회 중심의 중요성과 결속 그리고 신앙이 주요한 세상사람들이 바라보는 기준이라는것이지요.
그런데, 정상적으로 교회교육과정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좋은게 많은데, 왜 한국 교회 아니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은 기독교 교회를 떠나가고 있을까요?
바로 목사 시스템이 갖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존재 하지 않았던 직업적 성직자 제도가 세상과 결탁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바람에 오늘날 기독교가 쇠퇴하는 일등 공신이 되어버린 세상의 돌뿌리게 된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
And when the people saw what Paul had done, they lifted up their voices, saying in the speech of Lycaonia, The gods are come down to us in the likeness of men.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그럼 지난편에 계속 이어서 사도행전14편은 지난번 7편에서도 말씀드린것처럼 직업의사 출신인 '누가' 가 아주 상세하게 방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루가오니아 의 방언' 이라고 분명히 외국어 스피취능력을 얘기하고 있고 추후에는 방언 앞에다가 각 지역명을 넣는 세심함을 보입니다. ( 직업인 의사 답게 정확하고 세심하게 부분별로 표현하는 누가의 개인적인 기록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어디를 살펴봐도 오늘날 한국 - 흑인 목사들이 인도하는 광란의 방언기도라는것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사도바울부터 심히 금하는 경고의 내용만 볼수 있다는것을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럼, 조금만 신약성경을 시간내서 대형교회 목사들이 잘 살펴보면, 이러한 방언 기도의 폐해와 문제를 잘 알수 있는데, 왜 모두들 침묵하거나 아니면 굳세게 방언기도를 종용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적 은사'다 라고 설교하며 가르치고 있을까요?
바로 목사직의 특수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인들과 아프리칸 흑인들은 인종문화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탄압과 민중의 슬픔이 매우 복합적으로 자리잡은 부분이 많다라는것입니다. 굳이 여러 예를 안들어도 흑인 노예문제와 우리의 일제치하에서 짐승많도 못한 학대와 각종 침략전쟁을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샤머니즘-기복신앙 (즉각적인 복내림과 정신줄 놓게 만드는 효험)이 종교적 기초가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부분은 비판의 대상이기보다는 불쌍한 우리네 전통과 아픔을 다독여야하는 포용의 시각으로 봐야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돈과 결탁이 되면 무서운 폐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냉정하게 메스를 (사도 바울처럼) 가해야 하기 때문에 슬픔이 느껴집니다. 즉 목사는 직업이기 때문에 경쟁과 성장이 주요한 사명이될수밖에 없는 경제적 흐름때문에 폐해가 나타난다는것입니다.
아무튼, 1940~1960 년도의 극도의 세계적 공황과 전쟁을 통해서 정상적인 종교성 보다는 당장 해결이 필요한 무당파적 주술형태가 기독교와 맞아떨어지면서 국가적인 교회부흥이 미국남부와 한국에서 벌어졌고, 그래서 지난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전혀 엉뚱한 형태의 정신줄 놓는 방언기도라는것이 교회에 들어와서 오늘날 목사들의 권위와 영적파워의 도구로 성도들을 다스리는 권한과 인도가 된것입니다. (백인들 기독교 문화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기회되면 다루겠습니다.)
또한 추후 살펴보겠지만, 목사직은 초기 그리스도교회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공식적인 보수를 받는걸 상상도 못한 시대였기 때문에 목회직은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원칙에서도 벗어난 교회 명칭이며 존재하지도 않았던 별정직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가 다시 일어설려면 목사직을 가감히 없애야 합니다.
그것은 또한 각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발전에도 악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다음편에서는 목사들의 방언이 어떻게 성적도착증과 각종 금권비리로 연결되는지 바로 얘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모든 신앙과 영성 그리고 세상으로의 외침의 실효성은 개개인의 영적수준과 자립 그리고 발전에서 나온다' 는 참신앙인의 모습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평신도 교회 중심의 중요성과 결속 그리고 신앙이 주요한 세상사람들이 바라보는 기준이라는것이지요.
그런데, 정상적으로 교회교육과정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좋은게 많은데, 왜 한국 교회 아니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은 기독교 교회를 떠나가고 있을까요?
바로 목사 시스템이 갖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존재 하지 않았던 직업적 성직자 제도가 세상과 결탁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바람에 오늘날 기독교가 쇠퇴하는 일등 공신이 되어버린 세상의 돌뿌리게 된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
And when the people saw what Paul had done, they lifted up their voices, saying in the speech of Lycaonia, The gods are come down to us in the likeness of men.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그럼 지난편에 계속 이어서 사도행전14편은 지난번 7편에서도 말씀드린것처럼 직업의사 출신인 '누가' 가 아주 상세하게 방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루가오니아 의 방언' 이라고 분명히 외국어 스피취능력을 얘기하고 있고 추후에는 방언 앞에다가 각 지역명을 넣는 세심함을 보입니다. ( 직업인 의사 답게 정확하고 세심하게 부분별로 표현하는 누가의 개인적인 기록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어디를 살펴봐도 오늘날 한국 - 흑인 목사들이 인도하는 광란의 방언기도라는것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사도바울부터 심히 금하는 경고의 내용만 볼수 있다는것을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럼, 조금만 신약성경을 시간내서 대형교회 목사들이 잘 살펴보면, 이러한 방언 기도의 폐해와 문제를 잘 알수 있는데, 왜 모두들 침묵하거나 아니면 굳세게 방언기도를 종용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적 은사'다 라고 설교하며 가르치고 있을까요?
바로 목사직의 특수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인들과 아프리칸 흑인들은 인종문화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탄압과 민중의 슬픔이 매우 복합적으로 자리잡은 부분이 많다라는것입니다. 굳이 여러 예를 안들어도 흑인 노예문제와 우리의 일제치하에서 짐승많도 못한 학대와 각종 침략전쟁을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샤머니즘-기복신앙 (즉각적인 복내림과 정신줄 놓게 만드는 효험)이 종교적 기초가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부분은 비판의 대상이기보다는 불쌍한 우리네 전통과 아픔을 다독여야하는 포용의 시각으로 봐야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돈과 결탁이 되면 무서운 폐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냉정하게 메스를 (사도 바울처럼) 가해야 하기 때문에 슬픔이 느껴집니다. 즉 목사는 직업이기 때문에 경쟁과 성장이 주요한 사명이될수밖에 없는 경제적 흐름때문에 폐해가 나타난다는것입니다.
아무튼, 1940~1960 년도의 극도의 세계적 공황과 전쟁을 통해서 정상적인 종교성 보다는 당장 해결이 필요한 무당파적 주술형태가 기독교와 맞아떨어지면서 국가적인 교회부흥이 미국남부와 한국에서 벌어졌고, 그래서 지난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전혀 엉뚱한 형태의 정신줄 놓는 방언기도라는것이 교회에 들어와서 오늘날 목사들의 권위와 영적파워의 도구로 성도들을 다스리는 권한과 인도가 된것입니다. (백인들 기독교 문화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기회되면 다루겠습니다.)
또한 추후 살펴보겠지만, 목사직은 초기 그리스도교회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공식적인 보수를 받는걸 상상도 못한 시대였기 때문에 목회직은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원칙에서도 벗어난 교회 명칭이며 존재하지도 않았던 별정직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가 다시 일어설려면 목사직을 가감히 없애야 합니다.
그것은 또한 각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발전에도 악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다음편에서는 목사들의 방언이 어떻게 성적도착증과 각종 금권비리로 연결되는지 바로 얘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2015년 6월 10일 수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7편) - 베드로의 왕국열쇠와 목사직분의 문제
While Peter yet spake these words, the Holy Ghost fell on all them which heard the word.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And they of the circumcision which believed were astonished, as many as came with Peter, because that on the Gentiles also was poured out the gift of the Holy Ghost.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For they heard them speak with tongues, and magnify God. Then answered Peter,
이는 방언(-외국어들)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Can any man forbid water, that these should not be baptized, which have received the Holy Ghost as well as we?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And he commanded them to be baptized in the name of the Lord. Then prayed they him to tarry certain days.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지난 사도행전 초기 부분에서의 방언 문제와 더불어 이제 사도행전10장에서는 저자인 '누가-Doctor'가 방언기도에 대해 좀더 정확히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의사인 누가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답게 표현을 정확히 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있고 듣는사람이 있다"라는 행동적이고 행위적인 표현으로 정확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은 당시 15개 언어국중 외국인을 얘기하는것이지요? 즉, 한국 목사들이 얘기하는 기도의 형태가 전혀 아니라는것입니다!
(의사들은 수술이나 치료도중 말한마디 잘못하면 엉뚱한데 집도가 되니 정확한 단어선택이 중요한 직업이지요.)
즉, 요즘 목사들이 얘기하는 알아듣지 못하는 주술적인 신비언어가 아니라는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수석 사도의 제일 사도로써 하늘왕국(많은 엉터리 목사들이 천국 열쇠라고 해석하는데 전혀 아닙니다.-나중에 하늘의 구조와 왕국의 형태에 대해 언급을 해보겠습니다)의 열쇠를 부여받고 사역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늘과 동시에 땅에서도 사람의 구원을 거둬들일수도 뗄수도 있는 그 열쇠는 오직 구약-신약 통틀어서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영광스런 직분의 열쇠입니다. 그 어느누구도 이것을 대신할수 없는 신성한 권능이지요.
성전직분의 권능이나 그 어떤 대제사장 교사 집사 권사도 행해서도 혹은 행할수도 없는 고유의 재판관과 같은 거룩한 권능입니다.
그러한 것을 오늘날 목사들이 어떻게 유린하고 찬탈하며 흉내내는지 성경만 보고 비교하면 바로 분별이됩니다.
당신들 목사라는 사람들 분명히 질문하나 던지겠습니다.
" 방언 기도 주술 치료 혹은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라는 권능을 어디서 받았습니까? 누가 직접 줬습니까? "
기도 했다가 받았다. 기도 가운데 성령이 주었다고 헛소리 하시면 안됩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장 21-24)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니 이제 부터 강조하지만
방언기도를 권유하거나 주술치료등을 권장하는 목사들로 부터 떠나는게 답입니다.
교회가 혹시 떠나기 어려울정도로 인간관계가 많다면,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시고 인간적인 마음이나 신앙을 주지 마십시요.
여러분의 영혼과 몸은 값지고 소중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성경이 저와같이 이렇게 보시면 알겠지만 절대로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방언부분만 살펴도 불과 한 경전에 5분도 안걸리며 금방보고 해석이 되는데.....(물론 조금 영어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조금만 사리분별 가지고 차분히 보면 대개의 진실이 다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 목사들이 이렇게 방언기도 주술치료등에 매달리는걸까요?
...
바로 신약시대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목사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편에서 좀더 지난편에서 언급한 목사들의 비행과 비리 성적이탈등과 더불어 자세히 함께 다뤄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2015년 6월 1일 월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6편) - 사도행전의 방언 그리고 사기의 미국 LA
'다시 말씀드리지만, 단 하나의 단어나 문장이라도 한국 목사들이 얘기하는 '주술 방언기도'가 있다는것이 성경에 있다면 알려주십시요. lovejesusall@gmail.com
이제 고린도여행을 마치고 사도행전으로 넘어왔습니다.
사도행전은 말 그대로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경전이고, 그 저자인 누가(직업: 의사) 가 기록한 것인데, 방언 부분 만큼은 정말 정확히 공부많이한 사람처럼 확실하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사도행전 2장 내용입니다만 전부다 한글자도 빠지지 않고 외국어를 말하는 능력-방언方言으로 누가는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형태도 전혀 아니지요)
And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Holy Ghost, and began to speak with other tongues, as the Spirit gave them utterance.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제 고린도여행을 마치고 사도행전으로 넘어왔습니다.
사도행전은 말 그대로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경전이고, 그 저자인 누가(직업: 의사) 가 기록한 것인데, 방언 부분 만큼은 정말 정확히 공부많이한 사람처럼 확실하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사도행전 2장 내용입니다만 전부다 한글자도 빠지지 않고 외국어를 말하는 능력-방언方言으로 누가는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형태도 전혀 아니지요)
And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Holy Ghost, and began to speak with other tongues, as the Spirit gave them utterance.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Now when this was noised abroad, the multitude came together, and were confounded, because that every man heard them speak in his own language.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And they were all amazed and marvelled, saying one to another, Behold, are not all these which speak Galilaeans?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And how hear we every man in our own tongue, wherein we were born?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Parthians, and Medes, and Elamites, and the dwellers in Mesopotamia, and in Judaea, and Cappadocia, in Pontus, and Asia,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And they were all amazed, and were in doubt, saying one to another, What meaneth this?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Others mocking said, These men are full of new wine.
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저는 이 방언기도를 살펴보면서, 굳이 "번역이 잘못되었다느니 오해가 있다느니" 그런말 할 필요없이 조금만 성경을 차분히 읽어보면 금새 여러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과 그 의미를 정확히 잘 살펴볼수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한인-흑인스타일의 정신나간 방언기도라는게 나온것인지 의아스러울 뿐입니다.
우리는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가난과 삶의 고통에서 처절하게 벗어나야만 하는 1960~80년대를 거쳐왔습니다. 그 시절엔 세집건너 점집이나 무당이 활개를 치고 다녔고, 특히 병원에 갈 돈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한 어르신들은 아니어서 말 그대로 마구잡이식 희망을 잡아야만 하는 절박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그 희망의 끈을 교회라는 곳이 대변하기 시작하였고, 우리 친지들뿐만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은 "그 교회에 가면 병도 고치고 하는일도 잘된다" 는 소문과 풍문으로 나가게되어 부흥이 이루어진게 한국 교회들입니다. 즉,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 교회의 부흥은 주술적 무당과 점집을 대체한 다른 형태의 종교로 우리 서민속에 들어왔던곳입니다. 종교의 본질은 병을 났고 복을 바라는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혁명가 예수그리스도를 바랬던 그 모습과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때 당시를 회고하면, 성경은 오직 목사들로 부터 나오는 그 입이 정의가 되었고, 세로줄로 읽기 힘든 성경은 고대 중국 사서삼경처럼 신성하고 매우 어려워 보였습니다. 읽기 조차 힘들어서 누군가 대신 뜻을 통역을 해줘야 할 정도였지요
그래서인지, 당시 성경배껴서 쓰기 운동(어떤어르신들은 서예로 다 써서 무슨 표창인지 상인지 받으셨던것도 기억납니다), 통독 운동(과일나무 스티커 상품운동)등 읽는거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교회 사역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어느날 미국 캔사스의 한 교회에서 ( 캔사스는 가보시면 알겠지만, 농촌 주이고 몇시간을 차로 달려야 사람들 좀 사는곳이 보일려나 하는 동네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즉 후진정도가 심한 주라는겁니다.) 어떤 정신병이 든 한 18세 소녀인가가 교회모임중 단상으로 뛰어나와서
"울라라 어버버, 샤바딧 샤바아" 라면서 마치 유대어을 흉내내는 소리를 지르면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추후 이 상황을 전해들은 남부 흑인들 가운데 중국어를 흉내내면서 기적을 보일려는 무리들도 나타났으나 당시 몇몇 안되는 중국인들이 공교롭게도 알아채서 잠잠해진 사건도 있지요 ^^)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봤던 동네 농부들이나 목사들 사이에서 와전과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힘들게 인종차별을 겪으며 살던 남부 흑인들교회에 퍼졌고, 그리고 사기의 달인들이 모여사는 LA속에 건전했던 한국교회와 흑인교회에 퍼지기 시작한게 바로 한국-아프리카형 방언기도의 시작입니다.
바로 그 시점에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유행가며
한국에서 LA 갈비며 주미 문화가 신비루처럼 한국 사회에 전파되면서 공교롭게도 이 미친 방언기도가 당시 LA에서 퍼진유행을 한국으로 역수입하게 되는 계기가 된것입니다. 아마 ㅈxx목사가 대표적으로 한국으로 끌고 들어온걸로 기억합니다. 처음엔 한기총에서 엄청 이단이라고 그러더니 요즘은 잠잠하네요.
즉, 오늘날 흑인들과 한인들이 하고 있는 방언기도는 단 하나의 성경학적 근거나 예시가 전혀 없다라는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어떤 영을 쫓아가고 있는지 심각히 묻고 싶을따름입니다.
그리고 또한 제가 매번 부탁을 하지만, 단 하나의 성경구절이나 방언기도의 형태 단어를 찾는다면 메일을 보내달라고 하는것입니다.
(마침 부산 신학대 박사 과정을 마치고 경남에서 나름대로 권위있으신 노우호 목사님이 이 방언기도의 폐해를 아주 적나라하게 파헤친 -방언을 검증하자- 라는 책이 있으니 검색하셔서 보시는것도 도움될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만약 방언기도라는것이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이고 성경의 가르침이며 혹은 사도들의 가르침이라면, 왜 갑자기 1970년대 산업시기에 너도나도 바쁜 시기에 슬며시 수입하듯 나타났으며, 무려 2000년동안 전혀 없었는지... 설명을 해줄분이 과연 있을까요?
계속 사도행전을 다음편에서도 살펴보겠습니다...
다음편부터는 유독 전세계 기독교 국가중에 한국 목사들이 성범죄나 성희롱발언 그리고 금권문제등에 비리를 많이 저질르게 되었는지, 방언기도와 연계해서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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