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8일 금요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조 & 누가 과연 들어가는가? ( 2 번째 )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분이실까......

이런 기본적인 그분들의 인격과 성품 그리고 성격을 모르고서 어떻게 그분들이 주관하는 거룩한 곳을 들어가겠다고 오늘도 울부짓는지 과연 가슴에 손을 얹고 차분히 생각해 보시기들 바랍니다.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감성의 우격다짐이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종교이고 교회일까요?
세계가 온통 벌집 쑤시듯이 골모리를 썩는 IS 도 결국 맹목적인 종교추구와 신에 대한 제대로된 고찰없는 맹신에서 나오는 과격함 아니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오늘날 한국 교회도 지역과 위치만 틀렸지 그들과 별반 다름없는 믿음으로 무장하여 나가는건 아닌지 생각해 볼일입니다.


제가 알기론 예수 그리스도는 단호한 분이십니다. 성경에 사랑의 문구가 많다하여 그분이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미소로 넘기는 분은 절대 아니십니다. 이 그림은 성전을 금전과 상인들로 넘치는것을 분개하여 직접 채찍을 들고 내리치고 쫓아내는 장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이 간음한 여인을 깨끗이 용서 하셨을까요? 정말 목사들 말처럼 이여인을 용서하셨을까요? 그러면 왜 바닥에 고민하듯이 무언가를 적으면서 한참 생각에 잠기며 바리새인과 제사장의 힐난을 맞받아 치셨을까요? "왜 용서하노라" 는 말대신 " 더 이상 그와 같은 죄를 짓지 말라" 고 얘기 하셨을까요.....

앞뒤 말의 현격히 다른 의미를 여러분들은 느낄수 있으신가요?

정말 .....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걸 다 용서하는 분이실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모든 그림을 잘 살펴보면 인자함의 미소도 보이지만 한편으론 악에 대하여 절대 양보없는 단오함도 분명히 내포된 인상도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언가 좀 보이십니까? 저는 분명히 보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간다는건 어떤 두려움으로 가는것이 아닌 나와 내가 속한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려는 일련의 거룩한 소명의식입니다.

그것이 어떤이에게는 가정이 될수 있고 국가가 될수 있으며 어떤이에게는 교회와 사회 혹은 내 이웃이 될수 있는것입니다.

거룩한 소명의식이 없이 오늘도 하루종일 교회당에 모여 복 바라고 어떤 영험한 영적을 기대하는게 과연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걸까요?

계속 저와 같이 고민해보시지요.....











2015년 11월 14일 토요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조 & 누가 과연 들어가는가?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주님앞에 서게될것이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고해야 할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0~12 : '우리가 다 하나님앞에 설것이며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할것이며'

고린도후서 5:10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마치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속에 우리가 그 속에 있어서 지나온 시간들을 그려보면 과연 얼마나 가슴뿌듯하며 자신과 주변을 고양시키고 행복하게 만들어 왔는지 하나하나 셀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 마음깊이 자랑할것이 없고 부끄러움이 가득하다면 더 늦어 죽음의 장막너머로 가기전에 이생에서 최선을 다하여 가족과 친구, 주변에 친절하고 선행을 베푸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짧지않은 인생을 뒤로 하고 가게될 하늘의 장소는 사실 여러군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만약 하늘이 단순하게 천국/지옥으로만 나뉘어져 있다면 각자 성도들이 신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에대한 보상이나 혹은 같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 혹은 그렇지 않고 싶은 사람들과의 적절한 장소와 공간 분할에 대한 이론적 성립이 안되는 불평등이 신학에 모순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린도 전서에서는 분명하게 밝히되...

(고린도전서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There are also heavenly bodies and there are earthly bodies; but the splendor of the heavenly bodies is one kind, and the splendor of the earthly bodies is another.
(고리도전서 15:41)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The sun has one kind of splendor, the moon another and the stars another; and star differs from star in splendor.


저자는 하늘의 장소가 여러곳이 있고 그속에 속하는 각 지체들의 영적 수준이나 보상에 따라 모여사는 형태가 다름을 빛의 밝기(Splendor )비유로써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보상적의미가 있기 때문에 번역에 잘 안어울리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딱히 다른단어가 없어서 이 단어를 차용하여 번역을 넣은것으로 사려됩니다.)

즉, 각 수준에 맞는 영들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심판대에서 판별 분리하여 그 어울리만한 사람들을 각 장소에 맞게 보낸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일전에도 얘기했듯이 그래서 구원이라는것은 자기자신만의 천국 상속이 아니라 사랑하는 주변과 가족들과 함께하는 구원이라고 그래서 설명한것입니다.

정말 간단히 생각해볼때 나 혼자만 믿어 나 혼자 천국에 가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구원이겠습니까? 구원의 진정한 정의가 무엇입니까? 가족은 전부 지옥에 떨어지는데 자기만 천국에 있으면 그래도 그것이 진정한 구원이라고 볼수 있는것입니까?

그리하여, 좀더 놀라운 해석을 고린도 전서 15장에서는 제시합니다. 즉 현대 한국교회에서 주구장창 주장하는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라는것이 허무맹랑한 얘기라는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바울의 가르침이 나타납니다.


(고전 15: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2)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2)침례를 받느냐
(고전 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이 구절은 심오한 부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교인들 사이에서 논쟁이 될법한 복음을 모르고 죽은 자들에대한 구원의 문제 (특히 친인척중 먼저 돌아가신 가족분들)를 정확하게 예법과 의식을 동반하여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즉,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돌아가신분들중 침례를 받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대리의식을 했던 부분이 있다는것을 바로 알수가 있는것입니다.

여하간....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것을 기본적으로 알고 믿고 그에 따른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이웃사랑에 대한 인격 고양과 성숙이 이루어질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쌓아온 공덕과 신실함에 따라 적절한 곳에 보내져 살게 되는것이

초기 기독교의 기본적 교리이며 가르침임을 우리는 알수 있는것입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앙의 정수이며, 우리를 안락과 영생으로 이끄는 곧고 좁은 길이기에 찾는자가 적고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는이가 적다라고 성경에 나와 있는것입니다.

제가 일전에도 얘기를 하였지만, 그래서 한국 교회에선 실질적인 구원이 없다라고 단오하게 말씀을 드린것입니다.

므나의 비유를 괜히 예수께서 얘기한것이 아닙니다.
헛수고라는 단어의 무서움을 기억하십시요.
그래서 진실안에 사는것이 중요합니다.


참고) 이러한 내용을 가르쳤던 근대교회가 있었는데 스웨덴에 있었고 1800년대 초에 Newyork 에서 있어으며, 현재는 LA 롱비치 근처에 관광지로 유명한 아름다운 교회에서 교리로 가지고도 있습니다. 즉,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목사들의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 구원은 가족단위로 이루어짐 (3편)

하늘의 구조와 여러 거할곳을 지금부터 얘기하겠지만, 정말 열린 마음으로 성경과 이 세상을 바라보면 지금 여러분들이 바라보는것보다 좀더 많은 좋은것들이 보일겁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로 시작하는 주기도문의 기본 구조를 보면 명확하게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기본적인 가족 단위의 틀안에 자리잡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기본적인 가족관계가 이 지상생활을 통해 계속되고 우리가 성인으로써 가족안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수있도록 노력해야 하는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하나님의 자녀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 믿음을 가진 자녀와 그렇지 않은 부모 혹은 시어머님 며느리간의 종교적인 갈등으로 빚어지는 항간의 요즘 모습들은 과연 그 바탕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마음다툼인지 아니면 진실을 함께 하고자 하는 좋은 뜻에서의 요구인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교회을 다니는분들이 믿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적인 부분을 매우 벽을 쌓아두고 특히 가족과 친지간에도 많은 다툼을 일으키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것을 오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수십만년 혹은 수만년에 걸쳐서 인류를 바라보시면서 그동안 많은 시간에 걸쳐서 살아온 이 지상의 우리의 선조와 가깝게는 돌아가신 친지 어르신들을 보살피고 계시다는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벧전 3: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벧전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베드로 전서 3장은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로 시작하는 장입니다.

즉, 당시 교회형제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로를 알았다고 교만하지 말고 주위에 강압하지 말며 너희가 하나가 되고 오히려 겸손하여 사랑이 가득하라고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극적인 하나의 사실을 보여주고자 바로 3장:18절에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있던 3일 동안 영옥(지옥이 아닌 일정시간 심판때까지 기다리는 어두운 고통의 장소)을 방문한 내용을 간략히 소개를 합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지금만큼 참 악한 사람들이었지요.. 그 사람들조차 방문하여 무언가를 가르치고 선포하신것입니다.

아마도 당시 회중교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사도들이 더욱 자세히 설교를 했을겁니다. 그러나 성경 저자는 간략하게 이 극적인 사실을 단 2문장으로 적었고 후에 로마 성경 편찬위원들이 상당히 삭제와 더불어 자신들이 이해못하는것을 제하여 버려서 오늘날 중요한 부분이 성경에서 해석이 애매하게 되어 덮어 넘어가버리는 문제가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것을 지금부터 이 구절과 다른 성경 구절을 통해서 이제 유추와 증거로 확실히 밝혀낼수 있습니다.

1. 천국을 가는것은 기독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2. 예수 믿으면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고 얘기하는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3. 내 가족중에 믿지 않는 자는 지옥을 간다고 말하는것은 매우 악한 교리이며 사랑의 하나님을 잔인한 분으로 매도하는 처사입니다.

4. 지옥에 관한 강한 강조와 강압적인 교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제가 깨달은건 믿을건 가족뿐이 없다라는것이고 그 깊은 사랑의 관계를 대신할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관계를 등한시하여 다른 사람이나 목사 혹은 주변 교인들을 더 의지하여 상처받고 사기당하고 혹은 그보다 더 위험한 지경에 이르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앞으로 저와같이 살펴보겠지만, 우리는 가족단위로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기본원리입니다....

2015년 9월 12일 토요일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 교회를 보내기전에 심리학을 공부시켜라 (2편)

우리는 내가 아는 범위 즉 만지고 먹고 보는것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 속거나 실수 하지 않을거라는 착각을 하고 삽니다.

예를 들어 마트에 가면 자신은 필요한것이 있고 그것만 사러 간다는 착각 마케팅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의 어머님들은 온갖 산전수전 다 겪어서 절대로 십원 한장 손해 안볼것이다 생각하지만, 이미 대형 마트들은 이러한 손님들의 마음속까지 변화시켜 지갑을 반드시 열게하는 상술을 정확히 부립니다.

즉, 구매 과소비(상품 과대 판매 사기)를 안당할려면 사람은 눈을 감고 쇼핑을 하던가, 돈을 살만큼만 정확히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옆 친구나 이웃 아주머니에게 돈을 꾸어서라도 사겠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속지 않을려면 아예 그 대형 마트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동네 슈퍼나 시장에서 조금 사고 돈을 아낄것인지 아니면 대형마트의 기록적인 성장에 돈을 기부하고 싶다면 아무 생각없이 오늘도 집근처 대형 마트를 가면 됩니다.


EBS 다큐 프라임에는 이런 인간의 이중적인 상황 대처 능력에 대한 재미있고 예능처럼 쉽게 심리학을 말해주는 프로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 " 방언 그 오역의 역사" 시리즈를 통해 절대로 방언기도하는 교회에 딸자식이나 부인등을 보내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한것을 기억하실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심리학에서 정확히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을 A4 종이로 적어서 고민 상담받으러 오는 여학생들에게 무작위로 전부 똑같이 나눠줍니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손바닥 모양을 보고 각자의 성격을 알수있고 그 결과를 분석해서 준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학생들은 모두 손 바닥 진단만으로 자기 고민이나 성격등을 정확히 아니 거의 완벽하게 맞혔다고 매우 놀라워 합니다. 그 모습이 하도 진지해서 다들 이제야 그 박사님(?)을 통해 무언가 자기 인생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을 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실 처음 나눠준 인생 상담내용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나눠준 내용에 불과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대형교회에서 복음 마케팅으로 사용하는 집단 최면 기법입니다. 사실 한국 교회가 의도적으로 그런수법을 썻다고 저는 생각치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2천년동안 악도 더욱 진화하여 교회라는곳에 악이 세상적인 방법 즉 금권과 함께 들어온것입니다.

찬양 집회, 판매티켓, 음료수 판매, 식사 대금, 각종 수련회, 부흥회, 치유집회 - 여러상품등이당신이 아주 작은돈이라 생각할만한곳에 여러형태로 경제학이 숨어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목사님을 사실 예수님과 버금가는 맹목적인 추종을 보이는 이유도 무언가 그들이 자신들의 속을 정확히 알고 설교 혹은 상담한다고 믿기 때문인 부분도 있습니다.



위 실험은 자신의 건강 상담과 진단을 위해 온 환자를 완전히 속이는 내용입니다. 환자는 자기 문제에 너무 몰두해서 의사가 상담을 하는동안 3번이상 바뀌는지 전혀 모릅니다. 대화를 하는 가운데에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모두는 어떤 유사성에 놓이면 무서울만큼 바보가 됩니다. 배운 사람 혹은 모자란 사람 그런건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바로 상황이나 어떤조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수도 있는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여러 부분중에 우리가 교회라는곳으로 좁혀서 보면 어떤 마인드로 자신과 가족을 지켜나가야 할까요?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과 아내 남편을 훈련시켜야 할까요?

<디모데 후서 3장>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 후서 4장>
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배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않아요....

진리란것은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우리의 이성과 판단력을 위해 많은 분야와 학문에 존재합니다. 그것이 이치적으로 부합되고 진리의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에 맞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실질적인 구원과 인생의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알게됩니다.

오늘도 자신이 은혜 충만하여 어떤 장소 혹은 성령집회를 통해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모임 중독자 ' 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구원이 무엇인지 조차 모릅니다.






참고문헌) 인간의 두 얼굴 EBS 다큐프라임, 범상균 칼럼니스트


2015년 9월 3일 목요일

쉬어가기 - 태권도 와 한국교회 그 은밀한 관계 결국엔 돈...

본격적인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라는곳을 한번 둘러보고 시작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지난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장장 10여편에 걸쳐서 여러분들은 신약성경상의 모든 부분을 저와 같이 낱낱이 살펴보면서 이제는 확고하게 교회에서 가르치는 방언기도라는것이 100% 거짓과 사기라는것을 알게되었을겁니다.

이제... 지금부터 다루게 될 한국 교회에서 가르치는 "믿으면 구원! 천국 복음 ! 상급! 예수믿고 천국 불신지옥! "

이런것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저열한 수준의 목사들 가르침인지 이제 저와같이 하나하나 뜯어가면서 같이 보실것입니다.

또한 이 부분에 있어서 요즘 한국 몇몇목사들이 문제가 있다고 양심적으로 고백하며 들고 일어나는것도 다룰것입니다.

저는 무도를 하는 하는 사람으로써 각종 무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녁엔 항상 도장에 나가서 무예를 닦습니다. 매일 타박상은 기본이며 주말이면 꼭 작다고 볼수 없는 부상을 달고 삽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만큼 숫자가 많은게 동네 태권도장입니다. 저는 무도인으로써 한국 무도 특히 태권도가 세계속에 우뚝 자리매김을 원하는 사람입니다만...


실제로, 처음부터 승단심사 때까지 몇군데를 옮겼다녔는지 모릅니다. 이유는 띠 돈 장난질 혹은 관장들의 과도한 성 집착내지 음주 및 성격변태적인 부분이 많아서입니다. 아니 무슨 도장마다 돈을 그렇게 요구하고 기간을 늘려서 승단을 천천히 늘리려고 하는지..... 뭐쫌 특별한 기술이다 싶으면 이 노망난 노인네 관장들이 요구하는건 왜 그렇게 많은지....

 


그래서인지 변태목사들만큼 추태 태권도 사범 소식도 늘 미국 신문기사를 장식하곤 합니다.

저는 그래서 자녀를 둔 특히 딸을 둔 부모님들은 정말 조심해야 할곳이 방언기도하는 교회와 태권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꿋꿋이 참으면서 그 관장의 특별한 기술정도만 연마하고 많이 옮겨다니고 마침내 조용한 곳에서 승단을 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내가 무도를 배울려고 온거지 아니면 무슨 도장비리를 몸소 느낄려고 온건지 심리적 박탈감도 컷습니다.



무언가 제대로 할려면 꼭 돈 문제를 걸고 넘어오고, 그러다보면 시간가지고 장난치고.....

급기야, 이런 저질 행태들이 미국 사회에 알려져서, 성인들이 하는 태권도는 이제 자취를 점점 감춰지고 아이들이 재롱잔치정도로 부모가 보내는 유치원이 되가고 있는게 한국 무도의 현실입니다.

미국 Texas 와 몇군데에서만 양심적인 관장들에 의해 잘 운영되는 도장도 있습니다. 빌클린턴 대통령도 그곳에서 유단자이기도 했지요.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건,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과 무엇이 만나면 너무 잔인할정도로 변태적이고 짐승처럼 돌변합니다.

오죽이나 하면 미국 친구들이 지금도 가라데 어떠냐? 라고 은근히 일본 무도를 더 치켜세우는 분위기가 많을까요?

한마디로 정말 창피합니다. 정말 이렇게 훌륭한 발기술과 공중날라차기의 정석인 태권도가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었을까요?

  

저는 단언하지만, 한국교회엔 예수 그리스도는 안계십니다. 주의 천사가 그래도 순수하고 영적으로 허기진 몇몇 분들을 위해 성령으로 애쓰고 인도하는건 알지만, 단언컨데 한국 대형교회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안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그럼 누가 계시고 그들이 느끼는건 무엇일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영은 결단코 아닙니다.

바로....

문제는 거기에도 돈이 핵심이고 그에 연관된 복음 마케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돈으로 사고 거래하는 일종의 행위는 주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모든형태의 악입니다. 봉사와 각종 수련회을 핑계로 교회수입이 이루어지고 커피판매 무슨 판매 각종 판매를 통한 이익금 회수또한 악입니다.

자고로 돈 앞에 장사없고 돈이 있는곳에 그 마음이 있는법입니다.

사탄이 사람을 파괴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가 바로 돈과 빚입니다. 

저는 선의의 목적으로 돈 거래가 이루어지는것을 단언컨데 단 한번도 못봤습니다. 그럴수있다면 회계 장부를 오픈 할수 있겠지요. 세금도 납부 할수 있고 투명한 재정지출 수입 규모도 밝히 공개할수 있습니다.

절대로 못합니다. 이유는 교회도 사업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돈받는 목사제도와 함께 말입니다.

왜 말씀을 전하는데 돈을 받어... 그런 직업을 왜 택해.. 성경을 안다는 사람들이...

적어도 한국 대형교회는 깨끗이 사라져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 우리는 어디에 속하여야 하는가 (1편)

구원(救援) Salvation 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를 놓고 과연 저 단어의 종교적 의미와 단어의 뜻부터 생각을 해보는것이 중요할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얘기하는것이 아래의 세가지입니다.

1. 하늘나라 천국에 들어가는것

2.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것

3.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 거듭나는것


이 세가지를 기존 기독교 칼뱅,어거스틴 신학을 기본으로 두는  "예정설- 구원받을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와 로마서의 사도바울의 "이신칭의론以信稱義 - 오직 믿음으로인해서 구원받는다" 에 입각하여 해석을 지난 1225년 이후 기독교교단의 일방적 해석과 성경밖의 과도하고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현대 한국교회의 모티브가 된 '구원-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구원이라는 단어와 그 해석은 13세기 이후의 중세(종교적 암흑시기 13~18세기- 인간을 자신과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하고 불태우고 갖은 고문을 하던 시기) 교회에서 나온 강압적인 이론들입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하늘의 뜻도 성경의 원뜻도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아닌 복음의 가르침으로부터 한참 빗나간...

구교와 신교사이에서의 대립에서 나온 일종의 어두운 인간의 신학개념입니다.

단언 하자면, 오늘날 일반 교회(장로,감리, 성결) 교파등에서 얘기하는 구원론은 - 천국간다 지옥간다.구원받았다. 구원받는다. 상급받는다 - 는 표현들은 상당히 성경적으로 질이 낮고 가르침의 자체가 수준이하의 내용들입니다.

사실, 이 단어보다 우리는 eternal life (영생) 에 촛점을 맞추어서 성경을 바라보면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신앙의 정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보입니다.



또한 앞서 말한 .........

하늘나라의 구체적인 구조와 하나님은 누구시며 우리는 왜 이지상에 왔으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지 그 방법과 절차를 성경을 통해서 보게됩니다.

성경은 거룩한 경전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눈(the eyes of faith) 으로 바라봐야만 하늘의 비밀과 진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면에서 일반 학문적 접근에의한 시대적인 해석은 잘못되고 편협적인 내용만 보일뿐입니다. 바로 13세기 신학이 그렇게 탄생하였고 오늘날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된것이지요.

저는 확신하지만 여러분들이 eternal life 에 대한 내용을 알고 소망이 생긴다면 기존 한국 교단을  과감히 떠날것임을 압니다.

이유는 그곳엔 그들이 말하는 구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기존 한국 교단에서 믿음으로 인한 일반 구원론에 반기를 두는 목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존 기독교 구원론이 문제가 있다는것이지요. )


이 내용을 지금부터 지난 방언기도의 부조리를 다룬 편처럼 하나하나 저와같이 성경을 통해서 사도바울과 야고보가 말한것을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2015년 8월 29일 토요일

상식밖의 성경 해석 그리고 상처주는 종교 결혼 상담

여러 종교 상담론을 가끔 살펴보면 상담을 요청한 사람의 주변관계나 환경을 살피지 않고 상처를 받을수 있는 답변을 보곤 합니다.

"봐라 성경에 글자 그대로 여기에 나와있으니, 그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다."

"수혈하지 마라", " 결혼을 약속하더라도 같이 사는건 죄다 " , " 십일조는 꼭 내야 한다" , " 예수 안믿으면 반드시 지옥간다"

각종 교파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건 교회를 나오라는건지 아니면 협박하는건지 저로써는 당췌 헷갈려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애의 정신이 흐려지는걸 많이 봅니다.

많은 내용중 오늘은 결혼 제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남녀간의 결혼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부분은 맞지만, 그것이 과연 법률과 연관되어서 절차를 따질때는 과연 100% 이치적으로 실행할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 나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처럼 결혼에 대하여 무서울만큼 형식적이고 관례적이며 힘이들게 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니 2030 세대가 오늘도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사는건만 해도 다행인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는 과연 결혼제도의 형식화에 목을 매어야 하는 시대인지 오히려 반문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확고 부동하게 결혼제도를 강조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또 어떨까요?

(살전 4: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살전 4: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살전 4: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1)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살전 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살전 4: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살전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살전 4: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살전 4: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바로 상당수 종교계에서 (기독교 상담, 워치타워 상담, 종교 상담, 천주교 상담 기타등등) 이 구절들을 (특히 파란색부분) 가지고 결혼전 혼전동거를 하는 커플들에게 죄의식과 더불어 낙담하게 만드는 내용들이 매우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다변화된 사회에서 획일적으로 잣대를 들이대는것이 얼마나 위험 천만한건지 오늘 또한 제가 보여드리도록 할것입니다.

우선 위 데살로니가전서의 번역이 문제가 있다는걸 생각해야 합니다.

영어 원문은 이렇습니다.

1 Finally then, brothers, we beg and exhort you in the Lord Jesus, that as you received from us how you ought to walk and to please God, that you abound more and more. 2 For you know what instructions we gave you through the Lord Jesus. 3 For this is the will of God: your sanctification, that you abstain from sexual immorality, 4 that each one of you know how to control his own body(Vessel)* in sanctification and honor, 5 not in the passion of lust, even as the Gentiles who don’t know God, 6 that no one should take advantage of and wrong a brother or sister in this matter; because the Lord is an avenger in all these things, as also we forewarned you and testified. 7 For God called us not for uncleanness, but in sanctification. 8 Therefore he who rejects this doesn’t reject man, but God, who has also given his Holy Spirit to you

아주 간단히 얘기하겠습니다.  위의 한글번역 파란색 단어와 영문 빨간색 단어들을 살펴보면 데살로니가 전서 저자가 과연 누구에게 말하고 있으며 그것의 주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다르게 번역되었는지 바로 알수가 있습니다.

1. 위 내용은 당시 교회형제들에게 말한 내용인데, 부부관계나 그에 준하는 결혼에 대한 내용이 전혀 아닙니다. (만약 저자가 부부사이의 결혼과 그 성약을 얘기한다면 자매 sister 들에게도 같이 모인자리에서 말씀을 전했을겁니다.)

2. 즉 이 편지가 쓰여진 아테네 배경은 당시 만연했던 성적 타락과 그것의 교회 침투를 막고자 하여 자신의 육체- his own body (Vessel)를 sexual immorality (오늘날로 얘기하면 음란물, 창녀와 자는것, 각종 성매매등등)로 부터 정결하게 하여야 한다는 포괄적인 형제들에게 말하는 순결의 내용을 얘기하고 있는것입니다.

3. 이 구절을 가지고 어쩔수없이 결혼전 같이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을 겁박하고 죄의식을 주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전혀 안됩니다. 즉 한글 성경의 와이프 부인이라는 단어는 후대에 이 내용을 번역하면서 억지로 끼워 놓은 내용입니다. (KJV 영문에는 wife 로 나오지만, 이 부분도 문제가 있는것이 다른 고린도 전서나 기타 성경에는 분명히 부부를 얘기할때는 husband & wife 라는 내용을 같이 넣어서 결혼을 얘기하고 있는것을 볼때, KJV 영문은 과도한 해석입니다.)

다행이도 하나님께서는 만인의 공평과 형평을 생각하시어 다양한 형태로 사실혼에 준하는 법률적 장치를 인간의 영감을 통해서 마련하셨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정식 혼례나 신고를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려깊게 세상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혼이라는것의 절차와 형식이 물론 매우 중요한건 사실이나, 모든 가정을 꾸리고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둘이 한몸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에게 멍에와 족쇄를 달고자 하는 장치가 아님을...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2015년 8월 15일 토요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본질은 무엇인가...과연 누구인가?

필자는 적지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떤 진실과 사실을 접근할때 객관적 시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감정의 절제를 통한 영원의 가치를 두는것이 정말 중요하다는것을 경험과 학문으로 배워왔습니다

한때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민중의 삶속에 깊이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아 사회와 정치적으로 아픈 시민들의 마음에 근원적 성찰을 가져다 주었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근본에 집중하여 일말의 깨달음을 얻었는지 한번 각자의 마음들을 들여다 보고 싶습니다.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 '

인생의 여러부분에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다가올 운명과 죽음너머의 그 어떤 본질에 대해서 가장가깝고 날카롭게 사람들에게 하나의 기준을 던졌습니다.

바로 구원영생이라는것입니다.

그 이전에 죽음 Death 를 극복하고 영적세계와 현세를 유일하게 하나의 매듭으로 분명히 기준을 만든 분은 바로 제가 알기론 이분 예수 그리스도외엔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 그리스도 만큼 동서양을 넘나들며 회자되고 매일 기도의 단상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영적 힘은 많은 이들에게 겸허한 마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과연 어떻게 구원을 받는다는것일까요? 영생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지난 처음 몇편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서두적인 기준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특히 교인분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거라 생각합니다. 결코 부정이 아닌 평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한번쯤은 넌지시 생각했던 부분들을 건드린거라 감히 판단합니다.

그런면에서 다시한번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종교 혹은 교회를 다닌다는것이 구원을 받는다는것인가요?
예수그리스도를 정말 믿으십니까...

그분으로 부터 어떤 개인적인 증거나 확신을 받으셨나요?

그럼 어떻게 따르고 있습니까?
죽음 너머 그 영생에 대한 기쁨과 안도가 있으십니까?


이 정도의 증거나 확신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저처럼 자연스럽게 개인의 신념을 주위에 전달할려고 나설겁니다.

이러한 일년의 과정이 개인에게는 고집이 아닌 변하지 않는 진실 혹은 정의가 되는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교회에 나가며 박수치고 떠들고 각종 사교와 모임속에서 이분을 외치지만, 정작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느끼는 분은 극히 소수라는것을 많이 봅니다.

친밀하다는것은 개인적으로 가깝게 서로를 안다는것입니다. 그럴때 지난 1,2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믿음' 이 생긴다는것입니다. 믿음의 깊은 면에는 신뢰라는것이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어야 따르려는 행동이 나오는것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


저와같이 계속 보시겠지만 성경의 저자들은 분명히 우리가 통상적으로 아는 단순한 '믿음'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한글의 원뜻을 제대로 안다면, 일반 구원론이라고 가르치는것이 얼마나 낮은단계의 이론인지 아실겁니다.

그런것은 우리를 확신과 믿음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깝게 아는데서부터 영생과 구원의 시작이 됩니다.

저는 뉴욕, LA, 워싱턴 국립 박물관을 많이 다니면서 특히 예술가들이 사물을 우리일반 사람들보다 좀더 세밀하게 묘사하는것에 많은 감탄을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화려한 요즘 댄스가수나 유행에 지친 눈과 마음을 미술관에서 감동으로 씻어내리곤 합니다.


위 모습들은 지난 수세기동안 예술가들이 시대를 이어오며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그림들입니다. 

저는 확신하지만, 때론 일반인들이 그냥 들이대면서 찍는 사진보다는 전문가들의 사진이 좀더 정확하고 섬세하며 그 보다 인물화로 표현하는 훌륭한 그림들은 감정까지 표현한다는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위 그림중 문을 두드리는 그림을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방문하여 두드리며 나아오라고 하시지만, 결코 밖에서 문을 열고 강제로 들어가시지는 않는 성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문고리가 없지요) 또한 예루 살렘을 내려다보면서 근심하며 슬픈 눈으로 그저 하루를 오늘도 보내는 사람들과 성읍을 바라보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모습속엔 평화로운 모습도 보이시지요.

자.....

이 그림들만 바라봐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분은 현대 많은 교회들이 주장하는 ' 믿으면 천국 안믿으면 지옥 ' 이라는 저질수준의 용어로 겁박하고 협박하는 분이 아니라는것쯤은 보여집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매우 차분한 분이셔서 지난편에서도 계속 얘기했지만, 울부짓으며 떼쓰는 방언기도라는것도 결코 받아들일 분은 아니라는것도 보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성임하고 안수하는 그분의 모습속에는 생각이 깊고 어떤 절차와 의미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단오함도 보입니다. 그러면에서도 사랑과 자애의 마음이 조화롭게 그림들 전체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본적 성품부터 파악하고 다음편 '구원救援-Salvation 이란' 에 대해서 같이 좀더 알아보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2015년 7월 28일 화요일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11편) - 무당목사들의 한국교회 그리고 새로운 초대 교회들 탄생.

 사도행전 21장 39절 But Paul said, I am a man which am a Jew of Tarsus, a city in Cilicia, a citizen of no mean city: and, I beseech thee, suffer me to speak unto the people.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And when he had given him licence, Paul stood on the stairs, and beckoned with the hand unto the people. And when there was made a great silence, he spake unto them in the Hebrew tongue, saying,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사도행전 22장 2절 (And when they heard that he spake in the Hebrew tongue to them, they kept the more silence: and he saith,)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26장 14절 And when we were all fallen to the earth, I heard a voice speaking unto me, and saying in the Hebrew tongue, Saul, Saul, why persecutest thou me? it is hard for thee to kick against the pricks.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자, 이제 거의 대단원의 막이 다다릅니다. 사실 신약 성경 전체적으로 '방언' 이 들어간 모든 문장을 여러분들은 저와 같이 다 보아왔습니다.

특히, 사도행전은 Medical Doctor 출신인 '누가' 가  단어 하나하나를 다른 신약 성경의 저자들과는 다르게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거의 곡해 없을일이 없을정도로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는것을 계속 저와 같이 볼수 있습니다.

성경의 방언 Tongue 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외국어 foreign language 를 말하며, 그 어떤 성경 구절에서도 오늘날 한국 아프리칸 목사들이 주장하는 '방언기도- 정신줄 놓는 신의 기도' 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저와같이 또한 계속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용한 위의 사도행전 26장 14절을 보시면 알겠지만, 하늘음성 조차 분명하게 모두가 알아들을수 있는 히브리언어로 사도 바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방언기도가 존재한다고 가르치는 보수 목사들이 주장하는 '신과 인간이 교감하는 알아 들을수없는 음성' 이라는것은 지난 편들에서도 계속 살펴보았지만 전부 잘못된 성경번역과 1960년대 이후 LA와 남부 미국 그리고 아프리카 선교지역등지에서 만들어낸 주술무당파적 사이비 내용들입니다.

그것의 폐해들이 계속 언급한것처럼 목사들의 성적일탈과 금권 탐욕의 불에 기름을 끼얹는 상황이 나왔고 각종 범죄 목사들의 모습이 흉측해지거나 매우 사람답지 않은 몰골로 변화되는것도 다 귀신들의 이 장난질에 동화되어 나온 일종의 표면적 징후입니다.(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입니다만, 정말 탈 많은 목사들 얼굴 보면 도저히 신앙인이라고 볼수 없는 인상들이 죄다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폐단이 목사제도라는것을 간파한 요즘 전 세계에서 초기 신약시대의 (초대 교회- 목사없는 일반 신도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Australia 호주와 유럽등지 에서는 비록 적은 숫자지만 일반 교인들이 모여서 자체적으로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신앙간증을 나누는 예배와 교회가 나타나고 있고, 미국에서도 Starfish manifesto 와 Starfish vision 과 같은 운동과 책 전하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가정교회, 순례하는 교회 -볼프강 사이먼 저자의 책들이 유명 서점에 나와 있을겁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이유중의 이유는

바로 목사제도하의 교회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구원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형 교회 포기하는 교회목사들이 왜 그런지 좀더 설명할 기회가 나중에 있을겁니다.

아무튼 시간내고 자신들의 열정과 정열을 바쳐가며 다니는 교회생활이 사실은 목사들의 종교확장과 교세에 도움은 될지언정, 진정한 자신의 구원(영생-Eternal life)이나 주님에 대한 이해나 봉사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는걸 본인들이 성경을 통해서 안다면 많이 놀라울겁니다.

그만큼, 일반 사람들의 성경 문장 이해 능력이 지난번에도 말씀드린것처럼 매우 낮기 때문이고, 거기에 잘못된 성경번역과 목사제도가 완전히 장님으로 신도를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2015년 7월 11일 토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10편) - 공통점 그리고 한국사회








이 사진은 우리가 자랑하는 S 기업이 기존 사원들을 강제로 카드섹션으로 집단 교육시키는 장면을 담은 자료입니다. 해당 동영상은 클릭--! 하시면됩니다.

자세히 보시면 얼마나 우리가 비 상식의 사회에 살고있는지 단번에 보고 느낄수 있습니다...

물론 집단체조 형식으로 자기들끼리 유쾌하고 즐거우면 된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얘기할수 있지만, 저런 군중동원이나 집단화는 개개인의 의사 자율권 침해라는 무서운 도덕적해이와 보이지 않는 집단 이지매가 동시에 작용할수 있어서 공산국가 이외엔 해낼수 없는 형식의 퍼포먼스입니다.

“선배들과 동기들은 또 가고 싶다고 난리들이다. 힘들었지만 사무실 출근하는 것보단 그 때가 좋았다고. 추억이라고. 그런데 난 절대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물론 일하는 것보다 재미가 있을 수는 있지만 또 경험하고 싶지 않아. 부서에 배치 받고 처음 사무실에 왔던 날의 충격은… 하얗게 쭈욱 늘어선 책상들. 쭈우우우우욱. 살짝 현기증이 일었다. 그게 첨엔 무언지 몰랐는데 수련대회를 지나고 나니까 알겠더라. 나는 그곳에서 대충 30×40 정도 되는 카드 섹션의 (10, 23) 인가 아무튼 그런 자리였다. 그렇게 커다랗게 움직이는 카드 섹션의 픽셀 하나. 그건 나를 무진장 초라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무언가 앞에 서있는 무력함이랄까.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

전직 직원이었던 한 블로거는 “노조가 없는 것은 노조의 싹이라도 보이면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잘라버리는 회사의 노무방식의 탓도 있지만, 기꺼이 굴욕을 감수하기로 다짐한 직원들 스스로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치열한 내부경쟁과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 회사의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 순응형 인간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교육들, 그리고 총수를 향한 충성심 강요”를 떠올리면 “그 회사를 그만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는 거죠.
....

자,, 이젠 한국 교회로 넘어와서 같은 얘기를 해보지요.

He said unto them, Have ye received the Holy Ghost since ye believed? And they said unto him, We have not so much as heard whether there be any Holy Ghost.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3And he said unto them, Unto what then were ye baptized? And they said, Unto John's baptism.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침례로라
4Then said Paul, John verily baptized with the baptism of repentance, saying unto the people, that they should believe on him which should come after him, that is, on Christ Jesus.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When they heard this, they were baptized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6And when Paul had laid his hands upon them, the Holy Ghost came on them; and they spake with tongues, and prophesied.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외국어를 말하는)도 하고 예언도 하니

지난 시간에 이어 사도행전 19장에서는 '누가' 가 순서대로 어떻게 우리가 거듭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지 관찰자적 입장에서 기록을 알리고 있습니다.

위 절들을 함축하면 순서대로 이런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대화(토론,문답,이해)--->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결심의 침례---> 안수 ---> 방언(외국어은사- 지난편에서도 설명했지요. 똑같이 계속 '말하다' 라는 표현으로 여러언어tongues 복수형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예언(가르치는 은사- 이부분은 나중에 다루어보지요)

제가 계속 강조하지만, 의사인 누가는 그 어떤 복음서 저자들보다 한 문장을 적더라도 명백하게 사물과 행위들을 아주 원리대로 자세히 적고 있어서 다른 견해가 필요없게끔 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 교회들이 행하는 기도실에 밤새내내 박혀서 "따라해봐, 우랄라 샤바샤~ " 목사들이 주문대로 훈련 혹은 교육하는 방식의 방언기도라고하는것은 성경적으로 볼때ㅡ 전혀 존재하지도 않고, 절대 있어서도 안되며 복음의 원칙과 원리에서도 위배되는 내용이라는것입니다.

지난 10여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1890년대 방언이라고 하는 글자 하나 번역 잘못한게 이런 지경까지 온것인데, 문제는 교회내에서 이 귀신들린 방언기도가 문제 있다고 주장하고 개혁을 외치는 사람을 오히려 거꾸로 사단이 들었다고 공격하거나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몰아치는게 한국 교회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을 대체하는 나라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면서에서 교회만으로 좁혀서 볼때, 고쳐져야할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위의 침례라는것도 영어 원문으로는 baptized 라는 동사형식을 쓰는데 물에 완전히 수장되듯이 잠겨야하는 원뜻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이치적으로 생각할때 세례식이나 물끼얹는식은 전혀 사도들이 전한 방식의 내용과 다른내용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자주 하는 얘기가 ' 그까짓거 대충하지 뭔 세세히 따지냐' 라고 반문할수 있는데, 그런 사고 방식으로 대충사니 인생 망가지고 나라망가지는거 한순간이라는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지 이해가 전 안갑니다.

위 사도행전 19장을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그만큼 의식과 형식도 중요하여 침례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받으라고 하여 새로운 제자들이 기존의 요한에게서 받은 침례를 다시 받는 모습을 또한 보실수 있고 그제서야 성령의 임재와 더불어 각종 능력의 은사가 나타난것입니다. 

제가 다시 누차 강조드리지만, 한국 왠만한 대형교회들은 그들이 말하는 구원을 받을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성경에서 사도들이 강조한 내용만으로 살펴볼땐 분명히 그렇습니다. 제가 억측을 부리는것이 아니라 지금 저와같이 신약성경을 그 시대로 돌아가 자세히보면 여러가지면에서 확연히 다름을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더구나, 

목사들이 행하는 방언기도라는데에는 우리의 전두엽을 파괴하는 아주 악랄한 중독 메카니즘이 숨어있습니다.

지속적 소리와 시각 자극은 사람의 측두엽전두엽 부분을 자극하는데, 일종의 마약 효과와 더불어 점차 서서히 환청이나 신경 마비등을 동반한 중독으로 사람을 바꾸는 현상을 동반합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behavioral addiction 행동 중독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쇼핑중독을 못견디고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가정주부얘기나 홈쇼핑에서 물건을 판단하지도 않고 말만 믿고 이것저것 사들이는 행위등등이 바로 이런 반복 시청이나 노출등에 의한 중독현상입니다.


현재 교회 목사들이 성적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여 벌어지는 천태만상이 교회내에 의외로 왕왕 존재하는게 사실입니다.

이 현상을 개개인의 일탈이라고 보면 큰일날 문제입니다. 바로 불을 끄고 어둠속에서 괴성과 신들린 모습들속에서 환청이 들리는 전두엽 파괴에의한 환청과 충동과잉으로 봐야 하는 귀신들린 행위입니다.


일전에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은 하였지만, 사람이 충동조절에서 실패하는데 가장먼저 특히 남자가 나타나는것이 바로 과민성 성적충동입니다.

이것은 연령과 학식 혹은 인격을 불문하고 나타나는데, 특히 도박중독자들과 마약 중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성적 중독자로 같이 빠지는 현상과 매우 똑같습니다.

감히 말씀드린다면 절대로 여러분들의 여인과 딸 자식 자녀들을 방언기도를 조장하고 행하는 교회나 기도집회에 보내면 안됩니다. 나중엔 그들의 두뇌에는 성경의 중요한 교리나 의미보다는 현란한 목사의 발짓 손짓과 콘서트음악같은 무대에 사로잡혀 사탄의 올가미에 단단히 묶여 구원의 확신도 없는 삶이나 망상에 빠져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여러분들은 무당을 다시 모시고 교회에 나가는것뿐이 안됩니다.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방언 기도 그 오역의 역사(9편) - 목사제도를 없애야 나라가 산다.

미국에서 University 과정을 마치면서 개인적으로 내렸던 결론은 우리 동양 아니 한국인들이 나아가야할 과정중에서 필히 원칙과 규범,원리 A true, principle and rule 등에 대한 양보없는 정신을 좀 서구로부터 배워야한다는 결론에 다달았습니다.

우리 한국 문화는 세계속에 한류라 하여 감성적으로 많은 동감과 발전을 가져오고 있지만, 아직도 모방경제나 카피상품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중국 인도로부터 추월을 당하고 여러가지 우려섞인 모습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급기야 많은 젊은이들이 살기힘든 대한민국을 떠나 이민을 고려해야 하는 경제사회 약소국으로 요즘 전락하고 있는다는것에 개인적으로 심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러한 국가적인 환난은 결국 우리의 정신과 사상에서 오는 문제일수 있다는것에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저와같이 계속 이 방언기도 부분만 살펴봐도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목사들이 와전시키고 뒤틀고 오역하여 가르치는지 아실수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이 대충 대충 , 그리고 원칙보다는 실리와 효율에만 매달려 눈에 실질적인 보상이나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조급증적인 즉 병적인 트라우마에서 나온 일련의 문제라는것을 또한 직시해볼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원칙과 정확성에 벗어난 과정을 걷다보면, 반드시 탈이나고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왜 ? 서구인들이 발전은 더딜지언정 원칙을 강조하고 가깝게는 건널목 신호를 반드시 지키며 학문적으로는 절대로 인간관계나 동정으로 점수를 주지 않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방언기도 그 오역의 역사 - 무려 10여편에 이르는 이때즘...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무엇을 느끼십니까?


  제가 한국 서울, 미국 LA NY  좀 제대로 된 가르침을 하는곳이 없는가 한국 대형교회들을 가봤지만, 마음속 깊이 절망하고 실망만 하는것은 그곳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백수 무당들온갖 아름다운 세상 가르침으로 포장된 귀신의 투전판뿐이 없다라는것을 발견했습니다. (실망스러워 격하게 좀 표현했고 물론 신실함을 찾는 몇몇분들도 좀 봤습니다.) 조금만 목사들이 얘기하는거 집에와서 신약성경과 대조해보면 거의 아니 90% 사실과 다른것을 가르치는것을 발견했을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본 예배에서는 마음은 들뜨고 좋은데 집에와서는 뭔가가 꺼름찍한 알수없는 기분이 드는건 개인적으로 성경을 제대로 알기원하는데에서 온 비교분석때문에 그런걸까요?

저만 이러면 저는 가히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폐단을 느끼는 성도들이 한두명이 아니고 급기야 미국의 어느 대형 교회 목사는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교단을 이끌었다고 대형교회 포기 선언까지 하고 있는게 요즘 기독교계의 현실입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미국 시카고 Willow creek church 를 이끄는 담임목사Bill Hybels가 공식적으로 officially "우리는 교인 숫자 늘리는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데에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라고 지난 30년간 자신들의 자체 연구 결과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바로 이 교회가 한국 교회들의 우상이된 표준 대형교회입니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신약 성경 그대로 가르치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데, 교회에 금력과 권력이 결합이 되니 도저히 성경대로 가르쳤다간 자신들의 경제효율에 안맞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도 모집에 세상적으로 말씀을 예쁘게 하는 스타 목사들이 필요하고 종교연예인등이 양성되니 일반 성도들은 교회에 와서 재미있는 사교활동에 촛점을 맞추게 되고 말 그대로 예배에 앉아 말씀듣는 로보트가 되어버리니 no brain 화 되어가는 결과가 결국 지난 32년간 교회사역 결과로 도출된것이지요.

돈이 그렇게 무서운겁니다. 원칙을 벗어나는것이 그렇게 무서운겁니다.

직업으로 갖는 보수받는 목사제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평신도가 서로 가르치고 말씀하며 훈련하고 운영하는 초기 신약성경 교회로 돌아가야 기독교도 살고 나라도 삽니다.

그 정신을 한국 교회에서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일단 한국 교회는 성경번역부터 다시 하고 방언기도 부터 없애면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